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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Oct 23. 2020

다른 사람들 인생은 그렇게 훅훅 변하는데

친구와 수다를 떤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없는 오후, 산책을 간 회사 뒤 공원에서.


십 년 넘게 같이 회사 생활을 한 친구에겐 딱히 숨길 얘기가 없다.

알아야 할 얘기들과, 알면 좋을 얘기들이 두서없이 나온다.

모두가 아는 얘기와, 많은 사람이 알면 좋을 거 없는 얘기도 자연스럽게 섞인다.

"어머어머"와 "아~그거?" 같은 추임새나,

말의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자연스러운 침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던 중, 친구가 오래전에 연락이 끊겼던 다른 친구(회사와 관계없는)에 대한 얘기를 한다.

우연한 계기로 10여 년 만에 다시 연락이 닿은 그 친구는,

푸릇푸릇한 대학 시절 연애를 하던 상대와 결혼을 했고 지금은 네 아이의 엄마라고 했다.

"쌍둥이를 낳고, 또 쌍둥이를 낳았대."라고 신기해하던 친구는 뒤이어 이런 말을 한다.


"신기해. 다른 사람들 인생은 그렇게 훅훅 변하는데, 왜 우리는 안 변할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합친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봐온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하니 새삼 공감이 된다.

둘이 입사한 20대 때와 지금의 모습이 크게 다른 거 같지 않은데,

시간은 참 성실하게 흘러버렸다.


우리가 알던 철없던 사람들은,

새로운 전개 같은 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듯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여전히 천진하고 여전히 만만하지만, 어른스러운 말투와 옷차림을 습득한 그들을

한 걸음 뒤에서 보면 왠지 나만 자라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혹시 난, 낯섦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을 모른 척 지나친 건 아닐까.


뭔가를 욕망하며 덧붙여가야 할 인생을, 나 스스로 이 모양으로 유지한 건 아닐까.  



친구와 나는 서로의 머리에 난 흰머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처음 둘이 만났을 때를 기준으로 하면 꽤 격한 변화겠지만,

우리에겐 '아주 가끔 눈에 뜨이는 무엇'일뿐이다.

종종 만나는 사이라면 호들갑스럽게 당부라도 하겠지만,

매일 같은 사무실로 출근하는 우리는,

'알아서 잘 관리하라'는 식의 대수롭지 않은 표정만 지을 뿐이다.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공원을 산책하는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큰 아이는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있고, 작은 아이는 유모차에 앉아 있다.

큰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가면서도 뒤에 있는 엄마 쪽을 계속 돌아본다.

작은 아이는 풍경을 두리번거리다가도 어느 순간 엄마를 올려다본다.

두 아이에게 엄마는 기준점이다.


엄마 쪽으로 회전하던 큰 아이의 자전거가 넘어진다.


보호대는커녕 신발도 신지 않은 아이가 옆으로 고꾸라진다.

지켜보던 내가 '어!'라고 소리칠 정도로 크게.  

아이는 얼굴을 구기며 울음을 터뜨리려 한다.


그런데 엄마는 뛰어가지 않는다.

작은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그대로 쥔 채 천천히 다가간 여자는,

잠시 쭈그리고 앉아 큰 아이와 대화를 한다.  

거리가 있어서 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두어 번 울음소리를 내던 큰 아이는 가만히 엄마 말을 듣고 울음을 거둔다.

엄마가 일어나자 아이도 따라 일어나 다시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간다.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을 풍경을 지나쳐 사무실로 향하는 등 뒤로,

자전거 보조 바퀴가 구르는 소리와 재잘대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매일이 안온하다고 느낄 아이는 훅훅 자랄 것이다.

종종 넘어질 아이와 천천히 눈을 맞추는 엄마의 곁에서.


문득, 아까 아이의 엄마가 넘어진 아이에게 건넸을 말을 상상한다.

"엄마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어쩌면 이런 말을 먼저 했을지 모른다.


"놀랐어? 아무것도 아니야. 원래 인생은 그 모양이야."  


나 역시, 그 모양인 채로 다시 사무실 자리에 앉는다.

욕망이니 변화니 같은 건 다시 잊힌다.

오래 봐온 친구와의 이런 수다면 됐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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