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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13. 2020

완충 카타르시스

#장마는 도대체 언제...

폭염이 이어지던 몇 년 전에도 이랬다. 

조금 버티면 되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도무지 이 세계가 정상으로 돌아올 거 같지 않다는 위기감이 든 순간이 있었다. 

그 이후로, 24시간 떨어지지 않는 온도 속에서 다들 부품 몇 개씩 도난당한 듯한 표정이었다. 

어딘가에 불만을 터뜨리고 싶어도 그 대상이 없어서 속으로 삭여야 했던 여름이었다. 


올해는 비가 잔뜩이다. 

냉방이 돼 있는 곳에서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지만 벗어나는 순간 습기가 덤벼든다. 

걸을 땐 땀으로 끈적거리고 누우면 내 몸과 닿는 모든 표면 때문에 한숨부터 나온다. 


장마가 이어지니, 모두 각자의 100%를 잃는 듯하다. 


습기로 끈적이는 바닥이 그렇고, 

쥐어짜면 물방울이 떨어질 거 같은 수건이 그렇고, 

곧 이끼로 덮여도 이상하지 않을 계단이나, 

마른 천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운동화가 그렇다. 

축축한 공기 속에서 저마다의 기능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발전기를 돌리면서 기를 써봐도, 

몸 구석구석으로 가는 회로에 습기가 잔뜩 껴서 에너지를 중간에 다 흡수한달까. 

덕분에 머리도 몸도 멈췄다 움직이기 일쑤다.


혹시 이러다가 사람도 풍경도 모두, 

정상이라는 상태를 영영 상실해버리지 않을까.



아무리 쉬어도 충전이 되지 않는 엉망인 날씨 속에서 

완충 카타르시스만 꿈꾸고 있다. 


96, 97, 99%에서 100%으로 숫자가 넘어가면

그 이후에는 있는 대로 시간 낭비하면서 맘대로 늘어질 텐데.

몸에 안 좋은 것들 골라 먹으면서 소파에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려도 산뜻한 기분일 텐데.


충전이 완료됐다는 녹색불이 들어오기만 하면, 

억지로 잡는 술자리나 밀려드는 업무 같은 보조배터리로는 충족 안 되는 

그 평범한 카타르시스를 맘껏 즐길 텐데.


덥다고 투덜대지 않을 테니, 얼른, 

해가 쨍쨍한 날씨가 됐으면.

온몸의 습기와, 온 집안의 축축함이 다 말랐으면.

그렇게, 100%의 기분을 찍고 기분 좋게 방전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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