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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r 07. 2021

동경보다는 반경

#운현궁에서

내 거짓말 왕궁의

아홉 겹 담장 안에

김치 속 속배기의

미나리처럼 들어 있는 나를


놋낱같은 봄 햇볕 쏟아져 나려

육도 삼략 (六韜 三略)으로

그 담장 반남아 헐어


-詩 '봄볕' 중, 서정주 (미당 시선집)





걸으면 내가 멈춰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말이 많아지면 내가 주저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듯이.


흐린 날, 골목길을 택해 운현궁으로 걸어간다.



절차를 거쳐 마당으로 들어선다.

요즈음의 복잡한 심사를 뚝 떼어내 대문 밖에 두고 오고 싶지만,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주렁주렁 달고 걸음을 옮긴다.


봄 잎이 나지 않은 나무가 눈에 한가득 들어온다.

땅 밑에 퍼져있을 나무의 온전한 부분을 같이 상상한다.


어쩌면,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욕심들에도 숨겨진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걸 동경(憧憬)이라 부르기로 한다.



검색해보니, 동경(憧憬)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함

2. 마음이 스스로 들떠서 안정되지 아니함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들뜬 마음은,

얼핏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정반대일 수도 있겠다 싶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건 자신의 내면의 평화를 위해서일 텐데,

그러는 와중에 마음이 들떠서 안정되지 못한다.


욕심을 반복하면서도 닥치면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늘 그랬다. 늘 그렇다.



고요한 건물 사이를 걸어 다닌다.

하나의 문은 자신이 감당할 만큼의 공간을 품고 있다.

문으로 인해, 문의 안과 밖은 평화롭게 나뉠 수 있다.


문의 반경(徑)은 다른 문의 것을 침범하지 않는다.


하나의 반경을 조용히 구경하고,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문과 문 사이는 잘 쓸려 있다.



각도를 가진 빛이 창을 넘고 있다.

빛은 당도할 수 있는 곳까지만 들어간다.

문처럼, 그 역시 자신의 영역을 지킨다.



건물의 뒤편을 걷는다.

눈에 담기는 모든 직선이 정갈하다.


휴대폰 진동이 울린 듯해서 확인해보지만 전화도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내가 나의  영역을 늘리려 너저분하게 끌고 다니는 것들은,

과연 날 설명할 수 있을까.


칠칠치 못한 기분으로 휴대폰을 만지다가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버린다.



빈 궁(宮)을 돌아다니며,

이곳에 사람의 발길이 가득했던 때를 굳이 상상하지 않는다.


그 시절, 사람마다 욕망을 내보였을 것이고,

좌절된 욕망과 실현된 욕망이 난잡하게 뒤엉킨 이곳에는

푸석푸석한 조바심이 널려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지금 모두 사라졌기에 빈 궁을 즐길 수 있다.

내 내면의 공간에도 비슷한 일은 가능할 것이다.



정원 어느 구석, 곧지 않은 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나무는 옆에 대비시켜둔 대나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누군가가 쉽게 칭송했을 대나무의 직선이나, 겨우내 유지했을 녹색의 이파리 따위는,

굳이 상관하지 않는 듯 보인다.


대나무를 동경했다면 나무는 구부러지며 자라는 자신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나무는 네 갈래 갈라져 스스로의 방향을 찾는 줄기들에 집중했다.

줄기가 굵어지면서 나무의 밑동은 자연스럽게 땅과 더 밀착했을 것이고,

그렇게 하나의 반경이 완성됐을 것이다.



처음 들어왔던 마당으로 다시 나선다.

자판기 옆 쉼터에 몇 명의 관광객이 다리 쉼을 하고 있다.


흐린 날이지만, 변덕스럽지 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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