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사법부가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성당을 모스크로 전환해 이제 여행자는 못 들어간다는 뉴스가 떴다. 세상의 모든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생길 멍청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며, 아야소피아의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다. 10년 전에 터키 여행을 같이 갔던 친구가 '그때 사진'을 구글포토에 옮겨야겠다는 댓글을 달았고, 얼마 뒤 나한테 공유 링크를 보내왔다. 링크를 열어 사진을 보는 순간,
10년 전의 내가 살아났다. 열화현상 따윈 전혀 없이.
사진 속 나는 늘 낯설다.
내 모습을 찍는 거나, 찍히는 것 둘 다 어색해하는 편이어서 그럴지 모른다. 다행히 이 친구와 여행을 다닐 때는 어색함을 잠시 내려두곤 했다. 2005년 첫 여행 때의 후지 디카를 시작으로, 친구는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앞모습도 뒷모습도. 나 역시 친구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래서 첫 여행 때부터 우리는 아예 각자 찍은 사진을 통째로 공유했다. 2달 동안 중국을 돌고 난 후, 티베트 라싸의 사진관에서 내가 찍은 필름을 인화해 CD에 담은 후에 우리는 인터넷 카페에 가서 친구의 파일들을 CD로 구워서, 2세트를 나눠가졌다. 이후 몇 년 사이로 같이 갔던 여행의 사진 파일들 역시 복사해서 서로에게 줬다.
누군가 사진을 잃어버려도, 나머지 한 사람이 복원할 수 있게 된 것도 장점이지만, 더 좋은 점은 내가 잘 찍지 않는 나의 사진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10년 전 이스탄불의 골목에서 나는 이발을 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슬렁대던 터에, 그 시간에 문을 여는 이발소를 보고 나서 즉흥적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단정한 이발사와 우리는 언어로 대화하지 않고 웃음으로 대화했다. '어떤 스타일로 해주세요'라는 주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대화였다. 어차피 덥수룩해진 머리여서 어떻게 잘려도 깔끔해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자리에 앉았다.
이발사는 몇 번 내 머리카락을 쥐어보더니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가위를 놀리는 그의 손길에선 거침없음이 느껴졌고, 이어지는 거품 면도에는 그의 자부심이 배어나왔다. 결과적으로도 몇 년간 했던 머리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머리 스타일이었다. 친구는 뒤에서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었다. 생각해보니, 첫 중국 여행 때 쿤밍의 화훼 시장 앞 미용실에서 내가 머리를 자를 때도 비슷한 웃음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뭐 즐거우면 됐지.
상쾌한 기분으로 다시 골목에 나오니, 눈에 보이는 모든 젊은 남자의 머리 스타일이 나랑 같았다. 이발사 아저씨는 멀리서 온 여행객에게 이스탄불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을 장착해줬던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발사는 저녁 늦게 문을 열고 거침없이 머리를 자르고 있겠지 싶다.
사진을 보다가 친구한테 카톡을 보냈다.
난 무슨 생각으로 저따위 패션으로 터키를 활보했나 싶네.
잠시 뒤 친구가 답을 했다.
뭔 소리냐. 다들 너의 패션이 한결같다고 생각한다.
피식, 웃고 다시 사진을 본다. 그나마 지금보단 날씬해서 다행이야,라고 카톡을 보내려다가 만다. 살 빼라는 잔소리가 되돌아올 게 뻔하니까.
점프샷은 친구의 전매특허였다.
친구는 어디서든 뛰었다. 나랑 같이 간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뛰는 포즈는 자연스러웠다. 여러 번 찍혀봐서 어떻게 다리와 팔을 놀려야 역동적으로 나오는지 알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난 영 부자연스러웠다. 지금 다시 사진을 봐도, 어쩜 저렇게 점프 하나 못하나 싶다. 잠깐 뛰는 건데 표정은 또 왜 저렇게 이상한지 원...
그나마 제일 잘 나온 사진을 고른다. 10년 전 카파도키아의 어느 언덕이다. 아침에 뜨는 열기구들을 보고 내려오는 길이었는지, 저녁에 산책을 하던 길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최대의 도약을 했다, 는 건 확실하다.
10년 전의 사진들은 내 외장하드에도 다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친구가 간간히 구글포토에 사진을 옮기며 링크를 공유해줄 때마다, 새롭게 사진을 쳐다본다. 우리 이랬구나, 저기 저랬는데,라고 혼잣말까지 하면서.
난 저장에 능하고 꺼내보는 일에 박하다.
저장에 만족하고 꺼내보는 일에 소홀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여행을 가면 나중에 다시 보려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데, 정작 돌아와서는 고이 저장해놓고 만다. 카메라를 잃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파일이 날아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처럼 친구가 쿡 찌르지 않아도 '나의 그때들'을 종종 꺼내어 봐야겠다.
잊고 있던 거리가 살아나도록, 지나쳐왔던 이국의 소음들이 주위를 메우도록, 그리고 조금은 어색한 과거의 나와 만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