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라는 도피처에 출입금지

#속초

by 너무 다른 역할

12월 28일(일) 속초


부담. 외로움. 불안. 무기력.


차를 몰고 서울을 빠져나가며 이마 앞에 떠오는 단어들이었다.

(...)

내 순수를 깎아먹은 (다시 돌아가도 어쩔 수 없이 택했을) 멍청한 짓들을 되돌릴 수 있을까.

없는 셈 칠 수 있을까.

지금도 하고 있는... 욕정과 애정의 중간에 있는, 타락과 순정 사이에 있는, 멍청한 짓들...


다시... 순수해질 수 있을까?





기억들을 나무 밀대로 얇게 밀고 그걸 여러 장 겹쳐 일정한 간격으로 썰어.

그리고 그걸 해풍에 말려 봐. 팔팔 끓는 육수에 넣어 그 면을 삶고

그릇에 담고 고명을 얹은 다음에, 젓가락으로 한 번 크게 떠서 입에 넣는 거야.

그때 느껴지는 맛, 그게 늘 먹어오던 익숙한 맛이라면,

그걸, 너의 성향, 이라고 부를 수 있을 거야.


세상을 경험하고 해석하고 기억의 형태로 저장하는 방법은, 사람의 성향에 따라 제각각이야.

일기장에 적는 말들은 대개 실제로 느낀 것보다 1.5배 정도 과하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날 니가 적은 말들을 보고 있으니 너의 성향이 확실히 보여. 너는,


외부의 자극을 깊숙이 들이마시는 타입이야.

어떤 사건을 대면했을 때, 넌 그걸 너의 내면으로 일단 밀어 넣어. 그리고는 그걸 질문으로 규정짓고 나서 답을 찾으려 하지. 니 안에 있는 고작 몇 개의 함수를 이용해서 말이야. 심지어 넌 이런 작업을 할 때, 니 주위에 누가 있는지 잘 보지 않아. (안 보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서 수식을 쫓아 내려가 답을 적는 거지.


니가 '적어버리는' 답들은 주로, 자책 혹은 죄책감의 범주에 있어.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곰곰이 따져보면 전혀 자책할 일이 아닌데 말이지. 문제와 답을 모두 너한테로 귀속시켜버리는 거야. 그러면 넌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역설적이게도 자책함으로써 니 맘이 편해지는 거지. 그래서 함수에서 나온 답을 성급히 믿어버리는 거야.


넌 성급히 답을 내린 후에, 회피 전략을 택하곤 해.

자책을 쉽게 인정한 후에 그 상황 속으로 더 들어가는 대신에, 상황에서 황급히 벗어나버리는 거지. 상황 깊숙한 곳에서는 갈등을 피할 수 없고, 치고받는 진흙탕 싸움을 해야 해. 넌 그게 싫은 거야. 회피를 하면 일단 몸과 마음이 편하니까. 그럴 때 떠오르는 감정들이 부담. 외로움. 불안. 무기력. 같은 것들인 거야.


이런 감정들은 역설적으로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해. 그래서 넌 불가피하게 답을 생각해내야 하지. 니 안의 함수에 또 집어넣는 거야. 그럴 때, 니가 주로 해결책으로 끌어오는 게, 순수, 야. 순수하다는 이미지를 생각할 때마다 연관 검색어 같이 떠오르는 시절들. 순수의 형태라고 니가 기억하고 있는 단편적 이미지와 말 들은 일종의 노스탤지어야.


그런데 말야...그때 넌 순수했을까

당장 지금의 혼란스러움을 달래기 위해서, 노스탤지어에 기대서 눈을 감고 숨을 고르기 위해서, 순수를 차용한 게 아닐까? 그 당시의 일기장을 들춰보면, 위에 적은 것들과 비슷한 단어들이 계속해서 나와. 넌 편의상 순수를 가정한 것뿐이야. 혼자서 기억의 성격을 규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결국 너의 순수는 도피처일 뿐이야. 어쩌면, 순수하다는 건 일종의 주입된 믿음일지도 몰라. 어렸을 때부터 투사된, 일종의 지향점이랄까. 너의 자아가 만들어지기 전에 던져진 기준 같은 거지.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인용한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시가 있어.


"첫사랑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당신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얼마나 맹목적인 일인지도 모르고."


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첫사랑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정체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다녔다는 얘기지. 순수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순수라는 말에 맞는 상황을 찾아 헤맨 것뿐이야.

이 날 일기에 넌 이런 말들도 적었어.


'어쩌면, 난 유사 순수함, 유사 아련함, 유사 애절함을 소비하고 싶었던 것을 아닐까. 밋밋하고 박탈감과 상실감이 가득한 모순적인 일상 속에서 그런 투명에 가까운 감정들에 대한 갈망이 생겼던 것은 아닐까. 그런 걸 다시 느끼다면, 지금 일상의 텁텁함이 조금은 해갈될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라고.'


우리는 순수라는 말의 절대성에 기대 살고 있는지 몰라. 하지만, 실상 우리의 일상에서 욕망, 이기심, 게으름, 고민 같은 걸 걷어내는 건 불가능하잖아. 일상적인 감정, 성향에 침잠되어 살면서 우리의 단점은 사라지지 않아. 더더욱이나 세상은 변하지 않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세상과 우리의 관계는 그저 그런 거야.



많은 것이 저희에게 의미를 남기고 갔습니다.

그중에서 저희가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상냥한 것과 섬세한 것입니다.

은밀한 정원, 졸음 밑으로 기어드는 비로드의 베개,

당황스러울 만큼 다정하게 저희를 사랑해 주는 그 무엇 등입니다.


-'많은 것이 저희에게', 릴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순수라는 투명한 허구가 아니라 상냥하고 섬세한 작은 것들일 거야. 쉬이 상처를 받는 우리가 지치지 않게 해주는 것들 말이야. 때론 구질구질하고 때론 공포스럽고 때론 의미 없어 미칠 것 같은 일상을 견디게 하는 건, 일상의 틈새에 포진되어 있는,


사소한 지침들, 온기 있는 거점들,
그리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일 거야.

바닷물이 모래를 늘 재조합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듯, 우리는 이 사소함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면서 시간을 견딜 수 있어. 지침은 거창하지 않아야 해. 그래야, 일상의 힘에 짓눌렸을 때에도 따를 수 있어. 다리 쉼을 하는 거점들엔 온기가 있어야 잠시나마 모든 걸 잊고 멍하니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대화거리를 애써 생각해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만을 내뱉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대화를 나눌 사람들도 중요하지. 이런 것들은 순수보다 사이즈는 작아보지만, 실체가 있는 것들이야.


더 이상, 순수의 영역에 출입하지 않았으면 해.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건 한숨과 조급함 뿐이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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