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리
4월 12일 따리(大理)
따리는 선명함의 도시. 하늘, 구름, 풀색. 뜨거운 햇살. 강렬한.
(...)
마차. 덜컹거림. 지친 듯한 늙은 속도.
삼탑. 밖에서만 구경. 그 하늘-
호수까지 또 마차로 이동.
쉴 때 마부에게 말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없다, 는 대답이 돌아왔다.
호수 맞은편 구름 그림자가 산에 얼룩을 만든다.
긴 거리 마차. 늙은 마부는 오지랖도 넓어라. 들판에서 일하는 아낙들과 인사.
들 풍경. 시골 풍경. 시골 냄새. 더러운 냇물. 돌길을 달려 북문.
말은 입을 다시고 있었던가.
마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어. 당연히 목소리도.
"얘는 이름이 없어요."
늙은 마부와 늙어 보이는 말, 둘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였어. 니가 괜히 말의 이름을 물어본 건. 마부는 말을 '다룬다'기보다 '같이 지낸다'는 느낌으로 대하고 있었지. 달릴 때는 때리지 않았고 멈춰 있을 때는 적당량의 건초를 챙겨줬어. 말 역시 움직여야 할 때와 멈춰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둘 사이에 긴장이 오갈 일을 없어 보였지. 하지만, 말에게 이름이 없다는 대답을 들은 넌 조금 실망했어. 그리곤 무감한 듯 다정한 마부의 모습과 그가 한 말 사이의 간극에 대해 생각했지. 그런데, 처음에는 간극이 커 보이다가 생각할수록 이격은 줄어들었을 거야.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강해졌지. (오래전인데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곰곰이 생각하던 너의 모습이 하나의 씬으로 남아 있군) 넌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있어야 할 곳에 있다면,
이름은 없어도 무방한 게 아닐까?
있어야 할 곳에, 같이 할 사람들과 있다는 건 이상적인 상황이겠지. 그럴 때는 이름만이 아니라, 말 자체가 필요 없을 거야. 미리미리 통하는 상태랄까. 실제로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종종 있어. 연인 관계건, 친구 관계건, 업무 관계건.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거지. 그건 '단순한 익숙함'과는 다른 상황이야. 시간이 쌓이면 불필요한 절차는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그 안에서 고민 없이 살게 되지. 하지만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상황'은 서로를 순수하게 배려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해. 그게 늘 어렵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위계에 익숙해지고, 권위를 이용하려는 게 인간이거든. 이건 기질의 문제가 아닌 DNA의 문제인 것 같아. 사회생활에서는 이게 더 두드려져. 비용을 줄이고 아웃풋을 극대화하려는 회사의 생리에서 배려는 불필요한 개념이야. 말없이 순응하고 있으면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아. 해안가의 모래성이 밑에서부터 서서히 쓸려가듯이, 우리에게 주어졌던 것들이 하나하나 없어지지. 우리는 늘 관리대상으로 존재해. 이름은 없어지고 호칭만 남은...
더 시끄럽게 살아야 했을까?
타고난 성격 상, 나서서 뭘 요구하거나, 내가 한 걸 티 내기 위해 노력하지 못해. 내가 니 나이로 돌아가서 다시 삶을 살아도 마찬가지일 거야. 하지만 가끔 후회가 돼. 조금 더 시끄럽게 사는 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고. 눈살 찌푸릴 정도로 재수 없는 방법을 쓰거나 오만한 태도가 아니라면 그래야 했던 게 아닐까? 며칠 전 술자리에서 이런 메모를 했어.
'난 늘 왜 이렇게 임시적이었을까'
생각해보니, 대학교 졸업 이후부터 지금까지 늘 움직이는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이었어. 불어난 흙탕물에 플라스틱 하나 부여잡고 이리저리 흘러가는 느낌. 어떤 걸 평생 믿고 살아야 할지, 누구와 평생 같이 지낼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어 죽. 시절이 바뀌면 주위가 바뀌었고, 주위가 바뀌면 사람들도 바뀌었지. 매일 보다시피 하는 사람들도 머지않아 뿔뿔이 흩어져있기 일쑤고, 책상을 옮기는 일이 점점 익숙해졌어.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부유하는 일상을 살면서 난 늘 영원한 정박을 정상적인 상태로 상정하고 있었어. 어느 곳에 정박해서 닻을 내리고 나무 푯말을 세워 내 이름을 새기는 일을 말이야. 그래서 임시적인 '지금'은 늘 조용하게 살았던 거 같아. 어차피 금방 지나갈 일, 조금 지나면 바뀔 상황, 이라고 자조하면서... 하지만 그건 아닌 거 같아.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넌,
니 이름이 계속해서 불리기를 원해야 해.
어색할 거야. 뒷자리에서 조용히 웃으면서, 최대한 평화롭게 일들이 흘러가길 원했던 너로서는. 하지만, 세상은 늘 임시적이고, 그걸 인정해야 세상이 무섭지 않아. 있어야 할 곳, 이라는 따윈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이름 부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연한 나의 자리'는 없다고 말이야.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도 있을 수 있고, 무엇으로도 있을 수 있어. 그 과정에서 넌 너로 존재해야 해. 가만히 있기보다는 조금 시끄럽게. 사람들이 너의 이름을 부를 필요가 없기보다는, 계속 부르게 하는 방식을 찾아내. 착한 사람, 편한 사람이라는 칭찬은 듣기 좋지만, 존재감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어. 이기적, 이라는 말은 너무 선명하지만 쓸 수밖에 없네. 이기적으로 살아 줘. 적어도 니 이름 앞에선.
그럼.
P.S.
과연, 따리의 그 말이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마부와 말은 친구 사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