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무 다른 역할 Jun 12. 2018

터키 카펫을 위한 쉴드

배낭여행 이틀째 덜컥 사버린 카펫

주민들에게 루빈콘도 의사의 회전의자는

하나의 제도(制度)나 마찬가지였다.


-소설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터키산(産) 카펫


-재질 및 제작시기 :  미상

-구입처 : 터키 카파도키아 데린쿠유 (Cappadocia Derinkuyu) 인근 상점

-제원 : 가로 130cm X 세로 75cm X 두께 0.3cm





모로코 사하라 사막 투어를 할 때였다. 이틀째 오전에 들른 민속마을에서 한 카펫 전문점에 '려' 들어갔다.


어느 나라건 투어엔 이런 류의 반강제 쇼핑코스가 있기에, 영국, 아르헨티나, 핀란드 등지에서 온 우리 팀 모두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여겼다. 대놓고 우리끼리, '누군가 한 명만 지갑을 열면 여기서 빨리 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민트 티를 한잔씩 돌린 후 이어진 50대 주인의 카펫 소개는 알아듣기 쉽고 설득력이 강했다. 그는 무늬의 정교함과 카펫을 짜는 미혼모들의 성실성을 연결시켜 설명을 했고, 양털과 낙타털의 차이에 대해 말하며 각각의 장점만을 나열하는 기술적인 스피치를 선보였다. 마라케시나 페스 같은 대도 카펫 가게의 폭리를 슬쩍 언급했고, 카펫 선물을 받고 좋아할 가족들의 얼굴까지 모두에게 상기시키려 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타로, 모로코의 시골까지 들어오는 페덱스 서비스와 비자와 마스터가 가능한 카드결제 시스템을 언급했다. 가격은 맨 마지막에 살짝 말했다.


난 가게에 들어올 때부터 절대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설명을 듣다 보니 쇼핑 욕구가 스리슬쩍 올라왔다. "한국에서 친구들끼리 거하게 술 한 잔 할 가격 정도라면"이란 생각이 첫 번째 빗장을 풀었고, "저 귀한 낙타털 카펫을 도대체 평생 내가 어디서 살 수 있겠어?"란 논리가 두 번째 빗장을 풀 참이었다. 그때였다. 같이 여행 갔던 친구가 한 마디를 던진 건.


야, 너 사지 마라. 터키 때처럼


11월, 구름 없는 날이었다. 얇은 청색 체크무늬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나는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지하도시의 출구로 나오는 친구 앞에 서 있었다. 왼쪽 봉지에는 조잡한 골동품들과 전통 인형들이 담겨있었고, 오른손에 든 봉지에는 둘둘 만 카펫이 있었다. 친구가 물었다. "도대체 그게 다 뭐냐...."



나는 그냥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니,
"어쩌다 보니"라는 말로 얼버무렸던 듯도 하다.

어쨌든 진짜로 '어쩌다 보니' 100리라어치 (지금 계산해보니 24,000원 정도)의 페이크 골동품을 샀고, 120리라짜리(2만 9천 원 정도) 카펫을 산 터였다. 터키 배낭여행 겨우 이틀째였다.



이유는 아직도 생생하다.

현지에서 신청한 일일투어의 두 번째 일정으로 간 지하도시. 다른 관광객도 많았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서 지하에 숨어 살기 시작했다는 설명이 시작됐다. 넓은 입구를 내려가 들어선 첫 번째 방을 지나 허리를 숙여 두 번째 방에 갔을 때 조금 낮아진 천장 덕에 방 전체의 공간이 작아졌다. 이때였다. 숨이 좀 빨라지기 시작한 건.

