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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30. 2020

바들라 바들리

#인도 마말라뿌람


희한한 일이다.

어떤 기억은, 기억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실이 된다.

「바들라 바들리」가 그랬다.


오래전, 인도 여행의 막바지였다.

관광비자 만료 기간인 2달을 꽉 채워 뭄바이에서 출국하기로 한 며칠 전에,

마말라뿌람이라는 마을에 갔다.

너덜너덜해진 가이드북에 2페이지 정도 소개된 작은 마을이었다.

돌조각으로 유명한 그곳에서 딱히 할 일은 없었다.

낮에는 돌산을 구경하고 바닷가에 가서 앉아 있었고,

밤에는 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사들고 와, 주류 샵에서 사 온 값싼 위스키를 마셨다.



어느 날 시간이 남아 배낭을 정리하다가 침낭을 어찌할까 고민했다.


여행 전, 인도의 숙소 침구가 더럽다고 얇은 침낭을 사서 가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산 거였다.

하지만, 숙소는 생각만큼 더럽지 않고, 나는 생각만큼 깔끔한 성격이 아니어서

몇 번 사용하지는 않았다. 물론, 아무리 겨울이어도 우리나라 여름 날씨와 비슷해서였기도 하다.

점점 많아진 짐들이 배낭에 가득이어서, 굳이 침낭까지 한국까지 되가지고 갈 필요가 없었다.


문득, 몇 주 전에 만났던 한국인 누나가 '인도에선 물물교환을 하면 된다'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인도에서 몇 달 봉사활동을 했던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물건을 바꾸고 싶으면 '바들라 바들리'라고 말하면 돼.'



숙소에서 나와 골목 맞은편에 서너 군데 모여있는 상점으로 향했다.

작은 마을이어서 상점들의 규모도 작았다.

옷과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 쪽으로 가자 밖에 있던 젊은 남자애가 말을 걸었다.

이미 며칠간 숙소를 오고 가며 인사를 터 둔 사이였다.


할로, 유 원트 썸씽?

바들라 바들리

왓?

바들라..바들리?

......


얘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생각이 들어, 손에 들고 있던 침낭을 앞으로 내밀고 이걸 바꾸고 싶다는 손짓을 했다. 남자애는 그제야 내 의도를 알아듣고 '아, 바들라 바들리'라고 말하며 상점으로 나를 들였다. 상점 안에 들어가자 얘가 아버지나 삼촌 뻘로 보이는 나이 든 사장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익스체인지?'라고 말하며 사장이 침낭을 보자고 했다. 그는 침낭을 꺼내 안과 밖을 꼼꼼히 살펴보며 한국에서 가져온 거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산 저렴한 침낭이었기에 괜히 뜨끔했지만, 한국 제품이고 좋은 거라고 말했다.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나한테 뭘 원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선물로 줄 여성 전통의상인 사리와 바꾸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가 다시 물었다.


기프트 포 유어 걸프렌드?

노, 마이 맘.


인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장이 '엄마 선물'이라는 말에 밝게 웃었다. 그는 '가족은 소중하지. 엄마는 소중하지.'라고 말하며 벽에 걸린 거 중에 아무거라 고르라고 했다. (왠지 젊은 남자애 들라는 식으로 말하는 걸 보니, 저 놈이 속썩이는 아들인가 싶기는 했다.) 나는 핑크색과 빨간색이 섞인 옷을 한 벌 골랐다. 사장은 연신 나를 좋은 아들이라고 치켜세우며 옷을 담아줬다. 악수를 하고 가게를 나서는데 사장이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을 두어 개 더 챙겨주며 말했다. '엄마한테 잘하는 건 좋은 거야'라고.


여행을 다녀와서 엄마한테 선물을 드릴 때나 (생각해보니, 왜 사이즈 생각을 나도 사장도 안 한 건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물물교환으로 바꿔 온 옷은 엄마한테 작아서 결국 체격이 작은 고모한테로 갔다.) 친구들에게 여행 얘기를 할 때 나는 인도에서 물물교환은 '바들라 바들리'라고 한다고 말하며 침낭과 옷을 바꾼 얘기를 하곤 했다.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가게 사장의 얘기도 곁들여서.



얼마 전, 누군가와 여행 얘기를 하다가 문득 이 말이 생각나서 구글에 검색해봤다. 인도에서 만난 누나가 했던 말이었고, 가게에서도 알아들었던 말이니 당연히 나오겠거니 해서 한글로 검색했다. 하지만 발음을 몇 개 바꾸면서 아무리 찾아도 그런 말은 없었다. 발음 나는 대로 영어로 검색해도 마찬가지였다.


고민 끝에 구글 번역기에 영어-힌디어를 켜고, 물물교환을 뜻하는 'barter'를 쳤다.

힌디어로, 「वस्तु-विनिमय vastu-vinimay」라고 떴다.

음을 들어보니 '바스투 비니마이'였다.

열 번쯤 들어도 그때 들었던 말과 다른 것 같았다.


이번엔 'by barter'라고 쳤다.

「बार्टर द्वारा baartar dvaara」라고 나왔다. '바아터 드바라'...

역시 반복해서 들어도, 내 기억 속 '바들라 바들리'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한참 동안 다른 단어들을 검색했다. 하지만, 어떤 단어도 '바들라 바들리'는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인도에 잠시 머물렀던 그 누나나, 더 잠시 여행했던 내가 힌디어로 물물교환을 알 리가 없었다. 당연히 사전을 들고 다니지도 않았고, 그때는 스마트폰은 물론 인터넷도 겨우겨우 인터넷 카페를 찾아가서 했던 시절이어서 검색해보지도 않았다. 여행을 다녀와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마찬가지였다.


십여 분 진지하게 검색을 하다가 포기하고, 피식했다. 내가 경험하고 기억한 것이니 당연히 물물교환은 '바들라 바들리'라고 믿고 있던 것이었다. 철썩 같이 믿고 있던 내 기억이 오류임을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었다.


'바들라 바들리'가 '바스투 비니마이' 또는 '바아터 드바라'가 되어도 그때의 기억은 훼손되지 않는데도.



똑딱이 필름 카메라로 찍은 마말라뿌람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 상점의 풍경을 떠올린다.


워낙 오래전이라 정확한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인도의 그 작은 마을에 갈 기회가 있으면 그 골목을 찾아가 봐야겠다.


혹시나 그 상점이 아직 그대로 있다면, 이번에도 굳이 '바들라 바들리'라고 말해볼 생각이다. 그러면 무뚝뚝하던 얼굴로 '익스체인지?'라고 되물어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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