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무 다른 역할 Dec 12. 2017

둔식가의 하노이 음식들

베트남 하노이 #2

# 둔식가(鈍食家)

    1. 미식을 찾아다니는 미식가의 반댓말

    2. 맛에 둔한 걸 굳이 장점으로 포장하기 위해 억지로 지어낸 말


며칠 안 되는 여행이었고, 남들 다 가는 뻔한 맛집 하나 찾아다니진 않았지만, 

굳이 사진을 남기는 이유는, 둔식가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차고 넘치는 맛집을 가지 않아도 

어디서든 잘 먹고 잘 다닐 수 있다는 증거사진을 소소하게 올려논달까.



# 하노이식 생맥주 '비아 허이 (Bia Hoi)'

구시가 지역의 야시장과 야시장 중심으로 이어지는 맥주거리는 밤에는 차량과 오토바이가 통제된다. 거리엔 양쪽 가게에서 목욕탕 의자와 낮은 탁자를 즐비하게 늘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호객한다. 대세는 철판구이와 펍이지만, 한 섹션에 생맥주 집들이 모여있다. 커다란 맥주통을 놓고 BIA HOI라는 간판을 걸고 몇 개의 안주와 함께 팔고 있다. 관광객이라면 당연히 거기서먹는 게 정석인데...


타고난 태생이 넉살과 붙임성이 거의 없는 성격이라 혼자서 여행간 그곳에서 그 번화한 생맥주집에는 못 들어가고, 맥주거리를 지나 몇 블록 떨어진 어두운 사거리의 한 생맥주집에 갔었다. 대여섯개의 탁자와 때에 절은 의자들. 동네 아저씨들이 무리지어 3군데 정도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난 무표정한 주인 아저씨 옆 쪽의 의자에 앉아서 맥주를 마셨다.

하노이의 생맥주는 차갑고 약하다. 덕분에 텁텁하게 가라앉는 뒷맛이 없다. 

탄산은 캔이나 병으로 마시는 하노이 맥주나 사이공 맥주보다 적은 편이나, 

그게 아쉽지는 않다. 우리가 맥주를 마시는 이유에 집중할 수 있다. 

그냥 더 빨리 더 많이 마시면 된다. 가격도 싸다. 몇 백원이다. 

맥주를 시키면 주인 아저씨가 사진에 있는 기계에서 맥주를 따라준다. 

기계의 버튼을 눌러 맥주를 나오게 하는 게 아니라, 노즐 끝을 막아놓은 대나무 마개를 빼서 맥주잔에 바로 따라준다. 덕분에 맥주잔을 받쳐놓은 쟁반엔 넘친 맥주가 흥건하다. 숙달된 주인 아저씨의 빠르고 유려한 맥주 따르기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도 좋고,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맥주 줄기도 좋다. 잔을 비우고 잔을 주면 그 잔에 또 따라준다. 빨리 마셨다고 많이 마신다고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저 따라주는 일에 집중한다. 

*맥주에 집중하느라 사진기를 꺼내지 않고 낡은 휴대폰으로 찍어 사진이 조악...


*구글링 하면 그 유래와 그리 투명하지 않은 생맥주 전용 유리잔 만드는 마을까지 나오니 정보는 그쪽을 보면 된다. 재밌다



 #우동 같은 쌀국수 '분보후에(búnbòHuế)'

"베트남 중부 후에 지방에서 유래했고, 사용되는 쌀국수는 퍼(Phở)보다 굵고, 크기나 질감에 있어서 일본의 소바면과 비슷하다. 육수는 소뼈다귀를 오랜 시간 삶아서 완성된다. 레몬그라스나 칠리와 같은 향신료가 사용되며, 새우로 만든 맘톰(mắm tôm)도 중요하게 쓰인다. 대개 고기 고명을 올려준다"는 건 위키백과를 보고 알았다. 

