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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y 28. 2019

식물의 시간

#산책 : 이른 아침의 종로, 을지로 골목

밤이면 내 언어는 짐승이 되고 새벽엔 식물이 되는 거예요. 무슨 소리냐고요.

어떤 생명은 피를 토하고 죽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안에 있는 식물들을 토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희곡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중, 김경주 作 (문학동네, 2014년)




쉬는 것들은 식물적 체질을 가진다.

사람이 잠시 떠나갔기에 그곳에선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움직임이 멈췄기에 사물들의 관절에서 나오는 소란도 없다. 공간은, 주체할 수 없는 '짐승의 시간'이 지난 후에, 자신의 안에 자라는 식물들을 모두 내어놓고 조용히 '식물의 시간'을 즐긴다.


북적대던 골목에선 겨우 자기 자리 하나 마련하는 듯했던 작은 것들은, 늦은 밤이 되면 그 공간의 주인이 된다.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는 헐렁하고, 그 넉넉한 틈으로 인해 각자는 풍요롭다. 이른 아침 여전한 식물의 시간을 걷는 산책자에게 그 풍요로움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담배가 상징해왔던 수많은 것들은, 사람들과 함께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연기를 잃은 꽁초들이 즐비한 재떨이 통에는, 기척 없는 체념만 남아 있다.  그것은, 바벨을 다시 들어 올릴 수 없는 역도 선수의 표정이나, 바퀴를 구분할 수 없는 아스팔트의 싱크홀 같다.


성실한 사람들은 꽁초 하나 통 밖에 던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토해놓고 죽기보다는, 봉해놓고 잠시 사라지기를 선택했다. 돌아가는 길이나 돌아오는 길에 그들의 뒤에는 뭔가가 질질 끌리겠지만,


적확한 선택이다.
몇 시간 뒤면 그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점포들의 문이 닫혀야, 간판은 비로소 눈에 뜨인다.


자획의 미려함보다는, 문자의 가독성을 중시하는 스타일들이다. 저마다의 작명 이력이 있겠지만, 길을 지나는 이나 물건을 사러 오는 이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귀하게 불리는 것보다 자주 불리는 것이 골목 점포들 이름의 목표였을 것이다. 간판에 덧입혀진 세월만큼 이름들은 오래 불려 왔을 것이다.


47호 길다방의 오픈 시간을 난 여전히 알지 못한다.



공간은 늘 경계를 갖는다.

한 가게가 점유한 영역과 그 밖의 영역은, 실보다 가는 경계로 맞닿아있다. 하지만 경계를 사이에 둔 사람들은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 내 공간 옆의 공간들이 모여 더 큰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이 사람들을 불러들일 것이다.


경계로 인해 공간은 의미를 갖는다. 그건, 사람들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우리는 옆의 누군가들로 인해 의미를 얻기도 하지만, 의미를 잃기도 한다. 경계(境界)는 합류의 지점이 되기도 하지만, 종종 경계(警戒)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인간의 법칙은 빈 공간에선 큰 의미를 갖진 않는다.



쉼 속에서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은 조용히 움직인다.


빈 공간을 활보하는 그들에게선 여유나 조급함,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조용히 움직인다. 그들의 목표는, 쉼이 멈추고 공간이 사람으로 들어찰 때, 어느 구석 하나 이유 없이 쉬지 않게 하는 데에 있다. 영업시간이 전에 그들은 등 뒤에 물건들을 싣고 빈 공간들을 조용히 채워간다. 그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은 널찍해진 골목 어디에나 대충 주차해도 되는 자유 정도가 아닐까.




'탈 것'들이 서 있는 풍경은, 묘한 만족감을 준다.

탈 것들은 스스로의 공간을 비워서 무언가를 채우고 이동한다. 멈추지 않을수록 자신의 가치는 높아진다. 예기치 않은 정차(停車)는 스스로를 낡아 보이게 할 것이다. 일정 부분의 보류(保留)는 불안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쉬고 있는 탈 것들은 평온해 보인다. 그 안에 들어가 잠깐 몸을 누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울과 장갑이 자기 자리에 널려 있다.


거울은 같은 골목을 비추고, 장갑은 같은 손을 탐한다.

하지만 같은 것을 담는다는 사실이 비난받을 순 없다. 촌스럽다고 할 수도 없다.


반복된다는 건 충실하다는 것이고, 충실하다는 건 책임진다는 것이다.

거울은 골목을 책임지고, 장갑은 손을 책임진다.

거울은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을 책임지고, 장갑은 그 손을 잡는 누군가들을 책임진다.



아침 7시, 시장의 어느 식당에서 백반을 시킨다.


백반이란 말에는 불확실함이 가득하다. 우리는 무슨 반찬이 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굳이 따져 묻기 싫기에 백반이란 메뉴를 택한다. 아침 7시의 식당에선 생선 한 조각과 국 한 그릇, 그리고 오뎅볶음을 비롯한 다섯 가지의 반찬이 나온다. 밥은 스테인리스 공기를 가득 채우고, 아욱국은 적당히 뜨겁다. 왠지 이 백반을 다 비우면, 하루를 성실하게 일로 채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다 비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음식이 가득했던 처음의 쟁반과, 보리차를 마저 비우고 일어나며 본 쟁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곧 거리에 내어놓은 식물들은 다시 안으로 옮겨지고, 성실한 짐승들의 시간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과 소리로 북적대는 그 풍경은 어쩌면, 많은 것들을 비운 채 숨을 고르는 지금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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