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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r 27. 2020

기억의 화소

#희미해지는 것들에 대하여

방금 전만 해도 알았던 것

말이 되는 도중에 너를 떠나버린다

무대는 이제 네가 설 곳이 아니다

말을 잃고 출구에 서 있다, 상실들


-詩  '불가역적' , 라이너 쿤체 (시집 [나와 마주하는 시간], 봄날의책 2019년)





15년 전의 오늘,
난 새벽 5시 40분에 주저우(株洲) 역에 내렸다. 

친구와 나는 '새벽어둠과 같이 도시에서 벗어났고', 밖에는 '척척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매표구에서 창사(长沙 )까지 가는 표를 사서 다시 열차에 올랐다. 40분 정도의 거리여서 저렴한 좌석표를 샀는데 '처음 타는 칸'이었다. 이후에 우리는, 의자 세 개짜리 좌석을 차지하고 '늘어져 있는 아저씨'를 깨웠고 좌석의 끝에 앉았다. 


여행수첩에 있는 글씨가 엉망이지 않을 걸로 보아, 목적지인 장가계에 도착해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이나, 자기 전 어두컴컴했던 숙소의 침대에서 썼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 기억에서는 이미 수많은 프레임이 증발됐다. 아껴 찍었던 사진들이 담지 못했던 과거는, 그렇게 몇 개의 장면들로 남아있다. 별다른 마감이 없던 시멘트 벽의 대합실이나,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꼬깃꼬깃한 쓰레기, 숙소에서 뜨거운 물을 담아주던 촌스런 꽃무늬의 보온병 같은, 그런 이미지. 



그런 장면도 서서히 희미해진다. 있던 기억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식이 아니라, 기억의 화소가 천천히 증발하는 방식으로. 공터에서 우연히 발견한 수십 년 전의 포장지 비닐의 색이 반투명이나 회색에 수렴하듯이, 오래된 장면들은 촘촘했던 처음의 질감을 잃고 희뿌얘진다. 


1년 뒤 혹은 5년 뒤만 해도 '알았다'라고 믿었고, '잊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시간의 힘 앞에 겸손해지고, 우리는 끝없이 과거의 무대를 상실해간다. 물론 다가오는 새 무대에 설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무대는 익숙하고 단조롭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과거가 적은 화소였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것들이 밀려들었기에, 정신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이기에도 시간은 촉박했기에, 과거를 꺼내 보는 시간이 적었다. 하지만 점점, 지나온 시간이 소중해진다. 내가 기억해내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나의 과거들을 떠올리게 된다. 색이 바래고 온전치 못한 화질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종종 확대하고 싶어 진다. 저 장면 속의 난 어떤 표정이었을지 복원해가면서. 



다행히, 꼬질꼬질한 여행수첩은 온전하다. 


수첩에서 단어를 조심스럽게 들추면 몇 개의 화면이 쏟아진다. 선명한 사진과는 또 다른 느낌의 기억. 산길을 걷다 널찍한 바위에 아무렇게나 않아서 다리 쉼을 하듯, 현재를 차음(遮音)하고 잠시 머리 쉼을 하는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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