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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r 29. 2018

땅의 위안, 라다크 트레킹_part 2

인도 라다크 #3

라다크 사람들은 정신과 육체 혹은 이성과 직관을 근본적인 대립의 관계로 보지 않는다. 

라다크 사람들은 '샘바 samba'라 부르는 관념, 번역을 하자면 '마음과 정신 사이의 연결'을 통해 이 세상을 경험한다. 이것은 지혜와 자비심이 분리될 수 없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다.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이분법은 사람을 편하게 한다. 

하지만, 세상을 이해하는 이 편한 방식이 늘 적절한지는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왜 정신은 육체와 분리돼야 하는지, 

왜 여행은 일상과 다른 영역인지, 

왜 문명과 순수함은 대립해야 하는지, 같은 질문들은 필요하다. 


라다크의 땅을 보며 자주 한 질문은 이거였다. 


과연 사람과 자연은 분리돼 있는가?




Day 3 : 

헤미스 슉파찬 마을 (Hemis shukpachen) 9시 30분 출발

패싱 포인트, 붉은 산, 검은 산 지나

테미스감 (Temisgam) 마을에 오후 도착. 

약파(Yakpa) 게스트하우스에 짐 풀고 차 마시고, 

테미스감 사원. 스님 방에서 차 한잔.



날은 흐렸다. 

첫 번째로 헉헉 대고 얼마 후, 평지 비슷한 곳을 걸을 때, 

벌판에 돌로 두 기둥을 세워두고 타르초로 위를 이은 '패싱 포인트'가 나타났다. 


그 옆에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이 20여 미터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분리되어야 할 것들이 분리돼 있는 걸 보는 건, 왠지 안도가 된다. 


두 언어의 간결한 조형미를 보는 건, 별도의 즐거움이었다. 



패싱 포인트를 패싱 한 후, 길은 훅 하니 아래로 경사를 이뤘다. 

계곡에 사선으로 나 있는 좁은 트레일을 따라 내려가다가 맞은편 계곡으로 올랐다.

등산화 발목이 꺾이면서 생기는 통증과 미끄러질 듯한 공포가 동시에 밀려왔다. 


둘 모두, 강도가 세지는 않았지만, 합쳐서 다가오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늘 길이 완만해지고 나서야 뒤를 돌아본다. 


잠시 쉬는 동안, 배낭에 넣어두었던 카메라를 꺼냈다. 

길을 떠날 때 가이드인 건촉 씨가 오늘 길은 힘들다고 겁을 줘서 배낭에 넣어둔 터였다. 


우리가 다리 쉼을 하며 사진을 찍을 때, 

건촉 씨는 멀리 계곡 바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군인 두 명과 고함으로 대화를 했다.


고지대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이곳에서, 아래와 위에 있다는 건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군인과의 대화도 끝나고, 다리 쉼도 끝난 후 

붉은 산을 마저 넘었다. 이어지는 산은 '검은 산'이라고 했다. 


검은 산의 산허리를 돌아가자 급경사의 트레일이 나타났다. 

마른땅은 발을 디딜 때마다 부서져 내렸다. 

한 번 미끄러지면 멈출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이어졌다. 

가이드 건촉 씨를 제외한 우리는 네 발로 겨우 올라갔다. 


바위에 앉으니 히말라야 설산 뷰가 펼쳐졌다. 

가까운 산이건 먼 산이건 거리는 가늠되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가늠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땅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표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 듯했다. 


건촉 씨가 주스와 과자를 건넸다. 



10분을 더 올라 3,884m 정상에 올랐다. 각자 바위 하나씩을 잡고 배낭을 부렸다. 

여기까지 와서 굳이 자기 영역을 찾는 느낌이었다. 

본능은 늘 사람을 피식 웃게 한다.


건촉 씨가, 여기가 오늘 트레킹의 사점이라고 '컨펌'해주었다. 

덕분에 내리막 풍경은 눈에 더 많이 들어왔다. 



앙 마을을 지나 도로로 죽 걸었다. 

딱딱한 땅이라 등산화를 신은 발에 통증이 왔다.


