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
12월 10일(토) 뉴델리 공항 환승
몰래 마음에 둔 이름을 적어보는 일.
은밀하지만 과감하게 드러내는 비밀
유치한데 지금만 할 수 있는.
넌 결국 그 이름을 여행 수첩에 적지 않았어.
대신 주머니에 있던 영수증 하나를 꺼내 적었지. 그리곤 그걸 구겨 비행기 좌석 앞 주머니에 넣었어. 그 이름은 아마 비행기 청소부가 챙겨갔을 거야. 그리곤 어느 쓰레기장에 있겠지. 아직 썩지 않았다면...
왜 수첩에 남기지 못했을까. 아니, 남기지 못한 걸까, 남기지 않은 걸까.
결론부터 말해줄게.
난 그 이름을 가진 여자에게 이제 별 감정이 없어. 어떤 형태로든 발전을 했었었냐고? 아니.
그녀와 나(그리고 너)의 관계는 공식적인 단어로 규정되는 한에서 변하지 않았어. 연정이 상호적이었다면, 그래서 둘의 관계를 규정하는 단어가 늘어났다면, 지레 생각해보면, 아마 안 좋게 끝났을 거야. 그녀와 나의 '닮은 구석' 때문에. 그녀의 이름을 적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는 너는 아직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그 공통점이 뭔지는 굳이 얘기하지 않을게. 니가 앞으로 두근거릴 상대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걸 아니까) 그 대신, 너의
초단기 짝사랑에 대해 생각해봤어.
정확히는 니가 짝사랑했던 상대들, 기억이 책임질 수 없는 과거에 놓고 온 너의 그녀들,에 대해서 말이야. 놀랍게도 그녀들에게 눈에 띄는 공통점은 없어. '매력적인' '여자'라는 사실 외에는. '매력적'이라는 말 자체가 가진 자기 확장성과 주관성 때문에 이건 일종의 기준으로서 작용할 수는 없는 단어지. 그러니 너의 짝사랑 상대들은 그저 여자라는 성별만 같을 뿐이야. 너는 취향 없이 상대를 받아들이고, 맥락 없이 사랑에 빠지는지도 몰라.
니가 사랑에 빠지고 난 후의 프로세스는 미니멀해.
혼자서 바라보고, 상상하고, 운이 좋으면 같이 술을 먹기도 하지. 넌 호감을 티 낼 수밖에 없을 거야. 눈빛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 하지만 적극적인 구애를 하지는 않아. 20대에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자책을 하기도 했어. 용기가 없다거나, 하면서 말이지. 30대로 넘어오면서 자책은 아쉬움으로 변했어. 니가 먼저 (거절이 예비된) 대시를 하지 않으면서도 넌 늘 상대방이 다가오길 원해. 조그만 트리거, 조금의 여지, 같은 걸 말이야. 그게 없으면 깔끔하게 '현상태'를 유지하지. 너에게 짝사랑이란, 미니멀한 체험의 과정, 같은 거야. 그래도,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이어지는 너의 짝사랑엔
분명 미덕이 있어.
짝사랑을 하는 동안 너는 많은 걸 확인할 수 있어.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니 안에 있는 '어떤 종류의 본능들'이 조로하지 않고 아직 신선한 상태로 남아있구나, 하는 안도를 할 수 있는 거지. 미지의 상대에게 느끼는, 미지의 호감이 그걸 깨우는 거야. 그 본능에는 이성에 대한 욕망,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느끼는 두근거림(가끔은 공포로 치환되는), 본인의 현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분석력 같은 게 포함돼 있어. 단기적으로 짝사랑에 빠진 동안, 넌 이런 감정들을 공중에 띄워 놓고 찬찬히 바라보는 거야. 그녀들을 통해 너를 보는 거지. 그렇지만 솔직히 짧은 짝사랑들을 경험할 때마다, 약간씩 자괴감에 빠지긴 해. 이러다가 영영 '진정한 사랑'을 못하는 건 아닐까. 피상적인 욕망만 드러내다가 끝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말이야. 초단기 짝사랑이란 건, 말하자면
보일러의 동파방지 기능 같은 게 아닐까
깜빡 잊고 보일러의 스위치를 on으로 하지 않아도, 콘센트에 전원코드만 꽂혀있으면 자동으로 동파를 막기 위해 보일러는 자동으로 돌아가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애정이라는 감정을 잃고 파열되기 전에, 스스로가 보호하기 위해 짝사랑을 하는 게 아닐까.
'애정하는 관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의 시작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귀찮아져. 새로운 관계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같이 시간을 눙칠 소소한 관계들은 쌓여왔으니까. 몇 번의 연애와 몇 번의 이별을 맺음 없이 겪으며, 새로운 시작을 노력하는 게 점점 귀찮아졌어. 그런 상황에서 초단기 짝사랑들은 너의 본능의 소멸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아닐까 싶어.
하지만 '최소한'이라는 게 '최소한에만 머물러야 하는' 건 아니야. 최소를 시작으로 최대로 갈 수도 있는 거니까. 연애로 발전되지 않고, 일방적이고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끝난 후에만, 초단기 짝사랑이라고 이름 지어지는 것일 뿐, 그게 진행 중일 때는 그냥 사랑이야. 짝사랑을 하는 중에는, 당연히 '초단기'도 생각하지 말고, '짝'도 생각하지 말아야지.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지고 두근대며 지켜보고 있는 건, 피상적인 게 아니야. 시작, 인 거지. 호감을 품은 너에게 필요한 건 이걸 거야,
감정의 깊이를 재고, 의지의 밀도를 가늠하는 일
매번 어려운 일이지만, 매번 필요한 일이지. 그 사람과 얼마만큼 가까워지고 싶은지, 그 사람에게 얼마만큼 인정을 받고 싶은지, 그 사람에게 얼마만큼 의지하고 싶은지,를 판단해야 해. 유예 없이 말이야. 넌 가끔 누군가에게 훅 빠지고 나면 의심부터 하는 버릇이 있어. 제대로 된 시작이었을까? 제대로 된 감정일까? 제대로 된 선택일까? 그러지 말아. 안 그래도 인생은 엉망진창인 것들로 가득 차 있어. 좀 더 살아본 내가 보증해. 객관적인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제대로 된 건 니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밖에 없어. 그러니,
찾아오는 두근거림을
좀 더 부지런하게 들여다보면 좋겠어
관계가 부족한 인생에 허무함은 숱하게 찾아오고, 우리는 늘 옆에 있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니까. 부지런하게 니가 좋아하게 된 사람의 눈을 쳐다보고, 말을 걸어 봐. 역시나 제대로 된 답은 없겠지만, 엉망진창의 근거들은 쌓일 거야. 몇 개 안 되는 근거들 가지고 머리 싸매 봐야 골치만 아파. 어릴 때 레고 블록처럼 확 쏟아놓고 생각하는 거지. 그 근거들을 하나하나 조립하면서 두근거림의 정체와 미래에 대해 고민해 봐. 다 떠나서... 재미도 있을 거야.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