허리를 좀 더 숙여, 더 좁아진 세 번째 방에 들어갔을 때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같이 간 친구에게 "나, 이상해. 숨이 잘 안 쉬어져"라고 말하니, 친구는 잠시 내 얼굴을 보더니 얼른 돌아나가라고 했다. 밀려드는 관광객들 사이를 비집고 뛰다시피 다시 입구로 나오자,


그제야 숨이 크게 내쉬어졌다.
나한테 폐소 공포증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계속한 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일행이 다 구경하고 나올 때까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렇게 처음 간 기념품 숍에서 한 보따리 골동품을 사고, 좌판에 있던 아주머니한테서 인형 두 개를 샀다. 그리고 광장의 중앙에서 햇볕에 말리고 있는 카펫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봤다. 카펫을 정리하던 점원이 관광객의 한가로운 눈빛을 놓칠 리 없었다. 나는 차 한잔 하고 가라는 그의 손에 이끌려 숍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십여 분, 수십 개의 카펫을 본 후에 '어쩌다 보니' 내 손에 카펫이 들려있었다. 

지하도시 구경을 마치고 온 친구와 현지인 일행들이 비닐봉지를 든 나를 보고 다 웃었지만,  


난 그때 알았다.
쇼핑이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생전 처음 겪는 공포를 느끼고 후닥닥 뛰쳐나온 후, 진이 조금 빠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키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이니 시차 탓 등등으로 몸 상태가 안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의자라도 있었으면 앉아서 일행을 기다렸겠지만, 무리에서 떨어진 관광객을 위한 숍들만 주변에 있었다. 편안함을 장착한 가게 안에서 물건들을 살펴보고 주인과 농담을 하고,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을 위해 흥정하면, 흩어진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떻게 보면,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사지 않았어도 될 물건을 샀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물건들 위에 그때 내가 얻었던 위안을 얹는다면, 꽤 합리적인 소비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처음 알아버린 내 안의 폐소 공포증만 노려본 채 며칠을 보냈었을 수도 있었으니까.



이후 십여 일이 넘는 여행 내내, 카펫은 돌돌 말아 내 배낭의 오른쪽에 끼워져 있었다. 제일 작은 사이즈라고는 하지만, 카펫은 카펫이어서 힘주어 말아도 부피가 꽤 컸고, 배낭보다 길었기에 윗부분은 배낭 위쪽으로 접어서 끈 안 쪽으로 넣어야 했다. 친구는 짐을 쌀 때마다 낑낑 대는 날 놀렸지만, 난 꿋꿋하게 그 카펫을 사수했고, 서울 집까지 가져와 현관 앞에 깔았다. 

가만히 보면, 무늬정교하지도 않고 색이 화려하지도 않다. 숍에서 설명하기로는 기도할 때 쓴다고 했던 것 같기는 한데, 기도용이라기엔 좀 큰 듯도 해서 용도 역시 불분명하다. 어쩌면, 실 사용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지갑은 얇지만 소유욕이 있는 여행객들을 위한 적당한 가격대의 기념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하튼,



이후로 8년 동안, 카펫은 내 자취집에서
무사하다.

며칠 밤을 새우고 지쳐 들어올 때도, 술에 만취해 들어올 때도 카펫을 제일 먼저 밟는다. 즐거운 일이 있거나, 고약한 일이 있거나 심드렁한 날이거나 변함없다. 집의 한 구석에 있지만, 집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분의 역할을 한다. 마치 이 집이 지어지고나서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 같은 안정감이 골고루 묻어있다. 하여, 매일매일 현관을 오갈 때 그 까슬까슬함을 느끼며, 나는 양발바닥을 댄 채 살짝씩 비튼다. 그러면 몸 전체가 미세하게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집 밖과 집 안의 경계를 경쾌하게 넘을 수 있다.



언제 한 번 빤다 빤다 하면서도 아직 한 번도 세탁을 시도하진 못했다.


뭔가 전문적인 스킬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카펫이 가진 온전함이 탈색될 것 같은 두려움 같은 게 있어서다. 종종 볕이 좋을 때 말리면 좋을 텐데, 그조차 잘 하지 않는다. 이건 순전히 게을러서.

지금껏 다녔던 여행지에서 산 것 중 가장 묵직한 기념품이자 우연한 위안을 줬던 이 카펫은 향후 꽤 오래, 어쩌면 내가 늙어죽을 때까지 집의 어느 구석에 깔려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늘, 오버사이즈 북 쇼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