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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Nov 19. 2020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알지. 다들 그 선배 때문에 힘들어하고.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해달라는 건 해주지도 않고 말이야. 


며칠 전의 술자리. 누군가에 대한 평이 오간다.


이야기의 대상이 된 선배는

단순히 업무 스타일이 독특하다고 하기엔, 

겪는 이들의 '타격감'이 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불만과 뒷말이 많았고

자연히 그의 친교의 범위는 한정돼 있었다. 


술자리에서 말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선배는, 

그 선배와 친하게 지내는 몇 안 되는 회사 사람이다. 

다음 주와 그 선배와 술 약속을 잡았다는 얘기를 하던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미워할 필요가 뭐 있어.



나 징계받았을 때 울었던 거 기억나? 


며칠 전의 산책. 친구가 몇 년 전의 일을 이야기한다. 


통상의 업무 흐름에서 어긋난 게 없었는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실수로 받은 징계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원인을 찾아야 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그 꼭짓점에 친구가 있었고 그는 징계위원회에 들어갔다. 

징계의 수위는 낮았지만, 징계의 과정은 명시적이어야 했다. 

위원회가 열린 회의실의 한가운데 의자에 앉아 그는 억울해했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오래전 일을 꺼낸 친구는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땐 울고불고 난리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몰라.

지나고 나니 별 거 아니었는데. 



회사 생활이라는 게 그랬다.

닥쳤을 땐 우리는 종종거리게 만들고 심란하게 하는 것들 천지이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의 영역에 있는 사람이고 일이었다.

 

나였더래도, 너였더래도, 누구였더래도 

행동과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일들.

뭐?!라고 반문했다가, 뭐~로 반응하며 마무리하는

통상적인 사람들이 벌이는 일상적인 사건들.


우리는 쉽게 흔들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흔들림은 멈춘다. 

그 단순한 항상성. 

오래 회사를 다니면서 그 사실에 늘 고마워했다. 



술잔을 비웠다. 

가게 안에는 카펜터스에 이어 들국화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두 노래가 묘하게 이어진다는 느낌 속에서 취기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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