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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Sep 24. 2019

낯익은 원경의 공식

#전라남도 고흥 남열해수욕장

"지금도 그때와 뜩같이, 열차가 지나가는 철로 양옆에는 아무것도 들이지 않고 무엇에도 영향 받지 않는 숲이 벽처럼 버티고 서 있었고, 그 사이로 열차는 옛 지형지물들과 동물들이 철길을 건너기 위해 오가는 통행로들을 지나며 허겁지겁 달려가고 있었다."


-소설 '곰', 윌리엄 포크너 (문학동네, 2013년)





몇 달간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무사히 끝을 봤다 

몇 달간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무사히 끝을 봤다. 세부적인 것들은 잊히고, 끝났다는 사실만 남았다. 단순해서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말하자면, 지친 기념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이른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고흥까지 5시간을 내처 가기로 한다. 휴게소에는 한 번 들른다. 뒷좌석 짐 사이에서 잠을 자다 깨다 내리니 그제야 하늘이 보인다. 무감각한 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일을 할 때도 하늘을 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눈으로 들어오던 그 풍경이 머릿속까지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다. 늘 보던 풍경처럼 카메라에 빠르게 담는다. 


다시, 차는 진동하며 달린다. 



로변의 풍경은 고속도로를 지나 국도로 들어서며 한 번 변한다. 직선으로 이루어진 명쾌한 풍경에서 작은 곡선들로 이어진 낮은 풍경으로. 왠지 모르게 구름마저 변한 기분이다. 창을 열고 하늘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도로는 정직하다. 새로 낸 도로건, 이미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넓힌 도로건 마찬가지다. 정직하게, 운송, 이라는 한 가지 목적만을 갖는다. 사람은 도로를 밟고 지나치면서, 어딘가로 가고 어딘가에서 온다. 그런 의미에서 도로는,   


시작을 모르고 끝을 담아두지 않기에, 미련해 보이지 않는다. 


가을, 해수욕장의 풍경은 선명하다. 

하늘과 구름의 색이 그렇고, 바다의 선이 그렇다.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풍경을 헤치며 도착한 고흥의 남열해수욕장의 모든 풍경은 원경으로 존재한다. 하늘, 바다 그리고 절벽의 전망대까지. 덕분에 눈이 시원하다. 별다른 부가설명이 필요 없는 낯익은 공식 같은 풍경이다. 이 명쾌함 속에 며칠 앉아있다 가면 될 일이다. 


10월이 거의 다 된 이 시기에 해수욕객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몇 안 되는 남해안의 서핑 포인트기에 서퍼들이 곧 나타날 것이다. 해변을 산책하던 몇 명은 금세 어디론가 사라진다. 서핑숍 겸 편의점에 들어가 어디서 캠핑을 할지 묻는다. 키가 큰 서퍼는 적은 단어로 선명하게 설명한다. 군더더기 없는 웃음도 잊지 않는다. 바다를 지키는 사람들은 대개 조용하다. 그들의 눈은 파도 쪽이다. 그런 이유겠다.


얼른 짐을 내리고, 얼른 텐트를 치고 나서, <얼른>을 집어넣었다. 



뭔가를 <완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한다.  

안온함을 느끼며 한참, 앉아 있는다. 이런 원경 속에선 과감해질 필요가 없다. 과도한 의욕도, 불필요한 가늠도, 의도된 나태도 필요하지 않다. 원경 속에선 그저 또 다른 원경으로 존재하면 된다. 바람이 단순한 선을 그리며 지나간다. 비수기의 해수욕장은 잘한 선택이다. (엄밀히는 그 제안을 믿고 졸졸 따라온 게 잘한 선택이다) 



채비를 하고 바다 쪽으로 간다. 서핑보드를 타는 일행들의 옆에서 고프로를 들이대면서 노닥거리다가 이내 혼자 바다를 즐긴다. 물속에서, 두 발로 모래를 딛고 일어서면 비로소 바다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든다. 해변에서 십여 미터 나왔을 뿐인데도. 


가슴께에 파도가 왔다 갔다 하는 걸 천천히 느낀다. 



물 밖과 안의 음(音) 사이에, 차이는 크지 않다. 

물에 몸을 담갔을 때 들리는 소리는, 차음(遮音)이라기보다 이음(異音)에 가깝다. 소리가 공기를 타고 오느냐 물을 타고 오느냐의 차이뿐이다. 스노클링 마스크를 빌려 물 안을 들여다본다. 시야는 짧은데 만족스럽다. 한참 모래바닥이나 구경하다가 우연히 물고기 3마리를 발견하고 잠시 쫓아가 본다. 내내 숨소리만 귀에 들린다. 