겨울이면, 설표범(snow leopard)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이 땅을 찾는다고 했다. 

표범의 발엔 어느 계절에도 통증은 없을 것이고, 

사람들의 발에는 어느 계절에도 통증이 있을 것이다. 


땅은 발을 차별하지 않겠지만, 사람의 발은 땅을 차별한다. 



마을은 늘 산이 패인 곳에 위치한다.

때문에, 산은 늘 올려다봐야 하는 무엇이 된다. 


산 정상에 살면서 홀연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사는 것보다

산 아래에 살며 경외감을 느끼고 사는 편을 누구나 택할 것이다. 


마을은 그 누구누구의 합(合)이다.  


테미스감(Temisgam) 마을은 규모가 작지 않았다. 

노란 통학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가는데도 길 가장자리로 붙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마을 길은 넓었다. 

약파(Yakpa) 홈스테이 집의 거실 겸 키친 역시 넓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너른 공간을 채우려고 무리한 흔적은 없었다.

조잡하지도, 휑뎅그렁하지도 않은 공간 안에서 휴식은 편안했다.  


얼마 뒤, 트레킹 첫날에 헤어졌던 드라이버가 차를 몰고 왔다. 

그의 손에는 냉동 닭이 담긴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차를 타고, 마을에 있는 테미스감 사원으로 향했다. 


차가 다니는 길은 긴 주기로 휘어져 있었고 

사람이 오르내리는 길은 짧은 주기로 꺾여 있었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설산 봉우리의 선예도와 

바로 앞에 있는 사원 건물들의 선예도는 같았다. 



법당을 둘러본 후, 스님이 기거하는 방으로 초대돼 차를 마셨다.  

방은 간결했고, 방 안의 물건들은 소용을 유일한 기준으로 마련된 듯했다. 

작은 방을 책임지는 난로는 따뜻했고,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회색 고양이는 친근했다. 


스님은 1년을 주기로 절을 옮기며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 절엔 자기 혼자서 머문다고 했다. 


긴 낮과 긴 밤을 혼자 보내야 하는 스님의 생각 주기는 

도대체 얼마나 길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곳의 음식들은 조용하다. 


재료도 조용하고, 간 맞춤도 조용하고, 생김새마저 조용하다.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불필요한 시끄러움은 없었다. 

드라이버의 비닐봉지 속에 있던 냉동 닭도 조용히 접시에 올라왔다. 

식사 역시 조용한 분위기에서 마쳤다. 



(통신 기능이 4일째 사라진) 핸드폰 불빛을 켜고 마당에 있는 '로컬 토일렛'을 다녀와

카메라를 챙겨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숙소 앞마당에서 인공의 빛이 거의 닿지 않는 구석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무들은 정당하게 뻗어있었고, 

별들은 새삼스럽지 않게 빛을 내고 있었다. 



Day 4 : 

테미스감 마을 차 타고 출발

문 랜드 마운틴

라마유루(lamayuru) 사원

리종(lizong) 사원

알치(alchi) 사원

레(leh) 저녁에 도착. 

여행사 사장과 건촉 동료들과 함께, 로컬 펍에서 탄두리에 맥주

레 숙소. 5일 만에 와이파이를 잡음. 



6시쯤  깨서 밍크 이불 안에서 일기를 썼다. 

저녁쯤 '문명'으로 돌아가서 5일 치 연락받을 일에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두근, 걱정. 별일 없기를...

세상은 나한테 별 신경을 안 쓰지만, 나는 세상이 걱정이다. 


아침 식사는 짜파티와 초코 버터크림, 살구잼, 계란 프라이, 짜이 티였다. 

 


차를 타고 편하게 이동했다. 하지만 차의 속도만큼 풍경이 빠르게 스킵됐다. 

계곡 옆에 10미터 높이의 고드름들이 있었다. 물이 흐르다가 얼어붙은 듯했다. 

계곡 물은 길 아래에 있는데, 얼어붙은 물은 어디에서 내려온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들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고드름 앞에 서면 다들 애들이 된다.   



문 랜드 마운틴,의 현지어 이름은 깜빡하고 묻지 않았다. 

