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것의 파급력, 떠나온 자의 취약함

#카파도키아

by 너무 다른 역할

11월 18일(목) 카파도키아, Ishtar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잡스런 하루였다. 근데 스스로 선택한 번잡은 큰 에너지가 들지언정, 그로 인해 지치진 않는다.


-밤 10시도 안 된 도미토리. 누군가는 자고, 누군가는 씻고, 누군가는 옷을 갈아입고, 누군가는 영화를 본다.

난 음악을 들으며 이불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일기를 쓴다.


-업무 파일들은 잘 넘기고 왔으니 고민 끝. 진짜 놀기 시작하자. 진짜 맘을 놓아버리기.

-그냥 대충 해도 될 만해,라고 말하며 넘기기. 이번 여행 콘셉트는 여유



P1000191.JPG


입사 4년 차의 너는 '불편하게' 떠나왔어.

오래전부터 티켓팅을 하고 착착 준비되던 일정이었어.

여행이라고 불릴 만한 건 입사 4년 만에 처음이어서, 대학 때 배낭여행을 준비하는 설렘마저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회사 전체가 매달려야 하는 큰 프로젝트가 생겼고, 하필 니가 TFT에 갔던 거야. 그 팀의 일이 힘들진 않았어. 오히려 재밌기도 했지. 하지만, 문제는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거였어.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11월에 떠나기로 했던 너의 계획은, 팀 입장에서는 '굳이 이 바쁜 시기에'가 돼버린 거지. 이미 결제를 받았던 휴가계에 대해 설명할 때의 불편함, 이상한 곁눈질, 작업하던 서류들을 넘길 때의 불안함 같은 것들은 터키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툭툭 털어버릴 만한 정도는 아니었어. 그래서, 이때의 수첩을 보면, 거의 모든 페이지에 자기 최면이 적혀 있어.


"지치지 말 것. 그냥 쉴 것"

"쫓기지 말 것. 휴가 12일 동안은 12일에 고스란히 집중할 것"

"마음을 어지럽히는 주제에 대해서는, 번외자의 과감성으로 정리할 것"

"일상 사이클에서 일탈돼 있을 것. 일꾼이 아닌 모습으로." 등등


너의 자기 최면은 어느 정도 기능을 했어. 풍경을 가감 없이 감상했고, 두 개의 도시에서만 머물며 느린 속도의 여행을 했지. 하지만, 저 일기를 쓰고 나서 터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마음속의 불편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 넌 큰 맘먹고 떠나왔지만,


두고 온 것들, 로 인해 떠나온 여기에서 불편했던 거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휴가 동안 팀은 잘 돌아갔고, 니가 어설픈 엑셀 실력으로 만들었던 파일 하나로 누군가가 하루 정도 고생했다는 거 외에 업무에 차질은 없었어. 하지만 떠나온 너는 다들 정신없이 일을 할 때, 니 몫의 일을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떠나온 셈이라고 생각했어. 노동자의 권리, 같은 건 이런 상황에서 레토릭으로만 존재했지. 여행 내내 이런 불안감들이 들었어.


무책임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건 아닐까?
괜히 무리해서 휴가를 가서, 더 많은 걸 잃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할 때, 회사는 뒷배를 봐주는 무엇인 동시에,가 눈치를 봐야 하는 무엇이었던 거야. 휴가는 당연히 가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가는 7~8월이 아닌 때가 간다는 이유로 혼자 노는 것 같은 죄책감을 가졌던 거야. 이런 식으로 너의 휴가는 '정당한 개인의 권리'에서 '회사의 너그러운 시혜'로 탈바꿈되지. 웃긴 거야. 그 전환 과정에서 기능한 것들도 역시, 개인들이거든. 눈치 아닌 눈치를 주는 상사들과 동료들, 그리고 너 스스로 가진 미약한 노동 관념. 무책임하지도, 무리하지도 않은 휴가였음에도 불편한 휴가가 돼 버린 상황적 불합리성.


여행 내내, '두고 온 회사'가 '떠나 온 너'를 팽팽한 투명실로 종종 잡아당기고 던 거야. 뒤돌아서 그 실을 끊어버리는 게 얼마나 쉬운 것인지 그때의 넌 모르지. 너는 그만큼 취약. 니가 잘못된 게 아니야. 니가 속했던 모든 조직, 니가 받은 모든 교육, 니가 겪은 모든 문화적 경험에서는 그게 정상이야. 우리에게 개인은 '감내해야 하는 존재'였고, '후순위로 밀려도 되는 순번'이었던 거야. 너의 취약함은 이 사회에서는 합리적이야. 하지만, 합리적이라는 게 정당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아. 입사 4년 차인 너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너의 취약함에 안쓰러움을 넘어서, 화가 나. 겨우겨우 떠나온 터키 땅에서, 카파도키아의 장관을 보면서, 난생처음 먹어보는 항아리 케밥을 먹으면서,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을 가르며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한국에 두고 온 것들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게. 온전하게 그곳을 느껴야 할 너의 감성이, 두고 온 것의 파급력 안에 갇혀있다는 게 말이야. 그래서 말이야.


일시적으로, 무책임해졌으면 해.

떠나온 자의 취약함에는 일시적 무책임으로 대응하는 거야. 꼼수는 정수로 받듯이.

문화적으로 학습된 너의 성과 책임감은 쉽게 바꿀 수가 없어. 억지로 무시하다 보면 더 큰 심적 반발이 있을 거야. 그건 상황을 변화하는 쪽으로 동력이 되는 게 아니라, 너 스스로 괴로워하는 쪽으로만 작용할 거야.


것보다는, 일시적으로 책임감을 뮤트 했으면 해. 그곳에서 니가 아무리 노심초사해 봐야, 어차피 물리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어. 니 걱정대로, 니가 무책임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일도 없거니와, 낙인찍히더라도 그건

이렇게 일시적 무책임으로 학습을 하다 보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될 거야.


불안함을 느끼진 않았으면 해. 휴가는 온전하게 분리된 시간이어야 해. 여행이 온전하게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학습된 성실함은 아마 너의 마음속에 불안함을 스멀스멀 피워 올릴 거야. 그건 의식적으로 무시해야 해. 너는 너의 일터에 니 인생 전부를 의탁한 게 아니야. 당연히 그렇게 믿고 살아서도 안 돼. 회사는 너의 인생이 아니라, 너의 노동력을 임차하고 있을 뿐이야. 대가를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다, 가 너와 회사의 정상적인 관계인 거야. 한국에 돌아가서도 아마 '충성'과 '성실'을 원하는 다양한 상황에 처해질 거야. 그럴 때,


최대한 뻔뻔해져야 해.

너한테 그냥 뻔뻔해지라고 하면, 사람 좋은 척 웃기만 할 테니까, 세게 말하는 거야. 최대한, 니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뻔뻔해지고 이기적이 돼야 해. 니가 회사를 생각하는 만큼, 회사는 너를 생각하지 않아. 노동 계약 안에서 성실하고 빈틈없이 일을 하는 건 맞지만, 그 외에는 순한 양처럼 굴지 마. 누가 말도 안 되는 비아냥을 하면 그 앞에서 반박을 하고, 당연한 듯 서비스 노동을 요구하면 대가를 받아야 해. 물론 어렵겠지. 소통은 양 쪽이 해야 하는데, 회사는 그걸 잘 안 하려고 하니까. 그러니까 최대한.


P1000593.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두려움의 선예도 낮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