(https://ko.wikipedia.org/wiki/%EB%B6%84%EB%B3%B4%ED%9B%84%EC%97%90)


여행 첫날, 오전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부리고 호텔에서 무료로 주는 지도 한 장 들고 나가서 이리저리 헤매다 먹은 첫 끼였다. 예전의 여행과 다르게 준비랄 걸 한 개도 안 해와서, 이 음식은 꼭 먹어야해 같은 목표가 없었다. 호암끼엠 호수를 지나 구시가를 벗어나 지도도 안 보고 대로변으로 몇 블록을 가다가 아무 생각없이 꺾어 들어간 골목에 있는 조그만 식당이었다. 3시 가까이여서 손님은 나밖에 없었고 점심 손님들이 버리고 갔을 쓰레기가 바닥에 조금 있었다. 조리대는 간결하고 잘 정돈돼 있었고, 50줄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는 부부는 친절했다. 면그릇과 함께 채소 그릇을 내 준 후, 양념통을 가리키며 넣어먹으면 맛있다고 알려줬다. (물론 바디랭귀지로...) 내가 그릇을 비울 즈음, 부부는 노인 한 명과 함께 본인들의 식사를 준비했다. 

면은 한국에서 먹던 쌀국수보다 굵었다. 국물은 의외로 농도가 낮고 시원했다. 고기는 인심좋게 썰어 얹어줬고 새우완자는 국물의 온도를 적당히 받아들였을 때 먹어서 안성맞춤이었다. 아무런 지식이 없던 터라, 레몬그라스 같은 채소를 잘게 뜯어서 국물에 넣어 먹지 않고, 그냥 반찬처럼 먹었다. 부부는 굳이 그걸 지적해서 말해주진 않았다. 그런 사람 많나보다. 

*메뉴판은 언제 찍었는지 모르지만 

가격은 35K 동

= 35,000 동 

= 약 1,700원



 #예상보다 훌륭한 '분짜(bún chả)'

큰 기대 없었다. 남들이 다 엄지를 올리면 나는 흥미를 잃는다. 하노이 간다고 하니 다들 '오바마 분짜'를 얘기했지만 코웃음쳤다. 왜 굳이, 베트남까지 가서 맛집을 찾아가야 하는가, 심지어 베트남 주석도 아닌 미국 대통령이 갔던 데를...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도 분짜분짜 해서 궁금증이 있었다. 첫 번째 분짜를 먹기 위해 내가 간 곳은 역시나...길 가다가 분짜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붙인 곳이었다. 들어가서 아줌마가 능숙한 '장사 영어'를 하는 걸 듣자마자 관광객 상대로 장사를 많이 한 곳임을 알았다. 그렇다는 건 이방인에게 대충 무난한 맛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먼저 나온 하노이 맥주를 마시며 음식을 기다리는데 독일 단체관광객-엄밀히는 독일어를 쓰는 단체관광객-이 15명 가량 들어왔다. 점심시간을 살짝 지난 시간이어서 나 혼자밖에 없던 터였다. 얼핏 들어도 매우 발음이 좋은 독일어를 쓰는 베트남 아저씨가 가이드였고, 가이드보다 10살 이상씩은 더 들어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관광객이었다. 가이드가 밖에서 사람들을 마저 데려올 동안 능숙한 장사 영어가 빛을 발했다. 짧은 시간에 '치킨 누들 수프'와 '비어'가 대부분인 메뉴가 접수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분짜가 나왔고 인터넷에서 본 방법대로 먹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국물은 뜨겁지 않았다. 플라스틱 그릇이 다 밝은 녹색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사발에 담긴 라임은 통통했고, 허브들은 물기가 적당했다. 허브들을 손으로 잘라 국물에 넣고 면을 담갔다가 먹었다. 고기가 구워지는 과정을 보지 못해서 살짝 아쉬웠지만 굳이 조리과정까지 눈에 담아갈 의욕은 없었다. 뼈에 붙은 고기가 맛이 없기는 쉽지 않은지라 맛이 없으리라 우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상 밖에 고기가 맛있었다. 양념의 염도는 적당했고 불에 구워진 정도는 내가 평소에 즐기던 정도였다. 국수가 이러저리 엉겨서 조그맣게 덩어리째 뜯어내 넣어먹었다. 옆에서 단체관광객 몇몇이 슬쩍슬쩍 내가 먹는 걸 쳐다봤다. 자신있게 국수와 맥주를 시켰던 그들에게 분짜는 생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내가 현지인으로 보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마지막 날 두 번째 분짜를 먹은 곳은, 첫 번째 먹은 식당보다 많이 비싸고, 소규모 서양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곳이어서 옆자리의 수다쟁이 가이드의 설명-어떻게 먹는지에 대한-에 귀가 따가워서 맛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기본! 닭고기 쌀국수 '포가(Phở Gà)

