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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r 23. 2018

땅의 위안, 라다크 트레킹

인도 라다크 #2

(라다크에서는) 시간을 재는 경우에도 느슨하고 여유롭게 잰다.

1분 단위로 시간을 측정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

'공그로트 gongrot'는 '어두워진 다음부터 잠잘 시간까지'라는 뜻이고,

'나이체 nyitse'는 '해가 산꼭대기에 걸려 있는 한낮'을 말한다.

또 '새의 노래'라는 뜻의 '치페 치릿 chipe-chirrit'은 해가 뜨기 전 새들이 지저귀는 이른 아침을 뜻한다.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환상은 여행에 도움이 된다, 고 믿는 편이다.

"ooo에 가면 ooo를 꼭 먹어야 한다" 식의 당위적인 환상이나  

"ooo=ooo의 도시" 같은 도식적인 환상만 아니라면 말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곳을 가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도 환상 덕분이고, 그곳에서 가서 두근두근거리며 재게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환상이다. 새로운 것들을 보는 눈에 따뜻한 호의를 담게 해주는 것도 환상이고, 낯선 도시의 밤을 아련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환상이다. 물론 모든 환상의 시작엔 누군가의 의도가 있는 걸 아는지라, 환상에의 의존도가 절대적이진 않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없는, 내가 딛고 있는 일상에서 결여된 '무언가'가 '그곳'에 있다고 믿는 건 꽤 위안이 된다.


대학 때 라다크에 관한 인류학 서적인 '오래된 미래'를 훑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충실한 독서는 아니어서 이 여행 전까지 남아있던 건, '도시화로 인해 황폐화되고 있는 정신적인 공동체' 같은 안타까움 정도였다. 역으로, 더 황폐화되기 전에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한 공동체를 보고 싶은 환상 정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라다크행 비행기표를 끊은 후 다시 이 책을 펼쳤다. (솔직히, 왜 비수기인 12월에 라다크를 가고자 했는지는, 놀랍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뜬금없이 제안했고, 친구가 어이없이 수락했다는 것 외에는...) 대학생 때 가졌던 문화 연구가적인 환상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하지만,


책에 묘사된 이 '느긋한 땅'을 거닐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나흘 간의 트레킹은 그 욕망으로 인한 것이다.  

* 이상한 연유로 우리는 '땅의 순수함'을 경험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바로 트레킹 전날 오전에 숙소를 떠나서부터(그날 밤에 숙소에 왔을 때는 레 전체의 통신이 두절됐고, 트레킹을 떠나는 날 아침까지 '먹통 상황'이 이어졌다), 트레킹이 끝난 날 밤 레의 숙소로 돌아오기까지 만 5일 동안, 모든 통신이 두절돼 있었기 때문이다. 레는 군사적인 이유로 휴대폰 통신망이 제한적이었고, 트레킹 동안 묵었던 시골집들에 와이파이는 전무했다. 끝날 즈음에는 금단현상에 익숙해졌다, 는 거짓말은 못 하겠지만, 꽤 많은 '여지'가 있던 5일이었다.



Day 1 :

레 (Leh) 9시 30분 출발

리키르 (Likir) 12시에 도보 트레킹 시작

양탕 마을(Yangthang) 16시 도착


두 강의 합류 지점


레를 떠난 후 한 시간쯤 후 차가 선 곳은, 인더스 강과 잔스카르 강의 합류 지점이었다.

강에는 얼음들이 떠다녔고, 한겨울이 되면 언 강 위로 얼음 트레킹을 떠난다고 했다.


두 강물의 색깔은 확연히 달랐다.

색의 다름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잠깐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원경에서 보고 원경으로 사라질 내가 물을 만한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간명하지만 확실한 아침 메뉴


11시 즈음 작은 마을에 멈췄다.

스낵바 안에선 오전인지라 주로 차와 사모사(인도식 튀김만두)를 사는 사람만 있었다.

