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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y 25. 2019

그 이름은 눈물이 나지 않는다

#종로의 어느 양꼬치 집에서

그 이름은 눈물이 난다.

그 이름을 예기치 않은 곳에서 보면 눈물이 난다.

그 이름을 마음을 놓은 어느 시간에 보면 눈물이 난다.

그리고, 그렇게 눈물을 흘리다보면 하나의 경계 넘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늦은 밤 술집에서, 휴대폰에 뜬 이름을 보고

난 울지 않았다.

잠시 철렁했고, 이후로는 웃었을 뿐이다.

간밤의 취기가 가신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지방에 계신 어머니는 종종,

아버지를 꿈에서 본 얘기를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여러 번인지라, 꿈에서의 아버지 모습은 다양하다.

어떤 날은 편안하게 웃고 있었고, 어떤 날은 잠을 잤다, 고 했다.

어떤 날은 예전처럼 농담을 건넸고, 어떤 날은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고 했다.

어떤 날은 평소 신었던 운동화를 신었고, 어떤 날은 노년엔 잘 안 신던 구두를 신었다, 고 했다.


40여 년을 같이 살았던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아직 멈춤 상태가 아니다.

아버지를 언급할 때 어머니는 현재 진행형 어미를 사용한다.

그렇게 아버지는 떠나지 않고 어머니의 옆에 있다.


딱히 무심하지는 않았으나, 딱히 다정하지도 않았던 아들인 나에게

아버지는 멈춤과 움직임의 중간 어디쯤에 있다.


그곳은, 부재와 현존의 중간 어디쯤이기도 하고,

추억과 현재의 중간 어디쯤이기도 하다.

굳어지지 않은 굳은살이기도 하고, 증발하지 않은 장맛비 같기도 하다.

언젠가는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말라가며 먼지를 날리겠지만,

여전히 안엔 물이 찰랑이는 웅덩이 같기도 하다.


그러기에, 아버지의 이름을 보거나 을 때

그립다기보다 혼란스러웠다.

슬퍼서 울면 아버지는 아예 멀리 떠난 거라고 인정하는 거 같았고,

동요 없이 덤덤하면 아버지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올 거 같았다.


그렇게 난,

1년 하고도 1달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내 안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결정하지 않고 유보했다.



어젯밤, 내가 올린 글에 좋아요를 누른 이는

아버지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긴 세월 나의 아버지를 수식하던 이름이었다.

이름을 보고 잠시 철렁했다.

취기가 오른 여름밤이었고, 시답잖은 얘기의 도중이었기에,

반사적으로, 아빠가?,라고 생각했던 머리가 다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 봤자 1~2초의 시간이지만.


그리고는, 눈물은 나지 않았다.


대신, 상상을 했다.

얼굴이 편해진 아버지가 어딘가에서 초고속 인터넷으로 웹서핑을 하면서, 나의 글을 읽는 상상.

아버지는 턱을 괴고 세상 편한 자세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늘 입던 헐렁한 티셔츠와 파자마를 입고,

젊은 시절부터 좋아하던 송창식이나 조항조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내 글에 널려있는 과도한 표현을 보며 피식 비웃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댓글 달기가 귀찮아서 좋아요, 버튼을 툭 눌렀을 것이다.


그 상상 덕분에,  웃음이 났다.


앞에 앉아 술을 먹던 후배가 갑자기 왜 빙그레 웃냐길래

내 휴대폰에 뜬 아버지의 이름과 나의 상상에 대해 얘기했더니, 후배도 같이 웃었다.

장례식장을 꼬박 지키던 후배였다.

아마 아버지가 우리 둘이 아버지의 웹서핑을 상상하며 웃는 걸 봤다면 같이 즐거워했지 싶다.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하나의 상태로 규정해 버릴 필요가 있을까.

아버지가 불쑥불쑥 떠오를 때,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거나, 아니면 언제나 옆을 지키고 있다고 선명하게 확신하기보다는,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면 되지 않을.


시끄러운 어느 술집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보고 웃음 짓는 정도면 아버지도 꽤 만족할 것이다.


뭐, 술을 입에도 못 대던 분이었기에

지삼선에 참이슬을 먹는 모습을 좋아하실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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