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무 다른 역할 Jun 09. 2019

둔식(鈍食)의 축복

#미식가 되기를 거부하는 어떤 취향

이 자연 도태설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혀는 운이 좋아 밖으로 나온 내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입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히 몸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 내장이기도 하다. 혀는 아직까지 독특한 변종이다.


-산문집 '밀어(密語)' 중, 김경주 (문학동네, 2012년)




음식에 둔감하다.


<배만 채우면 된다> 류는 아니다.

<몸에 해가 되는 음식을 참는다> 류도 아니다.

<불합리한 품질과 가격의 음식을 그냥 넘긴다> 류는 더더욱 아니다.

<미식 문화를 비웃는 반(反)미식주의자>도 아니다.


그냥, 미각이 둔하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음식에 관해서 남들보다 덜 까다롭다. 정도가 심하진 않다. 간이 덜 되거나 더 된 정도는 알아차리고, 지나치게 자극적인 음식을 마냥 긍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런 것이다. 신장개업한 식당에서 회식을 한 후 다들 맛없다고 툴툴댈 때 혼자 '맛있던데...'라고 말하거나, 유난히 남들이 손을 대지 않는 밑반찬을 공평하게 비워내는 정도. 맛집이라는 곳을 굳이 검색해서 찾아다니지 않고, 눈에 띄는 적당한 식당을 선호하는 정도. 누군가가 공들여 준비한 음식은 평소보다 더 맛있게 먹는 정도.


비유하자면, 정유회사를 까다롭게 고르지 않을 뿐 경유와 휘발유를 헷갈리지는 않는 그런 타입이다. 물론 고급휘발유를 마다하지도 않는다.



이런 나의 음식 취향을 자랑할 생각은 없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음식에 대한 나의 덤덤한 태도는, 선택이 아니라 상태일 뿐이다. 미식을 뽐내는 일상에 대한 냉소는 전혀 없다. 젓가락 대신 카메라를 먼저 대는 모습은 귀엽기도 하고 나도 종종 한다. 물론 기록을 남긴다는 한정적 의도에서지만. 사진에 담긴 음식들은 미적으로 아름답기도 하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미식 취향은 긍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취향이 아니다. 누군가들이 올린 맛집 사진과 후기들은 전혀 부럽지 않다.


둔식(鈍食)이란 말은 나 혼자 쓰는 말이다.


맛에 대해, 식문화에 대해 둔감한 스스로의 취향을 의미한다. 내 생각에, 음식은 탐하지 않아도 탐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루 세끼 혹은 비슷한 빈도로. 따라서 굳이 더 맛있는 음식을 탐하느라 정력을 낭비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하나의 길을 포기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세상의 또 다른 형태적 아름다움에 신경 쓸 시간이 늘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굳이 둔식(鈍食)을 말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먹는 데 관심이 없으면 세상 편해진다.


1. 미식(美食)이라는 취미의 기회비용에 대하여


미식가(美食家)를 자처하면 어쩔 수 없이 조바심을 내게 된다.

음식평론가나 기자, 혹은 미식의 영역에 깊숙이 관여한 준전문가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평범한 미식가도 조바심을 낸다. 애써 찾아갔는데 못 먹을까 봐, 데려간 누군가가 '음 나는 그다지...'라고 말할까 봐, TV나 포스트에서 본 만큼 이 식당의 음식을 즐기지 못할까 봐 신경을 쓴다.


미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맛집을 찾아내는 수고, 줄을 서는 수고, 좁은 공간을 참는 수고, 말도 안 되는 가격이나 불친절을 참는 수고 같은... 인내심은 강해질지 몰라도 불편한 일들이다. 여행을 갔을 때는 더 그렇다. 그 도시에 가면 먹어야 할 것들을 직접 먹는 건 큰 즐거움이지만, 꼭 특정한 맛집을 찾아 이러저러한 노력을 들이는 건 불필요한 기회비용이다. 이런 데 집착하다 보면 다른 것들을 즐길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둔한 혀를 가진 나로서는,


미식이라는 취미를 추구하는 건, 그다지 효율적인 일이 아니다.


2. 미식이라는 트렌드에 굳이 감응해야 할까


어쩔 수 없이 메뉴와 식당을 고민해야 할 경우가 있다. 사람들의 선호와 레스토랑에 대한 평가를 취합해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럴 때면 늘 피곤해진다. 목적이 있는 식사 자리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노력을 하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이런 노고를 계속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하루 중에, 먹을 걸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는 걸 종종 스스로 인식할 때 나는 이상한 좌절감과 패배감을 느낀다.


