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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un 18. 2019

달을 보는 나태함에 대하여

#흐린 밤의 산책

나는 누구나 한번 가는 길을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었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악기(樂器)를 가진 아이와 손 쥐고 가고 있었다. 


너무 조용하다. 


-시 '풍경' 中, 김종삼 시선 (2014년, 지식을 만드는 지식)





늦은 밤, 차분함이 생긴다. 

주말이 끝나가는 일요일 밤에 누구나 느낄 법한 감정이다. 냉장고 문에 붙은 온갖 것들을 다 떼어내고 자석 하나만 남긴다. 나무에 그려진 점선은 선명하지만 희미하다. 선은 자작나무의 질감을 가르지 못한다. 어느 여름에 찾아간 북극권(arctic circle)의 경계선은 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산타클로스 마을엔, 털갈이하는 순록들의 몸에서 나오는 먼지 같은 털들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 따분한 일요일의 늦은 밤 같이. 



좁은 집안에서 몸을 놀린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평화롭다 못해 지루하다. 정리해야지 하는 것들을 정리하지 않고 또 주말이 가버렸다. 정리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적은 것으로 만족한다. 오후에 시작해 밤까지, 소파에 온 몸에 절반쯤 잠길 정도로 자버렸다. 일어나니 뇌가 축축해진 기분이었다. 숙면은 오랜만이다.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래도 될 만한 주말이었다. 목록을 엎어두고 그냥 책상에 앉아 영화를 봤다. 새벽 1시가 돼서 비로소 산책을 하고픈 의욕이 생겼다. 주인공이 말기 암으로 병상에 있는 친구의 곁에 눕는 장면에서 재생을 멈추고 옷을 입는다. 


또 다른 나태를 찾아 문을 나선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본다. 친절해 보이지 않는 석류나무의 가지 너머로, 달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나무 위로 전선이 겹겹이고 전선들의 위에는 구름이 겹겹이다. 달은 구름의 층을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달빛은 거리에 도달하다가 못 하다가를 반복한다. 느리게 사진 몇 장을 찍는다. 사진에도 나태함이 그득이다. 요즘 머릿속을 채우던 고민거리가 뭐였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달을 보는 건, 나태(懶怠)를 취하는 일이다. 


나태의 증거는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움직임의 속도, 근육에의 자극, 그리고 말의 절대적인 수 같은. 특히 말이 많아진다. 엄밀히는 풀려나온다. 말이 갇히는 지점, 즉, 어느 정도의 의지 없이는 깨지 못할 침묵의 지점들을 다 통과해서 말들이 나온다. 지분대거나 징징대는 말, 첨언 없이 남의 말을 되풀이하는 말, 미뤄뒀던 고마움이나 방치했던 원망의 말 같은 것들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혼자 거리에 있었기에 풀려나온 말들을 입안에서만 굴린다. 그 정도로 만족한다. 말들은 다시 안으로 숨을 이유가 없다. 



흐린 밤에는 모든 정물(靜物)에 무게가 실린다. 

아마 먼지의 질량도 날씨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이 자리를 피한 거리에서, 빛을 반사하는 모든 것들이 차분한 형태를 취한다. 방송 녹화용 세트보다는 연극 세트 같은 느낌이다. 곧 철거될 분위기의 차분함이 아니다. 산책은 점점 조용해진다. 만족스럽다. 



누군가가 얌전하게 세워놓은 자전거는 벽으로 기울었다. 색(色)이 선명해서 기움은 더 도드라져 보인다. 



누군가가 모는 자전거가 6차선 도로를 관통한다. 궤적이 얌전해서 밤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더 어지를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차피 다시 채워질 일들을 적당히 마무리했을 때, 다소 심란했던 인간관계를 맥없이 마무리했을 때,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옷이 생각 외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 때 등등. 그럴 때면 하늘로 고개가 젖혀진다. 달이 떠 있는 밤과 달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의 빈도수 차이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지를 게 사라진 곳의 하늘엔 늘 달이 있다. 달의 주름과 주름 사이에서 빛이 새어나온다. 



제대로 된 녹색 하나 갖지 못한 달 아래를 걷는다. 

누군가의 손을 쥐고 싶은 조용한 밤이다. 



달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양이가 휴식을 취한다. 

달빛을 대신한 인공의 빛을 이불 삼아 시멘트 계단에 몸을 누였다. 고양이는 천천히 걸어와 앉을 때, 사진기를 눈에 가져다 대는 나를 10여 초 동안 바라봤었다. 하지만 머리를 땅에 댄 후부터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흐린 밤에 정물이 하나 더 추가된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는다. 



달을 괘념할 땐 늘 조심성이 없었다. 


달은, 달 자신과 달 아래의 인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뭉쳐버린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일부러 조심하지 않는다. 달이 반원으로 떠 있는 동안, 나태로 인해 우리의 말과 표정은 과감하다. 그걸 이렇게 흐린 밤 산책에서야 새삼 깨닫는다. 회색의 풍경을 되밟아 집으로 돌아간다. 내내 조용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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