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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y 06. 2020

오기(誤記)가 없는 풍경

#출근길 : 종로, 을지로, 충무로

온통 평상인 섬에서

마음을 들키며 살고 있었다


-詩 '누워서 등으로 섬을 만지는 시간' 중,

이원하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 2020년)





사람은 기록돼 있다.

걸음으로 닿을 수 있는 도시의 모든 곳에.


사람으로 인해

어느 곳이든 정확한 곳이 되고 어느 때이든 정확한 시간이 된다.

사람은 단순히 풍경에 중첩되지 않는다.

그 안으로 들어와 한 단씩 공간과 시간을 쌓는다.

변형된 것들 위에 변형이 덧대어지며 하나의 풍경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그런 풍경에 오기(誤記)가 있을 수 없다.


풍경은 늘 사람을 수긍한다.

납득을 요구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수용한다.

우리는 시간을 빌어 공간을 채우고, 공간의 위에 시간을 얹는다.

그런 이유로 사람이 새기는 모든 것은

정(正)을 의도하지 않아도 오(誤)의 반대에 설 있다.


정자(正字) 하나 없어도 바른 풍경이 이어진다.



잠시 비운 사람을 담는다.

없는 그가 풍경을 대변한다.



마음을 놓는다. 골목에 잠시.


아무렇게나 던져놔도 부서지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정답을 원하지 않았기에, 마음을 덜어낸 곳에 정답은 쌓이지 않는다.

대신, 모 나지 않은 도시의 마찰음이 들어찬다.

이 풍경을 지나간 후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을 정도의 낮은 음들이다.



밋밋한 내 소란(騷亂)을 온통 들켰으면, 하며 길을 걷는다.

내 걸음도 이 풍경의 어딘가에 새겨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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