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현재로서의 라일락

#봄 한가운데의 골목에서

by 너무 다른 역할

핀란드어에는 미래 시제가 없어요. 영어나 독일어로는 ‘이 일 또는 저 일을 할 거야’ 혹은 ‘그 일을 했어야 하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반면, 핀란드인은 ‘미래를 그때그때 다르게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라고 말할 겁니다.


하거나 또는 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中, 마이클 부스




출근길, 골목에 있는 낡은 집 앞에 멈춰 선다.


이 집의 좁은 마당엔 매화, 벚꽃, 목련, 라일락 나무가 모두 있다.

15년 동안 이 동네를 돌아다닌 결과, 이 나무가 모두 있는 집은 이 집뿐이다.

올해는 과도하게 가지치기를 해서 벚꽃이며 목련이 풍성하지 못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같은 골목을 오가기는 하지만 이 집의 입장에선 하나의 객일 뿐일 테니까.

하다못해 그 오랜 기간 이 집의 누군가와 마주친 일도 없다.


라일락 나무도 가지를 꽤 정리했다.

여유롭게 공간을 채우며 달린 꽃송이들은, 다행히 어김없다.



봄꽃 중 라일락은 유독,

피거나 피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듯하다.


조만간 필 거라는 징후도 없고, 필 듯 말듯한 긴장감도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에 띄지 않던 꽃송이들은,

어느 아침에 아무 일 없다는 듯 펴버린다.


어김없이 라일락이 피면, 어김없이 봄의 중간에 있다.

매화가, 벚꽃이, 목련이 져버린 후에 핀 라일락은,

마치 우리에게 '봄은 아무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는 듯하다. 믿을 만한 풍경이다.



라일락은 혼자 피지 않는다.

활짝 핀 라일락 한 그루를 골목의 어디에서 보면, 온 골목의 라일락이 다 펴 있다.

나무가 인간의 행정구역 따위를 알 리가 없겠지만,

이상하게 동네마다 라일락이 한 패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 이유로, 라일락을 즐길 땐 부지런해야 한다.

한 동네를 구석구석 걸으면서 이 구역의 라일락을 죄다 즐기겠다는 듯 욕심을 부려야 한다.



사람들이 라일락을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히 꽃향 때문이겠지만,

라일락을 이곳저곳 편하게 심어놓은 이유는 무난함 때문일 수도 있다.

라일락은 낡은 플라스틱 화분에서도, 화단의 좁은 틈에서도 잘 자라서, 같은 꽃을 피운다.



그래서 라일락이 스며든 풍경은,

향과 색의 화사함에도 불구하고 무난하다.


덕분에 우리는 평범한 골목의 봄을 무난하게 즐길 수 있다.

코로나로, 선거로 이리저리 어지러워진 마음을 골목 어디에 잠깐 버려둔 채.



라일락의 꽃잎이 말라갈 즈음, 봄은 어김없이 절정을 끝내고,

자신의 부피를 잃은 꽃잎들이 땅으로 떨어지면, 바람은 어김없이 여름의 처음을 끌고 올 것이다.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봄도 새로운 봄이고,

곧 라일락의 초록색 이파리 위로 쏟아질 여름도 새로운 여름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늘 현재의 계절을 살고 있으니까.



길가에 핀 라일락을 지나며 슬쩍 주위를 살펴본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잠시 마스크를 내린다.

코로 심호흡을 하자 진한 향이 가득 들어온다.


손색이 없다.

지극히, 현재로서의 라일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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