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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r 31. 2021

골목의 봄꽃들

#봄, 혜화동

뜰이 고요하다 

꽃이 피는 동안은 


-詩 '꽃이 핀다' 중, 문태준 시집 [가재미]





오전 내 집에서 비를 긋다가, 잠시 비가 그칠 때 산책을 나선다. 


주차장에 있는 차에 갖다 놓을 것들과, 서점에 팔 책 몇 권을 챙긴다.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좋은데 굳이 밖으로 나갈 이유를 몇 개 만들었다. 

혼자 있다 보니 내내 한가로운 게 어색했는지도 모른다.


대문을 나서기 전, 아랫집에서 심어놓은 대파에 눈길을 준다. 

봄비를 맞은 파는, 봄과 관계가 없지만 영락없는 봄의 것으로 보인다. 



주말 혜화동, 사람이 적은 골목으로 방향을 잡는다. 

평소 봐오던 꽃나무들을 머릿속에 점찍고 걸어가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벚꽃나무를 만난다. 


카메라를 들고 성큼 들어서는 나를, 

주차장을 관리하던 아저씨가 슬쩍 보고 관리실로 들어간다. 

나에게처럼, 그에게도 이 한 그루는 봄일 것이다. 



반투명한 벚꽃잎 너머로 다른 꽃잎이 이어진다.

하루 비를 맞았어도 수다스럽게 만개한 꽃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얼마 뒤 봄바람이 세게 불면 이른 한 해를 마감할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열심히 봄을 맞은 나무는, 

자신이 피운 꽃잎들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목련은 올해도 제멋대로다. 


봄이 왔다 싶으면 모든 잎을 틔우고, 자신이 만든 장관을 빠르게 마무리한다.

떨어진 꽃잎은 사람들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금세 거멓게 변해버린다. 

멀리서 온 봄을 심드렁하게 맞고, 덤덤한 표정으로 자기 할 일을 해버린달까. 


그렇게 봄의 목련은, 미련이 없어 보인다. 

늘 그랬다. 



그럼에도, 가지의 끝에 달린 풍성한 목련 잎을 보는 건 늘 만족스럽다. 

다른 꽃잎보다 유난히 물기가 많아 보이는 목련꽃은 

어떻게 보관해도 다른 공간으로 사라질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꽃이 피었을 때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닫힌 대문 안은 고요하다. 

잎은 봄을 품고 떨어져 편안하게 남은 날을 즐기고 있다. 

한가득한 봄은 곧 땅으로 스밀 것이다. 


풍경에 눈을 두고, 다시 거두는 것이 즐거운 날이다. 



멀리서 꽃을 보고 어느 골목으로 들어간다. 

평소 골목 입구에 있는 '막힌 길'이란 표지판을 보고 들어선 적이 없던 골목이다. 


담 너머로 꽃나무가 삐죽하다. 

담이 먼저 세워졌는지 나무가 먼저 심겼는지 모르지만, 둘은 같은 계절을 맞는다.



멀리서 본 골목 끝집의 큰 나무들 쪽으로 간다. 

담장 아래에 서서 고개를 드니 시야 가득 꽃이다. 

나무, 잎, 꽃, 하늘의 색이 겹겹이 쌓여도 과하다는 느낌은 없다. 

모든 색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서로를 살리고 있다. 


한참을 감상하다가 카메라를 든다. 

어떻게 찍어도 색이 다 담기지 않는다. 

그래도 좋다, 싶다. 


어느 노래인지도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며 골목을 나선다. 



건물 옆 작은 땅에도 봄꽃은 가득이다. 

누군가는 골목에 꽃나무를 심어놓았다. 


이 봄이건 다른 해의 봄이건, 

꽃나무를 심은 사람도 조용히 이 골목을 즐기러 올 것이다. 



곳곳의 개나리를 징검다리 삼아 골목을 천천히 걷는다. 


오래전, 고등학교에서 집으로 오던 길을 떠올린다. 

교문을 나서면 학교 바로 옆 둑방에도, 학교 담장에도 온통 개나리였다. 

그때는 이 친절한 봄의 노란색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도 될 만한 나이였다. 

지금도 그 봄의 길은 여전할 것이고, 봄보다 화사한 아이들이 걸어 다닐 것이다. 


지금처럼 카메라나 휴대폰이 흔했다면 

그 시절은 더 선명하게 남았을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기억에 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싶다. 



어느 오래된 집의 라일락을 지나친다. 

몸통도 얇은 작은 나무지만 꽃은 나무랄 데 없다. 

향은 아직 어질어질하지 않다. 

비가 그친 며칠 뒤에 다시 오기로 한다. 



봄나무들은 풍경을 들뜨게 하는 동시에 고요하게 한다. 

어쩌면 봄, 자체도 그렇지 싶다. 


겨울과 봄의 경계인 어느 온도를 넘어서는 순간, 

그러니까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몸으로 새로운 계절을 감지하는 어느 시점에,

우리는 가벼워지는 동시에 차분해진다. 



새롭게 맞이할 것들을 상상하는 동시에, 

옆에 두고 보던 것들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 


바뀐 풍경 아래에서 만날 사람을 떠올리면서도, 

두고 온 풍경과 어울리는 누군가를 놓지 못한다. 


온통 들뜨고 온통 묵묵해진다. 

봄꽃이 피어있는 동안엔 그래도 된다. 



그렇게, 봄을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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