영어 이름이 너무 적절해서였다. 

숨김없이 거칠게 드러난 다른 산들과는 어딘가 달랐다. 


이 산은 뭔가 숨기는 게 있는 듯했다.

울퉁불퉁한 굴곡이 만드는 그림자 덕분인지 모른다. 

여지, 는 늘 도움이 된다. 



라마유루 곰파는 큰 사원이었다. 

오래된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들이 같은 곳에 즐비했다.  


까마귀들은 인상적인 집단을 이루고 있었지만, 재게 지저귀지 않았다. 

그 역시 땅의 일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연신 미소를 띠던 촌로의 음(音)과 

기도 소리가 없던 법당의 음(音)은 둘 모두, 

땅의 일이었기에 다르지 않았다. 


 


리종 사원으로 가는 길은 낭떠러지 바로 옆에 있는 계곡 길이었다. 

과속을 하지 않아도 무서울 정도였다. 

 

뒷방에 있던 노스님이 나와서 건촉 씨와 환담을 했다. 

영어로 설명해주던 가이드 건촉 씨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은퇴한 마스터 스님이라고 했다. 

카메라를 들이미는 게 맞나 잠시 고민하고 있었는데, 

건촉 씨와 스님이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카메라는 최선을 다했지만,

노스님의 평온함은 카메라에 다 기록되지 않았다. 

매체는 늘 한계가 있다. 



알치 사원으로 가는 길, 

묘목이 든 커다란 짐을 든 남자 한 명이 히치하이킹을 했고, 우리의 의사를 확인한 후 차를 세웠다.  


가이드 건촉 씨와 드라이버는 남자를 위해 앞좌석에 공간을 마련했다. 

뒷좌석에 나와 친구만 있으니 뒤에 타는 게 어떠냐고 말했으나, 

앞 좌석의 세 명 다 극구 안 된다고 했다. 


15년 가이드 생활에서 나온 배려의 규칙은 강했다. 



레(Leh)에 들어가기 전, 첫날 오전에 갔던 작은 마을의 스낵바에 다시 들렀다. 

첫날과 다를 거 없는 분위기였다. 


종일 차를 타고 다니며 구경만 했는데도 몸이 노곤했다. 

조용히 사모사를 먹고, 짜이를 마셨다. 

 


알치 사원을 구경하고, 저녁에 레 시내로 들어와 술집에 들어갔다. 

여행사 사장, 즉 건촉 씨의 보스라는 타포 씨가 우리를 환대했다.  

빈자리 없이 붐비는 바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튀긴 모모(만두)와 탄두리를 안주로 술을 마셨다. 

타포 씨는 럼, 건촉 씨는 8도 짜리 사과 맥주, 우리는 8도짜리 갓파더 스트롱 맥주였다.  


술집의 어수선함은 어디나 같다. 

그 어수선함 속에 몸을 피신하러 온 손님들의 표정도 어디나 같다. 

안온한 표정의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숨을 뱉었다. 

술집 안의 공기는 낮게 깔리는 대화 소리로 가득했다. 

우리 테이블 외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는 없었다. 그게 위안이 됐다. 




*트레킹 때 챙겨가면 좋을 것


-등산화 외의 신발 (숙소에서 수시로 등산화 신고 벗고 하는 건 매우 성가심)

-줄 있는 멀티탭 (배터리 등 충전할 게 많다면)

-물 티슈 

-수건 

-그리고 긴 밤을 견딜 유흥거리 (아름답고 조용하지만, 밤은 너무 김... 친구가 다운받아 온 팟캐스트가 없었다면, 아니 친구가 없어서 대화조차 못했다면 밤은 더 길었을 듯)


*트레킹을 함께 했던 가이드 건촉 타르친은 우리 일행이 귀국한 후 얼마 뒤 자신의 에이전시를 차렸다고 합니다. 한국어는 하지 못하지만, 매우 친절한 영어를 쓰는 가이드이고, 수많은 문화적 종교적 설명이 가능한 가이드니 혹시나 해서 이메일을 남겨놓습니다. 

konchoktharchin0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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