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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y 21. 2019

밤의 공원에 남겨진 것들

#동네 산책 : 낙산공원

"골리앗, 무슨 일 있나?"

"죄송합니다만, 대장님. 갑옷 조각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수선해줌세. 따라오게."

"..."


-삽화집 '골리앗' 中, 톰 골드




연인들은 풍경이다.

곳곳의 벤치를, 성벽 사이의 틈을, 전망대의 안전선 앞을, 산책로의 가장자리를 부지런히 채운다. 풍경은 구경거리이기도 하지만, 스쳐 지나는 것이기에 구경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늦은 밤, 낙산공원의 연인들은 전자보다는 후자의 성격을 띤다. 나 같은 산책자는 그들을 구경하기보다는 배제한다. 그러는 게 그들의 마음도 편하고, 내 마음도 편하다. 굳이 혼자 산책을 가서 하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럼에도,


토요일 밤 10시의 연인들은 너무나 잘 눈에 밟힌다.



성벽엔 몇 미터 간격으로 옴폭 들어간 공간이 있다.

바닥에서 40cm쯤 올라간 곳이어서 그곳에 서면 웬만한 키의 사람은 성벽 너머의 야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한 사람 몸이 들어가기에 적당한 너비다. 대개의 연인들은, 한 사람이 살짝 몸을 띄워 그 공간에 들어가고, 나머지 사람이 그 사람의 허리를 잡아준다. 성벽 사이에 올라선 사람이 보는 방향은 두 가지다. 성벽 밖의 야경 쪽이거나, 자신의 허리를 잡고 있는 연인 쪽이거나.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어도, 눈엔 로맨스가 넘친다.

그건 허리를 잡고 있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야경에 황홀한 연인의 뒷모습이건, 자신에게 향한 연인의 눈이건 어느 쪽이건 로맨틱하다. 로맨스가 성벽 곳곳에 넘친다.



야경이 잘 보이는 곳엔 어김없이 벤치나 정자가 놓여있다.

그리고 어김없이 연인들이 앉아있다. 두 사람 외에도 앉을 공간은 있지만, 다들 굳이 앉지는 않는다. 완전한 2인용 공간에서, 연인들은 학교 친구들에 대해, 재밌을 법한 가족들의 에피소드에 대해, 최근에 본 재밌던 게시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제삼자에겐 전혀 흥미롭지 않은 얘기들이지만 두 사람에겐 북미 정상회담이나 미중 무역분쟁만큼 중요한 얘기다.


그들은 시간을 들여, 그곳에 두 사람의 시간을 심고 온다.



밤의 카메라는 향할 곳이 많다.

하지만 낮의 카메라와 다르게 셔터를 누르는 순간엔 더 진중해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설정을 바꿔도 렌즈로 들어오는 빛의 양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빛들이 소란스럽게 들어오는 낮과 달리, 밤의 카메라에 들어오는 빛은 적고 조용하다. 그래서 내 움직임을 최대한 절제하지 않으면 풍경은 쉽게 흔들린다. 매번, 삼각대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만, 산책길을 나설 때는 삼각대에 눈이 잘 가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셔터 버튼을 누르고 2초 뒤에 사진이 찍히도록 설정한 후에 2초 동안 숨을 멈춘다. 조금이라도 덜 흔들린, 온전한 풍경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앵글을 포기하고 벤치나 성벽이나 하다못해 음수대 위에 카메라를 놓기도 한다.


고정된 것들로 인해, 고정된 것들이 카메라에 담긴다.



11시가 넘도록 공원엔 사람이 북적인다. 왠지 민망해서 동대문 방향으로 한참을 내려다. 왼쪽으로는 성벽이 오른쪽으로는 집들이 있는 길이다. 집들의 문은 닫혀있고 별다른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간간이 오토바이사람들이 지나가지만 그들이 내는 소리는 어둠 속으로 스미는 듯하다. 한 집과 옆 집 사이에 놓인 장미나무를 찍는다. 잠시 뒤엔 성벽 위에 카메라를 두고 동묘 쪽 방향으로 야경을 찍는다. 바람이 불어 앵글 위쪽의 소나무가 흔들린 것이 고스란히 담긴다.


