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무 다른 역할 Mar 26. 2020

몇 장의 연작 사진

#세운상가 공중 보행교 위


#1 화살표


화살표와 나란히 위치한 라이더는, 스스로 화살표가 된다.

 

그는 명확하게 하나의 방향으로서 앞으로 나간다.

꼭짓점의 방향에 있는 무언가가 화살표에게 중요하듯이,

바이크의 라이트가 향하는 어딘가가 그에겐 중요할 것이다.


방향만 생각할 수 있는 자유로움 속에서,

무리 지을 필요가 없는 입장의 가벼움이 경쾌하다.



#2 간격 (間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된 것들은, 그 동일한 거리감 덕분에 안정적이다.


보도블록이 그렇고, 차량 진입방지용 기둥이 그렇고, 사람들이 그렇다.

안정감이 있는 곳에서는 속도에 욕심부리지 않는다.

차들도, 자전거도, 수레를 끄는 사람도 적당한 속도로 지나간다.

위험요소 따위는 느끼지 못한다는 투다.

덩달아, 조망하는 나조차 편해진다.



#3 이동 (移動)


무심한 표정의 지게차가 움직이다.

수십 개의 소유권이 넘어가는 중이다.

꼼꼼히 포장된 박스들은 곧 기항지를 거쳐, 박스의 형태를 벗고 변태할 것이다.

청계천의 양 옆 조명 혹은 공구 가게에서 나온 물건들은,

어딘가에서 빛을 내고, 어딘가에서 마모될 것이다.


모든 것이, 이동(移動)으로부터 시작된다.



#4 동류 (同類)


같이 걷는 둘 사이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꼭 잡은 손이 있고, 섞고 싶은 말이 있다.

마스크로는 감추지 못하는 올라간 입꼬리나 눈썹의 방향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기분도 있다.

몇 번의 다툼과 몇 번의 화해의 기억이 보도의 타이어 자국처럼 남아있을 것이다.

부스스한 머리나 망친 화장 따위는 서로 지적하지 않는 무던함,

혹은 어제 접한 연예인 찌라시를 둘러싼 치열함이 있을 수도 있다.

둘 사이에는 짜장면과 꿔바로우가 있고, 파스타와 피자가 있고, 진로와 오돌뼈의 기억이 있을지도 모른다.

같이 먹고 같이 소화한 시간은, 둘을 같은 류(類)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둘의 그림자는 사진에 동일하게 담긴다.



#5 포즈 (pose)


교과서에 나올 법한 포즈로 광장을 가로지르는 하얀 머리의 남자는 방금 전,

올리브 색 비니를 쓰고 담배를 문 남자와 함께 천천히 왼쪽으로 건너갔었다.

잠시 뒤 그가 혼자 오른쪽으로 뛰어가는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놓고 온 무언가가 있거나, 급하게 찾는 누군가가 있거나.


과거에 두고 온 무언가나 다시 마주치고 싶은 누군가를 생각하게 될 때면,

우리는 남자처럼, 다급해지곤 한다.

그 찰나의 계기를 놓치면 과거가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면서.


하지만 늘 과거는 견고하고, 과거 속의 나는 선명하다.

우리는 그렇게 과거를 디디며 걸어 다닐 수 있다.



#6 광원 (光源)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넘어가는 야간열차에서 잠이 깼을 때, 아침 태양이 계속 따라다녔다.

마치 기차가 직선을 버리고, 광원의 주위를 에둘러 가는 듯이.

동행하던 친구의 잠든 얼굴에, 간이 테이블 위의 커피잔에, 직선의 빛이 가득했다.


정작 빛이 시작된 곳에서는 어떠한 선(線)도 없을 텐데,

석양의 빛이 닿는 곳마다 선이 도드라진다.

 

그로 인해,

도시는 선명해지고 사람의 움직임은 땅으로 스며들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여행적 순간 in 치앙마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