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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pr 03. 2020

봄날의 연애 고민

"한밤에는 그 나름대로의 규칙과 시간의 흐름이 있는 거야" 하고 바텐더는 말한다. 지익 하고 종이 성냥을 그어,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런 흐름을 역류하려고 해봤자 별도리가 있겠나."


-소설 '어둠의 저편' 中, 무라카미 하루끼




어젯밤 술자리, 연애를 주제로 대화가 오갔다.


주인공인 누군가와 관찰자인 누군가.

누군가의 고민과 누군가의 해결책.


굳이 봄날이어서 터져 나온 연애 얘기는 아니었지만,

또 굳이 봄날이어서 쉽게 꺼낼 수 있는 얘기였다.



말을 듣는 도중,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4층에 위치한 바. 창 밖 나무에 까치가 한 마리도 없었다.

어제 같은 자리에서 술을 먹을 때, 수십 마리의 까치가 잠을 자던 걸 봤었는데...

밤 10시 6분은 까치가 잘 시간이 아니었다.


연애라는 말을, 오랜만에 듣는 기분이었다.

 

그 단어에 얹힌 몇 명의 인연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이제, 단단하거나 심각하지 않은 기억들이다.



테이블 위에서 연애 얘기가 공전했다.

고민을 내어놓는 사람은 고민을 복잡하게 말하려 했고

그걸 듣는 사람은 고민을 단순화하려 했다.

연애는 늘 답이 없는 문제이기에, 공전은 당연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연애는 연을 애하는 것일까, 애를 연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인연을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을 인연으로 하는 것일까



아침에 일어나서도, 연애, 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아 뜻을 찾아봤다.

'사랑하는 인연'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연애戀愛라는 단어에 인연因緣이 포함돼 있지 않음을, 처음 알았다.

인연 연緣, 이 아니라, 그리워할 연戀,이었다. 그리워하고 사모한다는 뜻이다.


연애戀愛의 풀이를,

<애愛를 연戀한다>고 하면,

좋아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있음에도 사랑을 그리워하다, 는 뜻이 된다.


<연戀을 애愛한다>고 보면,

그리움을 사랑한다, 는 뜻이다.

그건,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사랑한다, 고 할 수 있다.


결국 연애는,

<옆에 둔 사람을 사랑>하는 행위인 동시에,

<사랑에 빠진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이기도 한 셈이다.



우리가 연애를 하면서 끊임없이 고민을 하는 건, 그래서일지 모른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해야 하니까.

자기 자신만 신경 쓰면 됐었는데, 이제 한 사람 더 마음 써야 하니까.

한정된 우리의 마음을 양쪽으로 쪼개야 하니까.

정확한 이등분은 언제나 불가능해서 덜 받은 쪽이 속상해할 수밖에 없으니까.


어제, 봄날의 연애 고민은 명쾌함 없이 사라졌다.

말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떨어진 벚꽃잎이 슬그머니 사라진 어디쯤이겠지.


그래도 괜찮다. 

봄날이 바람처럼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동안,

그 친구의 연애는 건재할 것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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