30초 동안의 움직임이 담긴 소나무는
구름같이 순하다.
긴 시간, 은 늘 그렇다.


다시 올라오다가, 원경을 가리는 나무가 없는 뷰포인트에 멈춘다. 정자엔 연인 대신 남자 둘이 있다. 맥주 캔이 두 개밖에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술을 먹기 위해 만난 친구는 아니지 싶다. 엿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부산에서 같이 고등학교를 다닌 친구라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스테인리스 안전 펜스와 바닥 사이의 공간에 카메라를 놓고 풍경을 담는다.


빛은 제각각이지만 그 빛들이 모인 풍경은 어수선하지 않다.

여러 번을 찍는다. 여전히 어수선함 담기지 않는다.



낮의 풍경은 종종거린다.


움직임이 숙명인 듯, 구름도 바쁘고 사람들도 바쁘다. 찰나를 담아내고 뿌듯해 하지만, 찰나를 담는 찰나의 나조급하다. 찍고 확인하고 이동한다. 사진을 찍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산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떨어진 뭔가를 줍기는커녕, 뭐가 떨어졌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움직인다. '나중에 찾지 뭐', '나중에 정리하지 뭐'라고 스스로에게 성의 없는 약속을 하면서, 나 아닌 것들을 따라다닌다.



그래서 낮에 벌여 놓은 말들이 의미를 잃기 시작하는 저녁이 되면, 지칠 때가 많다.

대개는 술자리의 왁자함으로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그조차 여의치 않을 때는 깊은 밤을 기다리며 숨을 고른다.


어수선함을 감춘 늦은 밤에는
내가 흘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 식지 않은 욕망, 머뭇대다가 놓쳐버린 기회 같은 것들이 무시로 떠오른다. 밤에는 자학과 위안이 공존한다. 그래도 되니까, 그래도 심란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내가 서 있는 풍경이 어수선하지 않으니까.



새벽 1시에 가까워진 시간, 사람들은 현저히 줄었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성벽 쪽으로 카메라를 향한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복수가 울고 있는 전경의 머리를 빗겨주던 그 벤치다. 성벽을 비추던 조명이 꺼진 지는 꽤 됐다. 30분 가까이 먹구름이 가득한 성벽 풍경을 타임랩스로 찍는다. 방금 전까지 거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산책로며 성벽에 계속 등장한다. 술과 안주를 잔뜩 먹고 소화 겸 올라온 동성 친구들도 있고, 귀가시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연인들도 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온 모녀도 있고 태국 혹은 필리핀에서 온 유학생들도 지나간다.



고양이 한 마리가 다급하게 숲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뒤 다른 한 마리의 고양이를 쫓으며 산책로로 튀어나온다.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던 두 마리는 다시 숲으로 들어가더니 조용해진다. 둘이 사랑싸움을 하는 건지, 영역 싸움을 하는 건지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뛰어다니고 싶었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어디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집으로 내려가는 가장 짧은 길로 까 하다가, 완만한 길을 택해 돌아내려 오기로 한다. 느리 걷는 노란색 고양이가 보이길래 잠시 서서 카메라를 그쪽으로 향했다. 같이 움직임을 멈췄던 고양이가 빠르게 달아난다. 카메라를 고양이의 동선에 맞춰서 움직였지만 역부족이다. 사회성이 없는 고양이였던 걸로 결론을 내리고 다시 갈 길을 간다.



나무들이 원경을 가린 풍경이 이어진다. 그 역시 하나의 풍경이다.


문득, 뭔가가 떨어진 듯해서
멈춰서서 오던 길을 돌아본다.

가로등의 노란 불빛이 비추는 길 위에 어떤 이질적인 사물도 보이지 않는다. 길과 하늘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집으로 오는 내내 몇 번이고 멈춰서 뒤돌아 길을 쳐다본다. 어쩌면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는, 내가 흘리고 온 것들이 눈에 뜨일지도 모른다는 가벼운 기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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