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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y 01. 2020

그러니까 열렬히 환영해


종로 4가. 칼국수를 먹고 나오는 길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다. 


-어디?

-왜, 그 스쿨피자 있잖아.

-아, 거기


굳이 엿들으려던 게 아니어서 뒷말을 이어 듣지 못하고 지나친다. 뒤돌아 보니 백발을 굳이 감추지 않은 커플이다. 단정하게 중절모를 쓴 남자와 튀지 않는 흰색 꽃무늬 치마를 입은 여자가 다정하게 말을 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두 사람의 열렬함이 전해진다. 둘은 손을 잡지 않았지만 봄의 거리에선 왠지 잡은 듯한 착시가 일어난다. 두 사람은 봄 햇살을 피해 피자집에 가서 정분을 이어갈 것이다. 아니면 다른 친구를 불러, 자신들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할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도시는 둘의 것이 되고, 주인공 외의 모든 것들이 그들을 쳐다본다.



봄이 온 꽃잎을 열고 두 사람을 환영하듯이,  

온 거리가 모든 전등을 켜고 열렬히 나를 반겨주면 좋을 텐데, 

모든 색을 내보이며 나를 좋아해 주면 좋을 텐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웃다가, 나와 만날 때마다 환하게 발색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얼마 전 친한 후배와 삼겹살을 먹다가, 앞으로 우리가 몇 번이나 술자리를 할 수 있을지 셈해본 적이 있다. 대충 일 년에 15번이라고 하고, 80세까지 음주를 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한다면, 600번 정도다. 거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못 만날 일도 많을 테니, 500번으로 결론을 내렸다. 죽을 때까지 겨우 500번이라니! 산술적으로 서로를 환영해줄 일이 겨우 500번이라니! 우리는 놀라고 괜히 서운했다. (뭐 그것도 잠깐이고 다시 맛있게 삼겹살을 먹고 소맥을 마셨다. 코로나 때문에 노래방은 못 갔지만.)



그러니까 우리는 더 '센티해진' 상태로, 더 '환하게' 누군가를 반겨도 좋지 않을까.

 

급작스럽게 그러는 게 민망하다면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면 된다. 봄이니까, 퇴근했으니까, 오늘 일은 대충 수습했으니까, 날이 흐리니까, 건강검진 결과 몸은 잘 돌아가니까, 잊고 있던 로또가 5천 원에 당첨됐으니까, 뱃살을 감춰주는 티셔츠를 찾았으니까, 여기 안주가 죽이니까......


왜 그렇게 환하게 웃냐고 물으면 이런 이유를 몇 개 집어던지고 이렇게 한 마디 하면 된다. 

그러니까 널 열렬히 환영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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