꽤 대중적인 트렌드인 미식을 별생각 없이 따라 하지 않으면 정서상으로 도움이 된다. 우선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다. 앞서 말했듯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되고, 끼니를 때울 때 장소적 시간적 제약도 현저히 줄어든다.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식당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진 듯 급하게 먹을 필요가 없고,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무리해서 맞춰갈 필요도 없다.


반대로 기분이 좋을 이유는 확실하다. 내가 편한 시간대에 찾아가서 여유 있게 식사를 했을 때 오는 포만감이 그것이다.



로컬 메뉴를 찾아다닐 때 둔식 취향은 특히 도움이 된다.

대개 유명한 메뉴를 가진 맛집 근처에는 OOO골목이 형성된다. 후발주자들은 더 친절하고, 공간이 넓고 인테리어도 괜찮다. 그리고 원조 맛집처럼 사람들로 북적이지도 않는다. 한적한 곳에서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조여져 있는 나사를 몇 개 풀고 밥을 먹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3. 미식을 추구하다가 원초적 즐거움을 망치는 오류에 대하여


요즘의 미식 트렌드는 주로 '쫓아가는 것'이다.

TV에서 소개한 어느 식당, 검색에서 상위에 랭크된 맛집 같은 데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TV 프로그램 제작진이 주관적으로 평가했다든가, 검색 결과가 광고비에 어느 정도 좌우된다는 걸 알아도 그 트렌드를 쫓는다. 그거 말고는 별다른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입에 음식이 들어가기 전부터 지친다. 먹으면서도 제대로 즐기는지 스스로 판단하느라 지치고, 먹고 나서도 후기를 작성하거나 친구들에게 자랑하느라 지친다.


먹는다는 원초적인 즐거움이 미식으로 인해 망가지는 오류인 것이다.



둔식가는 미리 기대해서 실망할 일이 전혀 없다.

어느 정도 기대치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 자체가 없기에 오히려 음식을 더 잘 즐길 수 있다. 검색을 너무 많이 할 경우, 실제로 나온 음식은 뻔하게 보인다. 안도는 되지만 김새는 일이다. 처음 먹는 음식이 서빙됐을 때 의외성도 둔식가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멍 때릴 시간이 많다는 것도 둔식가의 장점이다. 식당과 음식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선택할 게 거의 없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빈다. 빈 시간은 늘 반갑다. 멍을 때려도 만족스러운 시간인 것이다.



4. 먹는다, 는 건 온전한 경험이어야 하기에


미식은 언어적으로 꽤 연약한 취미다.

우리는 TV에 나온 누군가 혹은 검색 상위에 있는 포스트를 만든 누군가의 표현에 쉬이 갇힌다. 아주 가끔 나도 가서 먹고 싶다는 욕망이 들 정도로 신선한 표현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개는 과잉된 표현으로 그 음식의 희소성을 포장한다. 그걸 가이드로 해서 찾아간 식당에서 우리는 한정된 메뉴를 시키고, 나의 혀와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누군가의 말을 네온사인처럼 띄워놓은 채 음식을 먹는다.


미식을 포기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내 맘대로 식당을 택하고, 메뉴를 고민한다. 음식에 대해 평가를 하고 싶으면 내 언어로 표현하면 된다.


간단하지만 온전한 경험이다. 스스로 맛을 체화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낯선 나라의 새벽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아침 식사를 위해 잠시 정차했을 때 둔식가는 맛이 강한 커피 한잔과 뻔한 맛의 쿠키 몇 개만으로도 더없이 만족할 수 있다. 허기를 때워버리면서 눈 앞에 펼쳐진 그 나라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혀 끝의 세상에만 집중하다 보면 보지 못하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




몸 안에 있으면서 몸 밖으로 나온 내 혀와 불화를 겪고 있지 않다.


내 혀는 실용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상한 음식을 구분할 수 있고, 과도한 음식이 몸으로 들어오지 않게 다양한 맛을 뇌로 전달한다. 하지만 혀를 다른 기관에 비해 우대하지 않는다. 이 변종의 기관은 나에게 있어 다른 기관과 같이 평범하다. 어느 날 사고나 노화로 인해 현저히 그 기능이 떨어지거나 상실될 경우엔 특별히 대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미식의 중심에서 둔식을 외치는 건, 의외로 즐거운 일이다.

맛이 없다, 고 투덜대는 사람들 옆에서 혼잣말처럼, 나는 괜찮은데,라고 중얼거릴 때 나는 웃고 있다.


둔식 취향은 나에게 축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이름은 눈물이 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