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이푸르
11월 18일 (화) 21일째 / 우다이푸르
사람들이 즐기려는 건, 감당 가능한 호사야.
돈을 주고 평소에 별로 갖지 못했던 우월감을 잠시 빌리는 거라고.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말이지. 여행도 그런 거야.
아침에 샤워를 하다가 문득 네팔리 아티스트, 란 단어가 기억났어.
넌 왕궁을 구경하던 중이었고, 수첩을 꺼내 창틀의 문양을 따라 그리고 있었지. 하도 우스운 실력이라 스스로에게 실소를 날리면서 그렸다고 기억해. 그런데 그때 잘 차려입은 부자(父子)가 너를 스쳐 지나가다 너를 유심히 봤지. 특히 5-6살로 보이는 아들이. 뒤에서 너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을 계속 인지하고 있었지만 말을 걸기에도 받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라 넌 창틀과 수첩만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어. 둘은 힌디어로 몇 마디 대화를 했어. 아마 저 사람은 뭐 하는 거예요, 같은 질문이었겠지만 당연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 그런데 몇 마디가 오간 후, 니 귀에 뚜렷이 영어 단어 하나가 들렸어.
네팔리 아티스트.
아버지가 그 말을 하고는 아들 손을 잡고 다시 관람로를 향해 갔지. 너는 뒤늦게 그 둘의 뒷모습을 봤어. 잘 다려 입은 셔츠를 면바지 안에 깔끔하게 집어넣은 아버지와 체크무늬 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어린 아들. 권위와 애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꼭 잡은 두 손. 아들은 너를 몇 번인가 돌아봤을 거야. 인도 아이 특유의 큰 눈망울에 호기심을 가득 내보인 채.
처음엔, 그냥 웃었던 것 같아. 몇 주간 여행을 다녔더니 관광객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얼마 뒤, 이 얘기를 인도 사람에게 한 적이 있었어. 그 사람은 살짝 웃고는 배경 설명을 해주었지. 요는 이거야.
1) 네팔에는 한국이나 일본 사람처럼 생긴 소수민족이 있다.
2) 인도 사람들은 네팔을 못 사는 나라라고 무시한다.
3) 아마 그 남자는 널 네팔에서 온 가난한 예술가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햇빛에 바랜 통 넓은 바지, 버리려고 가지고 왔다가 바느질로 꿰맨 낡은 대학 티셔츠, 잘 깎지 않은 수염... 그때 넌 그게 인도 여행자의 간지라고 생각했지. 남루함을 차림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사색의 흔적을 표정으로 나타내는 것. 그게 니가 동경해왔던 장기 여행자의 이미지였어. 그 정도 로망은 당연했던 거야. 고작 23살이었으니까. 아마 아들의 호기심을 접한 아버지는 빠르게 너를 관찰했겠지. 그리고는 제대로 차려입지도 씻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는 네 차림을 보고 판단을 했지 싶어. 네팔에서 온 아티스트,라고 말이야.
이 빠른 판단은
그가 해왔던 경험을 기준에서 비롯됐을 거야.
그의 입장에선 확신이었을 거야. 이 말을 한 후 아버지는 굳이 그 단어를 니가 알아듣도록 영어로 크게 말하고 자리를 떴지.(이것도 하나의 시험 같은 것일 수도 있겠네. 진짜 네팔에서 온 미술가라면 영어를 모를 수도 있을 테고, 네팔 사람이 아닌 관광객이라면 그 정도 단어는 알아듣고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테니)
그의 선의는 잘 알 것 같아. 모처럼 시간을 내서 아들에게 왕궁을 보여주려고 온 아버지. 아들이 선조들의 화려한 역사를 몸소 느끼게 해주고 싶은 부성애. 이런 상상을 해. 만약에 니가 줄무늬 옥스퍼드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를 잘 다려 입고, 공들여 수염을 깎은 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면, 어쩌면 그 아버지는 너에게 말을 걸어보지 않았을까? 아들의 눈을 사로잡은 한 사람이, 자신이 판단하기에 아들의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테니 말이야. 하지만 넌 허름한 입성의 누군가일 뿐이었고, 그는 빠르게 판단하고 다른 걸 보러 갔어.
살면서,
누군가들에 대한 판단은 피할 수 없어.
그 사람이 너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가 기준일 수도 있고, 편하게 대화를 할 사람인지 아닌지, 가 기준이 될 수도 있지. 속한 모든 조직, 걷는 모든 길 위에서 너는 수없이 타인을 만나고 관계를 설정해야 하지.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나오면 그 빈도는 더 많아져. 모든 판단은 각각 다른 구체적 상황에서 행해지고, 그 상황마다 니가 처한 입장이 달라서, 판단의 기준을 일괄적으로 정할 순 없어. 그래도 이런 문제는 생각해봤으면 해.
사람에 대한 판단은
빠른 게 유리할까, 느린 게 유리할까
빠르게 판단할 경우, 인도에서 만난 아버지처럼 경험에 기반해 잘못된 판단을 할 위험성이 있지. 그 오류를 안고 일상의 다음 단계로 가는 거야. 당연히, 넘어간 그 단계에도 판단해야 할 사람들이 있어. 그러면 결국 사람들을 스쳐지나기만 할 수 있는 거야. 오류가 계속된 채로 혹은 오류인지 아닌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빠른 판단의 목표는 자기 이익이나 자기 철학의 공고함 정도가 되겠지. 판단의 기준은 자신의 경험치겠고. 당사자의 마음은 편할 거야. 중심에 '자기'가 있으니까. 자신에게 익숙한 과정을 거쳐, 본인에게 편한 결과를 도출하겠지. 하지만 빠른 판단으로 인해 사람은 '자기' 안에 갇히게 될 우려가 있어. 우리는 대개 죽을 때까지 불완전한 철학, 불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빠른 판단이 이어지다 보면 '확장 불가능한' 사람이 돼 버리는 거지.
사람을 느리게 판단한다고 오류가 없진 않을 거야. 오히려 오래 본 사람일수록 판단이 한쪽으로 치우친 채로 굳어질 수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시간을 두고 어떤 사람을 본다면,
그 사람과 말을 섞을 기회는 많을 거야.
남들은 신경 쓰지 않을 조그만 행동을 볼 기회도 있을 거고.
그런 것들이 니 안에 슬며시 쌓이면서 판단의 기준이 만들어질 거야.
빠르게 판단할 경우, 자기의 한정된 경험치만을 이용한다면, 시간을 두고 판단하는 경우엔 둘 모두의 경험치와 둘 사이 관계의 경험치까지 같이 활용할 수 있는 거야.
네팔리 아티스트, 로 불렸다고 해서 그때의 니가 훼손되지는 않았어. 여행 중에 일어난 인상적인 해프닝 정도겠지.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후, 니 앞에는 일상이라는 더 긴 여행이 시작될 거야. 그 여행은, 하나의 시점이 끝나면 하나의 시점이 다가오는 끝없는 여행이야. 그 여행길에서 만나는 누군가가 너를 잘못 판단할 때, 그리고 그 오판을 니가 알아차렸을 때, 당혹스러울 때가 있을 거야. 다소간에 너 스스로 훼손되는 느낌도 들 거고. 그건, 누군가에 대한 너의 오판에도 그대로 적용되겠지. 의도치 않게 니가 누군가를 훼손할 수 있다는 거야
타인과의 관계, 타인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겸손과 진지, 라는 낡은 해답이 싫다면,
적어도 판단의 속도 문제는 생각해 봐.
가뜩이나 인간이 인간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세상에서, 오류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