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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ul 30. 2020

수없는 기분들

#인도 바르깔라 해변


남자들이 그물을 당긴다.


이른 아침이었다. 가까운 바다에 떠 있는 배에서 드리운 그물의 양쪽 끝은 해변에 있었다. 십수 명의 남자들은 두 패로 나뉘어 그물을 당겼다. 힘으로 끌어오는 단순한 구조였다. 남자 중 한 명이 아침 산책을 나온 나에게 같이 당기자고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당겼다. 파도가 높은 아침, 줄은 쉽게 당겨지지 않았고 남자들은 수다스럽지 않았다. 채 필름 한 롤도 채우지 못한 빈약한 기록에서도 그 아침의 과묵함이 느껴진다.



그물이 해안에 다다르자 몇몇 남자들이 바다로 뛰어들어가 밖에서 그물을 밀어냈다. 그물을 끝까지 올린 남자들이 빙 둘러서서 고기를 안쪽으로 털었다. 은빛의 고기들은 크지 않았다. 그날의 수확량이 평소와 비교해 어땠는지 알 턱은 없다. 나는 힌디어에 무지했고, 남자들은 여행객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줄을 당기던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들은 고기의 양을 가늠한 뒤 나누어가졌다.


혹여나 누군가가 나에게 고기를 조금 가져가라고 하면 웃으면서 손사래를 칠 생각이었으나, 아무도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말을 꺼내는 그가 자기 몫을 나눠줘야 할 것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손사래를 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노동을 했고 나는 구경을 했다.



해변의 남자들이 파도에 떠밀리듯 빠르게 흩어졌다.

태양은 아직이었다. 불필요한 소리와 움직임은 없었다.


여전히 과묵한 사람들이었다.



마지막 남은 남자가 그물을 깁는다.


지친 표정이다. 해변엔 그물에서 떨어지는 고기를 바라는 검은 새들과 남자, 그리고 나뿐이었다. 남자는 새를 신경 쓰지 않듯 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 새는 달려들지 않는다. 그건 어부와 새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일 것이다. 새의 시선 안에서 남자는 세심하게 작업을 한다. 그는 내 생각만큼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여행 내내 나의 나이셈은 늘 틀렸었다. 그는 얼른 자신의 노동을 끝내고 쉬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그물이 끊어져 바다에 가라앉지 않는 한, 그의 앞엔 내일도 그다음 날에도 새로운 그물이 놓일 테니까.


그에게 그물은, 수없이 들이치는 풍경이자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의 바다는 그물 안에 있었다. 남자가 그물을 다 깁기 전에 자리를 떴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끝까지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해변에서 돌아와 짐을 챙겼다. 해가 뜬 후에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뒷좌석에 앉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느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수없는 기분들이 창밖으로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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