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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pr 18. 2020

쉬는 동안의 쉼

내가 지금 원하듯이 그때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했다면 모자를 들고 있던 소년은 나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어야 했다. (중략) 나는 여전히 학교로 다시 가고,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향한 그리움을 채우려는 갈망으로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이것보다 더 정신 나간 일이 또 있을까.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갈망에 따라 움직이는 것......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중, 파스칼 메르시어





아침 출근길, 에어컨 실외기 위 빈 커피잔이 눈에 들어온다.

인쇄공장의 누군가가 일시정지 했던 흔적이다.

골목의 낮은 소음 속에서, 그는 커피를 천천히 비우고 들어갔을 것이다.


커피잔이 비어있다는 이유만으로,

잠시였을 휴식이, 선명해진다.



스스로에게 불친절한 사람이 있다. 내가 그렇다.


채근하고, 불만족스러워하고, 안달한다.

좋아하는 것보다, 좋아해야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내 마음 편한 것보다, 남의 마음 편한 걸 신경 쓴다.

과거에 이랬으면 이뤘을 것들, 과거에 이랬으면 더 나아졌을 것들을 떠올리며 후회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 그런 자기혐오


이런 혐오는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내 모습을 방어하기 위한 핑곗거리이다.

눈 앞의 초조함을 뭉갤 수 있는 모르핀 같은 일시적인 유혹.



그리고 그걸 반복한다. 강박이다.

 

성실에 대한 강박,

자기 발전에 대한 강박,

존재하지 않는 정답에 대한 강박.

이런 강박은, 실체가 없는 신화에 불과하지만,

일상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우리는 그 강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쉬는 동안 쉬지 못한다.


쉬는 동안, 일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떠올린다.  

쉬는 건 시간을 버리는 행위라고 치부하고,

쉼을 줄이면, 나라는 인간과 나를 둘러싼 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 초조해하며,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나'를 만든다.

그리고는 그걸 내 삶의 기준으로 삼는 아둔을 반복한다.


하지만, 과거라는 이름의 가상세계와

미래라는 이름의 왜곡된 증강현실 때문에,

지금의 쉼을 즐기지 못한다면, 그건 '정신 나간 일'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잠시를 생각해내야' 하지 않을까.

잠시 스스로를 잠그고, 안달하는 자신을 나 몰라라 는 것.

쉬는 동안에는 투박하게 쉬어버리는 것.


자물쇠의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잊지만 않으면 될 일이니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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