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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r 25. 2020

걱정의 총량

누군가의 고민에 말려드는 밤

내게 고막이 있다는 것은 이 '속귀'를 내 식대로 가꾸고 살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인데, 시에 대해 내가 가지고 싶은 꾸준한 은밀함이 하나 있다면 시로서 내 안의 저 깊은 속귀에 가루처럼 따뜻한 소란巢卵들을 흘려주고 달래주는 몸의 기관을 하나 갖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타인의 귀에도 있는 공간, 고막이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좋지 아니한가.


-김경주 산문집 '밀어'의 '고막' 편 中 (문학동네, 2012년)





양꼬치가 익어간다.
기름이 떨어진 숯이 하얀 연기를 뿜는다.


숯에 불이 붙는다. 안내문에 쓰인 대로, '당황하지 않고 벨을 누른다'. 긴 주둥이를 가진 물통을 가져온 점원이 숯의 아래쪽에 물을 몇 번 짜준다. 신기하게 불만 사그라들고 숯은 그대로다. 유달리 기름이 많은 양고기를 쓰는 건지, 유달리 건조한 숯을 쓰는 건지 알 턱은 없다. 다시 고기가 익어간다. 알아서 돌아가는 양꼬치에 시선을 둔 채, 얘기가 이어진다.



후배는 이번에도 거짓말을 하고 동네로 찾아왔다. 


맥주 한 잔 마셨다는 그에게선 술 냄새가 심했다. 솔직히 말하라고 하자, 횟집에서 회식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내가 봐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양꼬치 집으로 향했다.


한 달 동안 집에서 잔 게 10일밖에 안 돼요.

천천히 마셔라.

프로젝트가 여러 개 겹쳤는데 제대로 끝낼 수 있을지......

천천히 마셔라.

형은 집에서 온 거죠? 왜 오늘은 술 안 먹었어요?

천천히 마셔라.


네,라고 대답한 후배는 역시나 말을 듣지 않는다. 내가 잔을 들 때마다, 그리고 내가 잔을 들기 전에 미리 잔을 들어 건배를 한다. 취기가 오른 사람을 앞에 두고 술을 마시는 심경은, 걱정 반 귀여움 반이다. 맥줏잔이 빼갈 잔으로 바뀔 즈음에 대충의 근황이 파악된다. 자주 카톡을 하는 사이임에도 굳이 묻지 않았던 소식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기름에 닿은 숯에서 연기가 나오듯이.



얼마 전, 긴 시간 고생한 논문이 통과되고 학위를 받게 된 후배는 편안하다고 했다. 몇 달 전 시작한 연애도 순항 중이라고 했다. 논문 쓰는 동안 술을 자주 못 마셔서 건강해졌다고도 했다. 강의도 시작한다고 했다. 이 정도라면, 걱정이 줄어들 만하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쳐 보였다. 며칠 집에 못 들어간 피곤함이 전해져서겠지만, 왠지 모르게 물리적인 문제만은 아닌 듯했다.


그의 진짜 근황을 꼬치꼬치 물어본다.

후배는 자신의 걱정을 하나씩, 소란처럼, 얘기한다. 들어올 때 있던 한 테이블의 손님마저 빠져나간 양꼬치 집엔 우리밖에 없다. 점원들도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낮게, 양꼬치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더 낮게, 고기의 표면이 지글대는 소리가 흐른다. 양념을 잔뜩 묻힌 고기를 둘이 마주 보고 씹고는, 잔을 들이켠다. 술을 먹기 위해 안주를 먹는 건지, 그 반대인지, 는 늘 헷갈린다.



후배의 고민을 굳이 말리지 않는다. 대신 말려든다.

그의 고민을 말리면서 조언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안다. 나도 그도 정답을 원하지 않고, 애초에 정답도 없으니까. 누군가의 고민을 들으며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는, 그 고민에 말려드는 것이다. 난 1인칭을 잠시 버린다. 엄밀히 말하면 , 1인칭과 3인칭을 번갈아 가며 대화에 참여한다. 우리는 같이 심각해지고 같이 곱씹어본다.


예전의 후배는 미래가 불확실했기에 지쳐있었는데, 지금은 확실함에 대해서 지쳐있는 듯하다. (정확한 판단은 아닐 것이다. 난 그의 영역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심경은 잘 파악한다.) 몇 가지의 걱정거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끄덕끄덕. 괜찮다는 말이 이어서 나온다. 끄덕끄덕. 술이나 마시죠. 끄덕끄덕. 형 졸아요? 끄덕끄덕...... 응?



걱정의 총량, 은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그건 성향의 문제다. 우리의 마음속에 '걱정의 영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늘 비슷하다.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 (심지어 자면서 꿈꾸는 동안에도) 걱정을 하는 시간의 비율도 늘 비슷하다. 그건 걱정의 대상이나, 우리의 나이나, 취기의 정도 등과는 무관하다. 하여, 걱정이 잦은 나 같은 타입은 좀 억울하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 일어났어도 별문제 없이 넘어갈 일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어차피  '캐파'를 넘어서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않으니까. '최저'걱정 이외의 시간은 늘 보장돼 있으니까. 오랜 기간 봐온 후배의 성향은 나와 비슷하다. 일정 비율을 넘어선 적은 거의 없다. 그러니, 이렇게 꼬치꼬치 고민을 들어도 걱정은 되지 않는다. 조만간 혹은 언젠간 나도 비슷한 고민을 그한테 죽 늘어놓을 것이다.   



음주의 총량도 정해져 있기에, 술자리는 끝이 난다.


우리가 나오자 양꼬치 집 간판의 불이 꺼졌다. 거리엔 차가 듬성듬성이다.

다행히 택시는 금방 잡힌다.

밤이 비정상적으로 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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