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의 밀도, 미성숙의 경쾌함

#시모키타자와

by 너무 다른 역할

4월 30일 (일) 도쿄 시모키타자와


한 옷집.

"이거 진짜 마리화나 냄새예요."

모기향이 우릴 즐겁게 했다.



#로모 #도쿄 #lomo #tokyo
너의 그날 일기는
'날은 맑아있었다'로 시작해.

같은 일기장의 앞부분, 넌 회사의 높은 사람에게서 이해 못할 상소리를 듣고 우울했었지. 좋았을 거야 그 아침은. 그걸 멀리서 달래주던 친구가 옆에 누워 있었으니까. 난 가만히 앉아서 그날의 풍경들을 떠올려. 생각보다 희미해. 다른 여행지의 풍경보다. 왜 그럴까, 생각하니 그 풍경 안에 그녀가 있어서겠네. 그녀, 라는 풍경. 눈 뜰 때부터 다시 감을 때까지, 아니 눈을 감고서도 계속 신경을 쓰고 싶은 매끄러운 풍경. 그래 그때 너는 그녀와 함께였어.


낮은 단층 건물들, 번잡함이 쓸려간 듯한 도로, 익숙하지만 생경한 모습의 전봇대, 지하 라이브 클럽의 공기, 한국보다 1.5배 정도 높이 달려있던 교통안전용 볼록거울, 역 주변에 흐르던 버스킹, 상점의 좁고 긴 나무 출입문들. 시모키타자와는 그녀가 너에게 소개주고 싶은 동네 1순위였어. 홍대와 비슷하지만 뭔가 또 다른 곳이라며 한국에 있는 너에게 종종 말하곤 했지. 열심히, 봤어 넌. 너의 들뜬 표정을 기대하는 그녀의 얼굴이 바로 옆에 있어서. 솔직히 묘한 자유로움이 있는 곳이었어. 아마 그녀가 없었다면, 계속 말을 걸고 만지고 싶은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있었다면, 넌 그때보다 더 시모키타자와를 좋아했을 거야. 그리곤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말했겠지. 도쿄 가면 시모키타자와는 꼭 가야 돼. 너무 좋아,라고.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어. 니가 열심히 본 건, 동네만이 아니었으니까. 온 신경의 대부분을 뚝 잘라 그녀에게 주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일본이었고, 그녀가 도쿄였고, 그녀가 시모키타자와였어. 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서 전해지는 체온이 그곳의 온도였고, 그녀의 재잘거림이 그곳의 백색소음이었지.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넌 친구들에게 시모키타자와라는 동네를 추천하지 않았어.


큼지막한 자메이카 국기와 밥 말리의 얼굴이 걸려있는
옷 가게였어

그녀가 마리화나 냄새라고 말했을 때 넌 카트만두에서 맡았던 하시시 냄새를 떠올렸어. 그리고 내보인 건, 글쎄, 라는 표정이었을 거야. 진짜, 글쎄,였으니까. 그래도 뭐가 즐거운지 우린 서로를 보고 깔깔댔어. 그리고 사라는 옷은 안 보고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냈지. 옷걸이 밑에 있던 모기향.

그런 게, 그때는 좋았어.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몇 달 후, 넌 그녀와 헤어졌어.


성숙의 여부를 나이와 연관 짓는 일은, 미성숙과 성숙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야.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성숙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아. 나이가 들며 늘어나는 건, 미성숙을 감추는 잔기술 정도니까. (그게 얼마나 우스운지 너도 나중에 기술을 써보면 알겠지) 하지만, 넌 그녀와 헤어진 후 성숙했어. 많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결별.


과정은 짧았고, 그 후에 혼자 견딘 시간은 독하지 않았어.

그때 넌, 이별을 하는 방법을 조금, 배운 거야. 이별을 대하는 점잖음과 함께. 혹시 못 견디게 사랑하지 않아서냐고? 아니야. 넌 그녀의 모든 걸 탐했어. 둘은 관계 안에서 따뜻했고, 같이 있는 시간은 빛이 났었어. 넌 그녈 아끼고 그녀는 널 소중히 했어. 그걸 의심하진 않았으면 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별의 과정이 짧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메신저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여서 메일을 주고받거나 시간 맞춰 MSN 메신저를 켜는 게 서로에게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늘 부족했겠지. 그래서 조금씩 아쉬움을 덤덤함으로 바꾸며 이별을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네. 헤어진 후 넌 조금 다른 사람이 됐어. 연애 상대 말이야. 이유 없는 조바심을 무시할 줄 알게 됐고, 같이 있는 시간에 좀 더 감사하게 됐지.

이제껏 겪었던 성숙의 과정은 제각각이었어. 그 이후에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헤어졌지. 성숙할 때도 있었고 성숙한 척해야 할 때도 있었어. 과정은 짧기도 하고 길기도 했고, 끈적이기도 하고 물과 기름처럼 튕겨낼 만큼의 이질성을 참기도 했어. 그리고 성숙의 밀도는.... 일정했어. 거의 말이야. 액체가 기화하는 지점이 늘 같듯이, 말을 아끼던 사람이 말을 내뱉는 상황이 늘 비슷하듯이. 내 성숙의 밀도에 미치지 못하는 이별도 있었어. 그런 이별 후에는 악다구니와 체념의 기억 외에 남는 건 없더라. 이별에 대한 고마움도, 만남에 대한 고마움도 없었어. 이별 자체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하지만



밀도가 있는 성숙은 달라.

그건 나를 남기고 상대를 남겨. 상대의 얼굴을 떠올리면 내 얼굴엔 아련함과 미소가 동시에 떠올라. 이번에 성숙하기 전, 그러니까 미성숙한 두 사람의 모습이 풍경처럼 한 컷 한 컷 지나가. 그 풍경에는 둘이 내뿜는 경쾌함이 배경음악처럼 깔려있지. 둘은 경쾌하게 사랑을 하고 경쾌하게 다투고, 경쾌하게 헤어진 거야. 구질구질하거나 뜨악, 할 정도의 감정으로 그 시절을 기억하기보다는, 지금의 성숙한 나를 가능하게 했던 미성숙 상태의 나를 떠올리는 거지. 그런 기억이 지나간 후에, 나는 조그맣게 안도할 수 있어.


자, 앞으로,

많이 경쾌하길 바래. 그리고 성숙하길 바래.


그럼...



P.S.

그래도 말이야. 이별은 늘 힘들어. 늘 미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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