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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Oct 06. 2020

그녀라는 이야기의 형태가 사라졌다

#장례식이 끝난 뒤

고모가 돌아가셨다.

우리에겐 추석날이었고, 그녀에겐 오래 앓아누운 마지막 날이었다.


영정사진 속의 그녀는 환했다.

마지막으로 고모를 본 건 어느 봄날이었다.

휠체어를 트렁크에 싣고 나들이를 갈 때,

그녀는 보조석에 파묻히듯 앉아,

다시 못 만날 것들을 보듯 꽃과 하늘을 바라봤었다.

그날 시골 밥집에서 산 된장을 난 오래 두고 먹었다.


그녀는 목소리가 컸고 뭔가를 소개하기를 즐겨했다.

어느 명절 귀성길에 그녀의 차를 운전한 적이 있었다.

당부와 질문이 주를 이루는 대화 끝에 그녀는 잠이 들었었다.

잠이 든 얼굴은 깨어 있을 때보다 고단해 보였다.

잡동사니로 어질러진 뒷좌석은 보지 않으려 해도 계속 눈에 들어왔다.



늦은 밤 장례식장,

신산했던 그녀의 과거 몇 장면이 복기된다.

대화의 끝은 죄다, 열심히 살았지, 다.

그녀의 큰 웃음소리가 환청으로 떠올랐다 멀어진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무슨 장면을 버리고 싶었을까.

삶의 비탈마다, 그녀는 누구의 이름을 손에 쥐고 있었을까.


어두운 로비의 소파에 앉아,

그녀가 경험하지 않았을 쾌락에 대해 생각했다.



추모공원에서 화장의 순서를 기다리며, 운구차에 적힌 이름 세 자를 본다.

그녀는 언제 주인공이 되어보았는지...

어느 시절의 영화를 기억하며 미소지었을지...


이제 그녀의 시간에 그녀가 없다.


그녀라는 이야기의 형태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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