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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Feb 25. 2021

크고 아름다운 것들의 시절

#부고(訃告)에 부쳐

부고가 당도한다

부고를 맞는다

이름은 소리 없이 매달려있다


어릴 적부터 봐오던 그 얼굴은

몇 해 전 세상을 뜬 내 아비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했다

병상을 지키던 아내가 전해준 말이었다


두 사람이 청년일 때 찍은 사진 한 장을 기억한다

흑백사진 속의 둘은 명암을 공평하게 나눈 채 웃고 있었다

둘과 둘의 가족들은 구실 없는 안부를 나누며 세월을 보냈다


부고의 여백에

과거는 가지고 가는 게 아니라고 적고 싶어 진다

상실은 온전하지 않아 하나의 겹이 남을 것이라고


그럼에도 시절은 진다

슬프고 놀랍지 않은 방법으로

크고 아름다운 것들의 시절이 진다


떠나는 이름의 끝자락을 지그시 밟고 서 있자

몇 개의 색이 배어 나온다

하지만 스스로를 탐탁지 않아하는 색은 곧

꼬리를 내어주고 사라진다 사라져야 할 듯이


없어질 이름이 누리지 못한 것들은 말하지 않는다

누렸던 것들을 상상한다

그 예의를 굳이 차린다


시절을 난다는 건 고맙고도 쓸쓸한 일이다

나의 시절과 다른 이들의 시절이 똑같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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