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where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로맹 가리
세상에 완전한 판단,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 그 대상이 너 자신이라면, 니 감정이라면 더더욱. 결국 불완전함을 기반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걸 인정해야 해. 싫은 일이지만, 해야 하는 일이랄까. 누군가를 만나는 일, 누군가를 이제 보지 않게 되는 일.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수많은 일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마찬가지야. 완전한 판단, 같은 건 시도하지 않는 게 좋아.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 불완전하고 흔들리는 과정이 실제로 우리가 겪는 거니까.
일반적인 이별에 대해,
만남은 옳고 이별은 그르다, 혹은 이별 전이 좋고 이별과 그 후는 힘들다, 같은 이분법적인 판단은 매우 잘못됐다고 생각해. 명쾌하지만 많은 것을 담지 못하는 오류지. 사랑이 시작이고 이별이 끝이라는 생각도 마찬가지야. 흐릿한 경계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사랑(과 이별)을 대하는 우리의 기본자세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말이야. 애착과 질투를 포함한 격한 사랑 후에 오는 이별을 그렇게 덤덤하게 말하는 것도 위선이 아닐까 해. 아닌 척해야 하잖아. 세상이 무너진 듯 술을 먹고 힘들어하면서, 이별은 끝이 아니고 그 사람과의 우정은 남아 있다, 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런 두 가지 전제를 가지고 얘기한다면,
미니 이별들이 있었어.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졌지. 즐겁게 말을 섞고 섹스를 하고 서로의 힘든 점을 나눴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뒤, 관계는 '소멸'했어. 소멸 뒤에는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좋은 감정에서 비롯된 우정이나 미소를 품게 하는 향수 같은 게 남았지. 미니, 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는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 이 수식어는 관계의 깊이가 작다는 뜻이 아니라, 만남과 헤어짐을 모두 겪은 후의 변화가 작다는 뜻이야. (이건 지극히 내 관점에서야. 상대방들은 어떨지 잘은 몰라.)
어떻게 가능했을까. 몇 번의 길고 힘든 관계에 지쳐서였을 수도 있고, 연애에 목매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어. 내 옆의 한 사람에게 모든 걸 의지하지 않게 돼서 말이지.
조심스럽게 시작을 하고,
무리하지 않는 관계를 하고,
친절하게 헤어지는 것.
그게 내 미니 이별의 공식이었어. 이렇게 적어놓으니, '진정한 사랑'의 반대말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호감이 가는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내 감정을 비추고, 그 사람이 당황하지 않는 방법으로 가까워지고,
마지막엔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며 헤어지는 것이었으니까. 어쩌면, 불 같이 타올라 앞뒤 안 재고 덤벼드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어. 찬찬히 다이얼을 돌리면서 상대방의 주파수에 맞춘달까. 조금씩 잡음이 없는 쪽으로 말이야. 그러다가, 그 파장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이 되면 무리해서 듣지 않고 다이얼을 돌리는 거지. 곰탕이 아니고서야 무턱대고 오래 팔팔 끓인다고 국물이 우러나오진 않잖아. 잘못하면 재료도 맛도 국물도 먹는 사람 기분도 다 망치잖아. 적당한 선을 맞추는 거야. 가까워질 때도, 멀어질 때도.
잘 살고 있어 다들. 나를 포함해서.
흔들림, 타격, 단기간의 우울감 같은 것들은 당연히 있었지. (그런 것마저 없으면 그건 연애, 라는 단어보다 파트너십,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관계겠지.) 하지만 다들, 잘 살고 있어. 가끔 같이 술을 마시고 밥을 먹어. 메신저를 통해서 뜬금없는 안부를 던지기도 하고. 애인으로서 만날 때 정도의 매력은 없어. 있다면 내가 매달리겠지. 그러면 안달 나는 표정 때문에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할 테고. 하지만, 처음 연애를 시작할 즈음에도 인간적인 매력에 끌렸고 그런 매력은 여전들 해. 나와 그녀들의 관계는, 과거였지만 현재인, 관계라고 할 수 있어. 니가 지금 어느 시기에 머무르는지, 니 옆에는 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앞으로 너도 미니, 한 이별들을 겪을 거야. 이별 전에 미니, 한 만남들이 먼저 오겠지. 그럴 때, 최대한 친절하길 교류하길 바래.
그럼...
P.S.
앞에서 인용한 문장의 앞 부분은 이렇게 시작해.
"하지만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꼭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관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류 방식이 원활한지만이 문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