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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ul 13. 2020

낮의 애월, 밤의 한담

#바다를 바라봄에 대하여


밤,

하늘이라는 가장자리를 상실한 바다는 모든 방향으로 움직인다.


뭉개진 기억을 매일매일 지우는 해변으로,

목격된 적 없는 먼바다로,

모래밭에 앉은 이들의 확신 기대 사이로,

끝없이 수심을 갱신하는 해저의 바닥으로,

계량되지 않는 빛들의 광원으로.


어둠을 머금은 바닷가에서, 서로 닿아있는 것들의 경계는 희미하다.

각자의 고차원을 포기한 것들이 하나의 구(球)를 이룬다.


지워진 경계선이 무수한 침묵을 내뱉는 곳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경계에 집중할 수 있다.  

자신의 울음에 온몸의 떨림으로 화답하다가 비행을 쉴 때에만 주위를 둘러보는 날벌레처럼.


자신이 태어난 해구의 굴곡을 표면에 띤 밤바다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수많은 선들에 대해,

각각의 선의 의도치 않은 시작과 예기치 않은 종료에 대해,

그 지점을 함께 통과한 누군가의 손 끝에 대해,

지금 옆에 없는 누군가의 온기에 대해, 떠올린다.


그렇게 일상파고에서 잠시 떠나온 우리는 차분히, 스스로를 소유할 수 있다.



낮,

어수선한 해변에 잠시 멈춰선다.

떠나온 여행객들이 곧 떠날 듯한 표정으로 지나간다.


곡선의 경계석에 앉아, 보이는 모든 시점을 저장하는 이가 보인다.

그는 언젠가 전원을 켜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리라 기대할지 모른다. 아닐지 모른다.


흐린 날 바다에 반사되는 모든 빛이

스스로에게 되돌아오는 느낌일지 모른다. 아닐지 모른다.


늘 밤의 앞으로 순서가 내몰리는 낮이,

실상 밤의 뒤를 따른다는 걸 깨달았을지 모른다. 아닐지 모른다.


하늘이 구름 속으로 몸을 숨기자, 구름이 푸른 파도의 아래로 부서져 들어간다.


떠나온 어딘가가 바로 이곳이지만, 이곳에서도 그 어딘가를 바라는 이들에게,

우리가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입장이란 걸,

굳이, 낮의 바다는 챙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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