영어 어감마저 무난한 '치킨 누들 수프'인 포가는 일단 많이 판다. 현지인, 관광객 모두 좋아하는 무난한 맛이다. 어느 곳에서 먹어도 맛이 과하지 않고 담백하다. 닭은 삶아서 일일이 손질하는 걸로 보인다. 국물은 뽀얗지만 느끼하지 않다. 면은 퍼지지 않고 식감이 적당하다. 어느 곳에서 먹어도 그렇단 얘기다. 보편타당한 레시피가 오랜 세월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매 끼니 모든 식당에서 맥주를 시켜먹었지만 닭고기 쌀국수는 맥주와는 궁합이 별로다. 둘 다 물이어서 포만감이 과해진다. 그래서 맥주를 매번 조금씩 남기게 된다. 그럼에도 실패할 걱정이 거의 없는, 기본 중의 기본인 포가. 




#로컬 카페에서 마시는 베트남 커피

걷다가 지치면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말은 거의 안 통했지만 '카페 덴(블랙커피)' '카페 수아(연유커피)'이라고만 하면 됐다. '농(뜨겁게)'이냐 '다(아이스)'냐고 물으면 하나 고르면 되고. 메뉴판이 있는 곳에선 맨 마지막을 보면 됐다. 그곳에 베트남 커피 메뉴가 있었다. 한국에서 주구장창 먹고 있는 카페라테, 마키아또 같은 음료는 메뉴의 앞에 'ITALIAN COFFEE'란에 써있고 비쌌다. 굳이 베트남까지 와서 그걸 먹을 필요는 없었다. 

베트남 식 블랙커피(ca phe den)나 연유커피(ca phe sua) 모두 매우 진했다. 어떻게 끓이는지는 검색해보면 안다. 난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 검색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진함을 내내 즐겼다. 카페인 민감증 때문에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으로서, 농도 짙은 베트남 커피가 살짝은 부담스러웠지만. 어느 카페건 작고 앙증맞은 잔에 나왔다. 별다른 기교 없는 잔들이어서 좋았다. 진하디 진한 커피에 어울렸기 때문이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카페 외의 작은 카페들은 사랑방이었다. 사람들은 유치원 의자보다 작은 의자에 적당히 쭈그리고 앉아서 조용히 얘기하며 커피를 마셨다. 혼자 여행 간 나는 혼잣말을 하면 미친놈처럼 보일 거 같아서 조용히 커피를 음미하는 척은 했지만, 실은 사람들 구경이나 실컷 했다. 

하노이에 가서 꼭 가봐야 한다는 카페에서 판다는 코코넛 커피와 에그 커피도 한 번씩은 먹었다. 코코넛 커피는 여행자 거리에 있는카페에서 먹었는데,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아이스밖에 안 된대서 취소할까 하다가 말 길게 하기 귀찮아서 그냥 먹었다.역시나 어떻게 만드는 건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 외에 먹었던 음식은,


바게뜨 빵 안에 재료를 볶아서 넣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바인 미 (Bahn My)'


전 세계 어디나 존재감을 자랑하는 '케밥' (밤 11시에 싸가서 숙소에서 맥주와...)


돼지고기 덮밥 껌승(com suon)


매거진의 이전글 탈주를 위한 도시 -하노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