튀김 안엔 온기가 온전했고, 짜이는 짜이스러웠다.

근엄한 표정의 늙은 주인이 능숙하게 음식을 내어주고 돈을 받았다.


태양 쪽으로 기울어진


트레킹 포인트로 가기 전 들른 사원은 아득했다.

화장실의 네모난 구멍을 내려다봤을 때 아찔할 정도도 깊어서 아득했고

지붕 위에서 본 풍경 안에 인가가 거의 없어서 아득했다.

아득한 풍경 위로 사원이 서 있었고, 사원의 지붕 위에선 예리한 지향점들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관광객과 기도객과 승려는 모두 아득함과 예리함 사이에 있었다.


베이비 트레킹 시작지점, 리키르 (Likir)


우리가 택한 4일 트레킹 코스는, 매우 짧고 난이도가 낮아 '베이비 트레킹'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베이비, 란 태그는 낯설었지만 안도가 됐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베이비가 이 정도라면, 그들의 어덜트 코스는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을

숨을 헐떡이며 자주 했다.


리키르 (Likir)


겨울 라다크의 풍경은 솔직하다.

모난 지점도 둥근 지점도 다 같이 드러나있다.

물은 흐르지 않고 돌들은 가만하다. 산의 굵은 골들에 바람은 느리고 들고 났다.  


12시쯤 걷기 시작했다.

가이드까지 총 3명이 있는 이 집단에서도 난 맨 뒤가 편했다.


나흘 내내 그랬다.



마른땅에서 먼지는 수시로 일었는데,

도로 공사 중인 곳에는 (아마 포클레인의) 캐터필러가 지나간 자리가 많아 푹푹 빠졌다.

그럴 때마다 등산화는 먼지를 선별하듯 적당히 고운 먼지만 얇게 묻혔다.

결국,

먼지는 '간지'로 기능했다.


1차 고점에 있던 타르초 이후 급격히 지쳐서 풍경에 감탄하기 힘들었다.

두서없는 생각의 단초들이 정지할 정도로 숨을 헐떡댔다.  

쉴 때마다, 눈 앞에 간지를 묻힌 신발이 있었다.

다행이었다.

이런 자기만족이 힘이 됐다.


양탕 (yangthang) 마을 도착 바로 전


이 산을 돌자마자 첫날 숙소가 있는 양탕 마을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보였기 때문에 마지막 오르막이 제일 힘들었다.

아이러니했다.


"어쩌면, 인생 목표를 가시적이지 않은 걸로 세워야 사는 게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해지는 타임랩스 in 양탕 마을, 노르부 게스트하우스 방


원경이 많은 풍경 속에서,

'어두워진 다음부터 잠잘 시간까지'라는 '공그로트 gongrot'가 다가오는 속도는 느렸다.


게스트하우스의 2층에서는 움직일 때마다 먼지가 일었고

두 장씩 덮은 밍크 이불을 뒤챌 때도 마찬가지였다.

창밖에서 빛이 소멸하는 속도는 방 안의 먼지들은 자기 자리로 내려앉는 속도와 같았다.

결국 원경과 근경은 같을지도 모른다.





Day 2 :

양탕 (Yangthang) 마을 10시 출발

장체 3888m 고지

헤미스 슉파첸 (hemis shukpachen) 마을 14시 도착


양탕 마을, 노르부 (Norbu) 게스트하우스
양탕 마을, 노르부 (Norbu) 게스트하우스


짜파티 만드는 과정을 천천히 구경했다.

불을 때고, 반죽을 하고, 밀대로 민 후에, 달궈진 팬에 부쳐냈다.

동작의 속도는 느렸지만 순서는 확실했다.


다 구워진 짜파티와 함께 계란과 살구 쨈, 버터, 밀크티가 놓였다.

손님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접시를 비우고 나서 가족들이 식사를 시작했다.

