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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ul 18. 2020

마라도를 읽는 법

배의 환영을 알아보고 등대는 문득 입김을 불고

바람의 장례를 치르는 관습은 음악이 되었다

행주가 상을 문지르듯 배가 쓰윽

들어오고 있다

하나의 개념이 최초의 시간에 정박한다


-詩 '봉인된 선험' 중, 김경주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1시 10분, 장이요

나오는 배는 3시 10분이에요. 10분 전까지 선착장에 가셔야 합니다.


입구의 번잡함을 견뎌야 한다. 마라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지만 선착장에서 표를 끊고 대기를 하고 30여분을 배를 타야하는 과정은 물리적으로 전부 1시간 정도다. 선착장에 도착한 후에는, 1시간 20분 동안의 마라도를 호젓하게 즐길 수 있다.


아침에 여객선 사무실에 전화로 미리 운항 여부를 확인했다. 태풍의 영향권에 있던 전날에는 배가 뜨지 않았다. 모슬포 운진항 버스 종점에서 내려 '마라도 가파도 여객선' 건물로 갔다.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표는 바로 끊을 수 있었다. 잠시 대기 후 배에 올랐다. 평일 오후, 절반 조금 안 되게 사람이 찼다. 30분의 운항 동안, 시끄러운 사람은 시끄러웠고, 조용한 사람은 조용했다.



선착장에서 올라가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오른쪽 길로 가려다 잠시 멈춘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오른쪽 길로 우르르 몰렸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반대로 향한다. 오른쪽 길에서 시끄러운 사람은 더 시끄러워지고, 조용한 사람은 아예 침묵할 것 같았다. 뒤에서 '저기 사람 많으니까 이쪽 길로 가자'는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굳이 뒤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빨리한다.  



시야는 하늘과 땅으로, 단순하게 갈린다.


땅에는 길과 풀밖에 없다. 인공이 가득한 절차를 밟아, 인공이 최소화된 곳으로 온 셈이다. 길, 풀의 색 모두 눈에 편하다. 명확한 곳이구나. 길은 고저(低) 없이 이어져 있다.  



해안 절벽에 세워진 목책 옆에서 연인 두 사람이 사진을 찍는다.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도 포즈를 취한다. 점점이 두 사람씩이다.  발목을 조금 넘을 정도로 자란 풀 사이로 길이 나 있다. 돌로 포장된 널찍한 도보길로 계속 가도 되지만, 굳이 그쪽으로 들어간다. 뒤를 따라오던 세 사람의 대화가 그제야 들리지 않는다.


대신, 목책 너머 절벽 쳐대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낮은 풀들을 가르는 소리가 섞인다. 먼바다에 떠 있는 배나, 작은 점이 돼버린 연인들에게선 소리가 나지 않는다.


 

절벽의 끄트머리 바위에 파란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건지, 바다를 건너온 건지 알 턱이 없다. 평생 기억해야 할 색(色)과 들어야 할 음(音)이 몇 되지 않는 섬에서 새는 이상하게 초조해 보이지 않는다. 분명 눈으로 먹이를 좇고 있을 텐데도. 어차피, 라는 게 어울리는 섬이라는 걸 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새가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자리를 피한다.



낮의 등대를 지난다. 소리도 움직임도 없다.


등대가 있는 풍경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 등대가 없는 곳에서 온 나는 알 수 없다. 아마 이 등대를 지키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섬이 모두의 시야에 들어오는 낮의 바다를 보며, 등대는 스스로 하나의 수집가가 됐을 수도 있다. 사람의 관심을 받지 않는 낮 동안 등대는, 지나가버릴 구름의 부피와, 부서져버릴 파도의 수량을 계산할지 모른다. 그렇게 매일매일 아무도 모르는 벽돌 사이의 어느 공간에 자신의 기록지를 숨겨놓고 있을지 모른다.



길의 초입에서 들리던 목소리의 일행이 큰 소리로 대화하며 지나간다. '내 건 짜장으로 시켜'라는 여자의 통화가 끝나자,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식당에 있어야 하냐고. 봐봐 이 풀이며 자연이며 이런 즐겨야지'라고 남자가 투덜댄다. 나머지 한 명의 여자는 별다른 말이 없다. 셋은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등대 옆 사람의 키만큼 자란 관목 옆에서 또 사진을 찍는다.


다시 그들과의 거리를 떨어뜨리려 빨리 걷는다.



등대 옆에 있는 성당을 지나치자 길이 사라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남쪽 해안 쪽으로 낮아지면서 끝이 보이지 않아서다. 내 나이 또래의 점잖은 남자 둘이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그들이 텅 빈 풍경을 담을 수 있도록 길 옆으로 시선을 돌린다. 풀과 목책과 하늘 사이에 돌비석이 서 있다. 누구를 기리는지는 굳이 읽지 않는다.



