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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09. 2020

소시민이라는 서사

#영화 [소년시절의 너]와 [나는 약신이 아니다]

두 영화 모두 상업영화이다.


종종 자국에서 크게 흥행한 중국영화를 '국뽕'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만, 이 영화들은 다르다. [소년시절의 너]는 멜로 영화로서, [나는 약신이 아니다] 코미디 영화로서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그만큼 재밌다는 얘기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1537


입시에 목을 맨 지방 도시의 여고생 첸니엔은 따돌림을 당하던 친구의 자살을 눈 앞에서 목격한다. 경찰의 조사를 받고 온 그녀는 아이들의 다음 타깃이 돼 괴롭힘을 당한다. 거기에 가짜 마스크팩을 판 엄마 때문에 집에서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린다. 이런 그녀에게 유일한 희망은 대입시험을 잘 쳐서 베이징으로 가는 것뿐이다. 첸니엔은 어느 날 휴대폰 불법 개조를 업으로 살아가는 거리의 소년 베이를 만난다.


서로를 낯설어하던 둘은, 괴롭힘과 협박을 견디지 못한 첸니엔이 베이에게 자신을 보호해달라는 제안을 하면서 가까워진다. 중반 이후 영화는 첸니엔과 베이가 대입시험 바로 전에 휘말리게 된 사건을 중심으로 두 사람의 절실함과 애틋함을 다룬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22991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인도에서 백혈병약 복제약을 밀수해서 판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상하이의 뒷골목에서 인도 정력제를 팔던 주인공 청용은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아들을 뺏길 위기에 처해있었다. 거기에 아버지의 수술비마저 없는 상황. 그런 그의 가게에 백혈병 환자 한 명이 찾아오고, 인도에서 만든 복제약(효과는 같지만 가격은 정품의 수십 분의 일밖에 안 하는)을 밀수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정력제로 인도에 밀수루트가 있던 청용은 고민 끝에 승낙하고 약을 들여온다.


유일한 백혈병 약이었던 정품의 살인적인 가격 때문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던 환자들은 청용이 가져온 약 덕분에 희망을 갖게 되고, 청용은 엄청난 돈을 벌며 일약 약신으로 떠오른다. 영화의 중반 이후는, 밀수 약에 대한 수사가 진척됨에 따라 급박하게 돌아가는 청용 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두 영화의 공통점이 있다면, 힘겹게 사는 평범한 주인공들에게 국가가 너무 멀리 있다는 점이다.


[소년시절의 너]의 첸니엔은 불우한 환경을 공부로 이겨내려 하는 고등학생이지만, 집단 따돌림과 폭력을 당하던 그녀가 기댈 곳은 없었다.

엄마는 빚쟁이를 피해 도망 다니는 상황이었고, 선생님들은 얼마 남지 않은 대입시험에 매진하라고만 했다. 친구의 자살을 조사했던 형사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지만 주요 가해자가 정학을 당하고 담임선생님이 교체됐을 뿐 첸니엔의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가해자들의 그녀의 집 앞까지 찾아와 그녀를 괴롭히고 학교에서의 투명인간 생활을 계속된다. 우연히 만난 소년 베이 외에 그녀가 기댈 곳은 없다.  


[나는 약신이 아니다]에서는 청용의 팀(청용을 제외한 모두가 백혈병 환자이거나 환자의 가족인)이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이는 청용이 약을 파는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책정해놓은 엄청난 약값을 용인하고 싸게 생각되는 복제약의 수입을 금지한다. 돈이 없으면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국가는 침묵한다.



역설적으로 국가라는 시스템은 이들에게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은 두 영화의 스토리를 풍부하게 한다.


평범한 시민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소외받은 이들 쪽으로 관객들이 몰입을 하면서 이야기의 힘이 점점 세진다.


물론, 두 영화 모두 마지막에, 현재 중국의 법이 어떻게 개선됐는지, 그로 인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이 나아졌는지를 친절하게 자막으로 설명해준다.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나는 약신이 아니다'의 경우는, 청용 일당의 밀수사건으로 인해 변화한 의료시스템에 대해 연도별로 집어준다. 그걸 어느 정도로 믿는지는 관객의 몫이겠지만.



하지만 굳이 소시민의 극복 스토리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두 영화는 영화적 재미가 뛰어나다.

특히 이야기의 호흡이나 스타일은 웬만한 한국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보다 낫다.


영화라는 장르에 '국가'라는 잣대가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는 늘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특정 나라의 영화에 대해서 편견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중국 영화하면 사극, 무협영화 혹은 제작비를 쏟아부은 B급 블록버스터를 생각하기 일쑤다. 하지만 두 영화는 다르다.


[소년시절의 너]는 학교폭력이라는 주제를 잃지 않으면서도 첸니엔과 베이의 감정을 세련되게 보여준다. 

그 나이를 겪은 사람이라면 모두 그 나이 때의 위태롭고도 풋풋한 감정 상태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다.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여는 과정은 진정성이 느껴지되 스타일리시하다.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한국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분위기를 많이 닮았다. 

청용 일당이 밀수로 성공을 거두는 중반부까지의 유쾌함은 특히 그렇다. '범죄와의 전쟁'에 삽입됐던 함중아의 노래 '풍문으로 들었소'는 아예 중국어로 번안돼서 영화에 들어가 있다. 한국 누아르 영화가 중간중간 보여주는 특유의 묵직함은 없지만, 대신 처음에 돈벌이에만 급급하던 청용이 조금씩 환자들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은 없다. 모든 감독은 최선의 연출을 하고 모든 배우는 최선의 연기를 했을 테니까. 굳이 누구를 콕 집어서 연기를 칭찬하기보다는 '영화 자체'가 재밌다 아니다, 를 판단하는 게 더 합당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두 영화를 보고 나서 배우들을 굳이 찾아봤다.


그만큼 두 영화는 배우들을 제대로 보여줬다. 특히 두 영화 모두 주인공들의 얼굴을 빅 클로즈업으로 자주 보여준다. 배우들은 카메라에 지지 않는다. 그들은 미묘한 감정 변화를 얼굴을 통해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각자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덕분에 우리는 첸니엔의 상처 받고 아픈 세계로, 베이의 거칠어 보이지만 여린 세계로 들어갈 수 있고, 청용이라는 개인이 사회의 부조리를 겪으면서 새롭게 가지게 된 감정을 같이 느낄 수 있다.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기꺼이 넘을 용의가 있으면 두 영화를 보기를 추천한다





*[소년시절의 너(少年的妳)]의 원작소설의 제목은 [少年的妳,如此美麗]다.

번역하면, '그렇게나 아름다웠던, 소년시절의 너' 다.



*[나는 약신이 아니다]의 감독 원무예(文牧野/Muye Wen)는 85년생이다.

그가 베이징 영화 학교 당시에 만들었던 12분짜리 단편영화 '레퀴엠(安魂曲)'은 영어 자막으로 여기에서 볼 수 있다.

https://v.youku.com/v_show/id_XMzcxOTg4NjQ4OA==.html?spm=a2h0c.8166622.PhoneSokuUgc_3.dscreen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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