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충 카타르시스

#장마는 도대체 언제...

by 너무 다른 역할

폭염이 이어지던 몇 년 전에도 이랬다.

조금 버티면 되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도무지 이 세계가 정상으로 돌아올 거 같지 않다는 위기감이 든 순간이 있었다.

그 이후로, 24시간 떨어지지 않는 온도 속에서 다들 부품 몇 개씩 도난당한 듯한 표정이었다.

어딘가에 불만을 터뜨리고 싶어도 그 대상이 없어서 속으로 삭여야 했던 여름이었다.


올해는 비가 잔뜩이다.

냉방이 돼 있는 곳에서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지만 벗어나는 순간 습기가 덤벼든다.

걸을 땐 땀으로 끈적거리고 누우면 내 몸과 닿는 모든 표면 때문에 한숨부터 나온다.


장마가 이어지니, 모두 각자의 100%를 잃는 듯하다.


습기로 끈적이는 바닥이 그렇고,

쥐어짜면 물방울이 떨어질 거 같은 수건이 그렇고,

곧 이끼로 덮여도 이상하지 않을 계단이나,

마른 천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운동화가 그렇다.

축축한 공기 속에서 저마다의 기능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발전기를 돌리면서 기를 써봐도,

몸 구석구석으로 가는 회로에 습기가 잔뜩 껴서 에너지를 중간에 다 흡수한달까.

덕분에 머리도 몸도 멈췄다 움직이기 일쑤다.


혹시 이러다가 사람도 풍경도 모두,

정상이라는 상태를 영영 상실해버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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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쉬어도 충전이 되지 않는 엉망인 날씨 속에서

완충 카타르시스만 꿈꾸고 있다.


96, 97, 99%에서 100%으로 숫자가 넘어가면

그 이후에는 있는 대로 시간 낭비하면서 맘대로 늘어질 텐데.

몸에 안 좋은 것들 골라 먹으면서 소파에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려도 산뜻한 기분일 텐데.


충전이 완료됐다는 녹색불이 들어오기만 하면,

억지로 잡는 술자리나 밀려드는 업무 같은 보조배터리로는 충족 안 되는

그 평범한 카타르시스를 맘껏 즐길 텐데.


덥다고 투덜대지 않을 테니, 얼른,

해가 쨍쨍한 날씨가 됐으면.

온몸의 습기와, 온 집안의 축축함이 다 말랐으면.

그렇게, 100%의 기분을 찍고 기분 좋게 방전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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