국토 최남단임을 알리는 비석이 나온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신나 보인다. 증명사진은 필요하다. 사람들이 조금 빠지면 찍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비석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간다. 이 좁은 길 역시, 갑자기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면 뚝 하고 저 푸른 풍경 속에서 떨어질 것만 같은.



길의 끝에 서서 보니 낚시꾼 2명이 장비를 정리하는 중이다.


내가 서 있는 쪽에 있는 오토바이 한 대와 멀리 다른 진입로에 있는 빨간 오토바이 한 대가 이들의 것이지 싶다. 충동이나 욕망이 배제된 풍경이라는 느낌이 든다. 때를 맞춰 낚시를 하고 몇 마리의 성과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그러니까 근퇴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갔다가 돌아가는 평범한 일상 같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도 닮았을 것이다. 나한테 할당된 것들 외에 신경 쓸 여유 없이 완결해야만 하는 것들에 신경 써야 하는 사무실에서처럼, 발 밑에서 부서지는 파도는 낚시꾼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겐 물고기의 존재를 느끼는 손 끝의 감각이나 낚싯대의 휘어짐 같은 것들만이 중요할 것이다.

 


몸을 돌려 올라오는데 바위 사이에 고양이가 자고 있다.


깨우지 않으려 멀리서 당겨서 사진을 찍는다. 사람의 먼 기척에도 반응하는 도시 고양이들의 민첩함이 새삼 안쓰러워진다. 하지만 도시의 고양이처럼 얘도 이름은 없을 것만 같다. 누군가 이름을 지어서 줘도 못 알아듣는 척할 것 같아. 왠지 그런 기분이 든다.



최남단 비석에선 여전히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비석의 아래에 검은 고양이가 누워 있다. 사진을 찍으려던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


얘가 우리나라 가장 남쪽에 있는 고양이네.


'아니에요. 저 아래 바위틈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애가 최남단입니다'라고 말해줄까 하다가 만다. 이 말을 듣고 누군가가 괜히 가서 잠이나 깨우지 싶어서.



남쪽 섬의 남쪽 해안을 따라 걷는다.


정적을 신경 쓰지 않는 파도가 유난히 강해 보인다. 구름과 하늘도 유난히 거칠어 보인다. 착시현상일 것이다. 사람이 정해놓은 방위의 경계라고 해서 바다나 하늘의 성질이 다를 리 없다. 사람과는 다르다.



해안가의 웅덩이에 원경의 하늘이 담겨 있다.

물이 마르면 하늘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마지막 짜장면집이라고 쓴 식당이 나온다. 처음의 갈래길에서 오른쪽으로 갔으면 이곳이 마지막 집이 맞겠으나, 나한테는 첫 집이다. 짜장면을 먹을 생각은 없었어도 흥미는 있었는데 성수기의 여름임에도 뭔가 을씨년스럽다.


해안에서 낚시를 하는 누군가가 이 집의 주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식당과 절이 연이어 나온다. 식당들마다 손님은 많지 않다. 관광객이 적어서일 수도, 점심시간을 넘겨서일 수도 있다. 한 횟집의 수조에서 돔 한 마리가 빠르게 헤엄치고 있다. 평소 횟집에서 보던 고기의 움직임과 다르다. 마라도의 앞바다에서 올라온 녀석일 것이다. 하나의 종(種)이 다른 종을 이용해 자신의 종을 유지하는 걸 비애라고 할 수 있을까. 수조 속의 마라도와 수조 밖의 마라도 모두 그저 각각의 풍경일 수도 있다.


돔이 바다에서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도, 어쩌면 그 단순한 사실을 지키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양산을 쓴 모녀가 앞서 걷고 있다.


양산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양산을 쥔 이는 엄마일 것이다.


딸도 엄마도 굳이 치우친 방향을 수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 편이 둘 모두 마음이 편할 테니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둘은 마라도를 즐기고 있다. 부연하지 않아도 보기 좋은 풍경이다. 모녀라는 이 풍경을 길잡이 삼아, 어수선한 식당 골목을 빠져나온다.



마지막 편의점까지 지나자 선착장이 코 앞이다.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작은 섬이구나. 이럴 거면 조금 더 천천히 걷는 건데, 하고 생각하다가 선착장 주변의 호젓한 풍경을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다. 간결하다, 는 느낌이 든다. 멀리 보이는 하늘과 바다 외에, 낮게 자란 풀과 낮게 쌓아 올린 몇 개의 구조물이 눈에 보이는 전부다.


마라도는 읽을 게 별로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읽는 방식을 달리하면 될 일이다.


매 걸음마다 조금씩 이동하는 것들을 최대한 찬찬히 바라볼 것.

눈의 가장자리로 들어오는 원경이 풀어놓는 소리들을 소리 내 따라 읽을 것.

그럼으로써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그때까지 내 안에 남아 있을 섬의 풍경에 새로운 기억을 덧입힐 것.


가장 먼저 선착장으로 내려가, 섬으로 밀려들다 사라지는 파도를 바라본다.

도무지,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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