해변의 경계로 나온다. 파도가 마지막으로 포말을 일으키고 사라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고요에의 기대는 아예 불가능하다. 바다와 땅을 가르는 이 경계는 하루에 두 번씩 위치가 달라지지만 늘 파도를 맞는다. 긴 거리를 거쳐 당도한 파도의 마지막 모습은 시시하다. 낮게 솟았다가 형태가 없어진다. 하지만 소리는 시시하지 않다. 파도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소리는 먼바다에서 보다 마지막, 해변의 경계에서 난다. 해변은 파도를 맞이하는 데에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 그저 받고 그저 보낸다. 이 풍경은,


감내(堪耐)라는 행위라기보다는, 친화(親和)라는 현상으로 읽힌다.  



바다라는 단어는 무책임하다. 하나의 단어로 담을 수 없는 풍경을 억지로 우겨넣은 느낌이다. 어쩌면 단어 하나 만으로 이 풍경을 설명하려 한 누군가가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는 된다. 막상 이 풍경을 제대로 명명하라고 하면 두려웠을 것이다. 뭔가를 빠뜨릴까 봐, 그래서 풍경이 온전히 단어 안에 담기지 못할까 봐... <바다>라는 단어 대신에 <바다라는 풍경>을 앞에 두고 이런 상상을 한다. 


두려움을 모르는 어느 종족의 언어에는,
바다를 칭하는 수백 개의 단어가 존재할 것이다. 


과함과 불과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풍경엔 늘 구름이 있다. 우리가 머물던 3일간 구름은 낮지 않았다. 다음 날 태풍이 낮은 구름을 몰고 올 거란 걸 높은 구름은 알 턱이 없다. 구름 아래에선 모든 걸 흘려보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게으름을 허락받은 듯한 느낌이다. 평일 오후, 휴가로 떠나온 곳에선 더더욱 그렇다. 


구름이 걸린다, 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외려, 걸리는 건 땅 위의 것들이다. 구름에 나무가 걸리고 전망대가 걸린다. 넋 놓고 구름을, 쳐다본다. 바라본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본다. 바라보다가 쳐다보다가 별 짓을 다해도 구름이 있는 원경은 그대로다. 몸에서 물기가 마르는 동안 구름만 본다. 


이런 곳에선 막 봐도 된다. 오랜만이다. 


놀랍게도 세 사람 모두 토치 사용은 처음이다. 덕분에 호들갑을 떨고 즐거워한다. 역시나, 그래도 된다. 놀랍게도 세 사람 모두 미식가도 아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하고 더 만족스러운 밤을 맞는다. 오후와 저녁 사이, 저녁과 밤 사이가 유난히 구분되지 않는 곳이다. 시간을 분 단위로 기록하는 기계가 있다면, 꽤 많은 분을 듬성듬성 빼먹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덕분에 덜 단조로운 흐름으로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우리가 텐트를 친 곳에서 머지않은 곳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착해서 자리를 잡는다. 크게 요란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분리된 공간에서 나온 시선들은 굳이 교차하지 않는다. 


우리나 그 사람들이나 풍경 보기에 바쁘다. 



별은 어김없다. 어김없이 빛을 내고 어김없이 머리 위에 떠 있다. 정확히는, 별이 어김없다기보다는 그런 믿음이 어김없다. 하지만, 그런 믿음에도 불구하고 확인하고 싶어 진다.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별들이 사라진 건 아닌지, 여전히 먼 길 잘 날아와 빛나고 있는지. 그래서 인공의 빛이 거의 없는 곳에서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어두운 곳으로 간다.  


셔터 소리가 날 때마다, 차곡차곡 별이 담긴다.
별들이 이어진 선은 생경하고 낯이 익다. 


옆 텐트 사람들이 나와 해변에 불을 지핀다. 어둠이 가득한 풍경에 빛이 더해진다. 여전히 시끄럽진 않다. 저녁때부터 해송 근처를 어슬렁대던 반딧불이 몇 마리가 해안가로 내려간다. 한 마리가 잠시 내 옷에 붙었다 떨어진다. 그들이 내는 녹색 궤적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찍힌다. 반딧불이의 선이건, 사람들의 선이건, 


정형성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선이어서 만족스럽다. 



사람들이 잔불을 두고 텐트로 돌아간 뒤, 불을 다시 키워 주위에 앉는다. 농담과 노래와 숨소리가 번갈아 나오는 자리다. 길게 이어지진 않는다. 일행이 다시 텐트 쪽으로 들어간 뒤 맨발로 모래를 밟고 한참을 서 있는다. 혼자, 주위를 둘러본다. 낮게 뜬 달에서 나오는 빛으로 풍경은 풍성하다. 이 넓은 해변에 쏟아지는 별빛과 달빛을 나만 바라보고 있다. 


스스로 낯익은 공식이 돼버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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