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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y 28. 2019

선은 움직이고 선은 잡힌다

#움직이는 것들의 풍경 : 낮과 밤

 표어를 잔뜩 문 제비가 이륙한다


(술집 벽 낙서 中)





빠르게 지나는 것을 사진에 담으면, 멈추려는 듯 보인다.
마치 빈 풍경에 끼어들기를 주저하는 것처럼.

착각이다.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려는 것들은 주저하지 않는다. 눈으로 직선을 상정하고 물리적으로 직선을 따른다. 주검에 살의를 남기지 않으려는 맹수처럼, 흔적도 없이 복판을 가로지른다. 직선으로 움직인다는 건 목적지가 있다는 의미다. 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것들이 죄다 목적지를 갖고 있다는 건 새삼 놀랍다.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자전거가 좁은 임시통행로에서 나를 곡선으로 비껴 앞으로 나간다. 어깨에 맨 카메라를 빠르게 들지 못한다. 옆모습을 훔치려다 뒷모습을 훔친다. 카메라를 벗어난 후에도 자전거의 직선은 날카롭지 않다. 흙바닥인 탓도 있고, 속도가 느린 탓도 있다. 자전거는 곡선은 아니지만 직선도 아닌 선을 그으며 나아간다. 용융을 굳이 피하려 하지 않는 철광석 같다.


덕분에 그와 그의 자전거는, 

풍경의 복판을 가로지면서도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주오는 것들은 서로를 피한다. 서로의 옆을 지날 때 거리는 손바닥 한두 뼘 정도겠지만, 누구도 머뭇대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믿음은 아스팔트에 차선의 형태로 존재한다. 선이 서로를 지켜준다. 선은 급한 각도로 그어지지 않는다. 그럴 경우, 선은 모든 사람들을 이끌 수 없다. 그러기에 선은 원만한 직선으로 이어진다. 도로는 결코 끝나지 않지만, 선은 중간중간 끝이 난다. 그럴 때 선을 따르던 것들은 주위를 살핀다.


혼자선 모든 걸 건널 수 없다.


밤의 풍경을 오랜 시간 담으면, 움직이는 것들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것은 정직하기도 하고 정직하지 않기도 하다. 빛을 지닌 모든 것과 빛이 반사된 모든 것이 담긴다는 점에서 정직하지만, 눈으로 보는 풍경과는 다르기에 정직하지 않다. 빛의 무리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화려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하나하나의 선은 실종됐기에 허무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사진을 찍고 나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뻔한 멜로디가 이 풍경에 얹어져야 비로소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움직이는 것들이 만드는 궤적은 색깔과 높이에 따른다.


같은 높이에 있는 것들은 뭉쳐지지만 높이가 유난히 다른 것은 온전하게 자신의 색을 유지할 수 있다. 차의 뒷모습 쪽으로 카메라를 놓으면 붉은빛이 가득이고, 차의 앞모습 방향으로 놓으면 녹색과 노란색이 가득이다. 색과 무관하게 모든 빛은 도로 위에 떠다닌다. 어느 눈에도 잡히지 않을 것처럼.



주춤한 것들은 형태를 남긴다. 아주 잠시였더라도.


주춤했던 시간만큼 남겨진 형태는 진하다. 주춤할 이유는 언제나 있다. 내처 달려야 할 이유가 언제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흔적을 남기며 고심할지, 흔적도 없이 움직이고 나중에 생각할지는 선택의 문제다. 사진에서처럼, 사라지는 빛 사이에 남은 형태들이 딱히 안쓰럽거나 고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모두 같은 길을 따라가는 중이고, 모두 같은 선을 그리는 중이다.


그리고, 움직이는 모든 선은 같은 풍경 안에 잡힌다.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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