우리에겐 불편한 방식이 노르부 가족에겐 편한 방식이었다.


노르부 게스트하우스에서 본 뷰


깊은 산을 사방에 두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기도를 한다.

말의 형태로 만들어진 기도는 말로, 글의 형태로 만들어진 기도는 글로 반복한다.


거실이자 주방인 공간에, 첫날 저녁 내내 그리고 아침 식사 내내

기도는 끊이지 않았다. 문득, 기도문의 내용을 알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으나

이내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로만 남아 있는 게 더 오래 기억에 남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도문의 의미를 모르니 기도문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같이 경건해졌다.


내가 찍어준, 친구의 인생샷


처음 쉬는 고갯마루 아래 새로 만든 도로의 곡선이 확연하다.

어제 묵었던 양탕 마을도 지나는 도로다. 게스트하우스의 아들은 읍내에서 교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저 도로로 차를 타고 출퇴근한다고 했다.


우리는 도로가 뚫린 그 길을 무시하고, 트레킹을 한다.

삐딱하게 보면, '순수를 가장하면서'라고 할 수 있지만,

너그럽게 보면, '순수를 동경하면서'라고 할 수 있다.

둘 중 뭐가 됐건, 숨을 헐떡이는 건 마찬가지다.


해발 3888m 장체
해발 3888m 장체


장체에는 바람이 많았다.

바람이 강하지는 않았는데 많았다, 고 적으면 이해가 될까.


하늘과 땅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바람이 채우는 듯했다.

하늘색과 땅색만이 있는 곳에서는 바람도 색을 가져야 할 것만 같았다.


장체에서 헤미스 슉파첸(hemis shukpachen) 마을로 가는 길



이런 풍경을 평생 보고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런 풍경 안에서 평생 걸어 다닌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런 풍경을 평생 처음 보며, 되게 짧게 스쳐갈 수밖에 없는 나는,

마냥 좋았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헤미스 슉파첸 (hemis shukpachen) 마을


출발 때부터, 오늘은 easy 하다는 가이드의 말이 맞았다.

오후 2시가 채 안 돼서, 오늘 묵을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중앙에 있는 불상 주위를 아주머니들이 돌고 있었다.

'언제나 시계방향'은 여기에서도 당연히 지켜졌다.


처음 우리를 보고 뚱 하던 표정이,

한 바퀴 돌 때 2명 정도 관심을 보이는 표정으로 바뀌고

그다음 바퀴 돌 때 전부 바뀌더니, 다음 바퀴를 돌면서는 말을 걸었다.


우리는 다 같이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부탁은 아니었다.

사진은 나중에 가이드를 통해 전달했다.


헤미스 슉파첸 (hemis shukpachen) 마을


허물어지다 남은 돌벽에 비친 불상이 그림자를 남겼다.

불상이 비뚤어져 앉아 있었나, 의문이 들어 돌아보니

불상은 정좌 상태다.


비뚤어진 그림자는 누구 탓을 해야 할까.

햇빛 탓을 해야 할까, 각도를 변화시키는 시간 탓을 해야 할까, 벽돌이 허물어진 벽 탓을 해야 할까.


어쩌면, 애초에 누구 탓을 해야 할 만큼

비뚤어진 상태가 이상한 건 아니지 않을까



*사진을 찍을 때는 미처 들지 않았던 질문들이, 계속해서 드는 건, 사진의 힘일까, 라다크의 힘일까.

*3일 차, 4일 차 사진은 다음 포스트에서...


*트레킹을 함께 했던 가이드 건촉 타르친은 우리 일행이 귀국한 후 얼마 뒤 자신의 에이전시를 차렸다고 합니다. 한국어는 하지 못하지만, 매우 친절한 영어를 쓰는 가이드이고, 수많은 문화적 종교적 설명이 가능한 가이드니 혹시나 해서 이메일을 남겨놓습니다. 

konchoktharchin0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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