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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pr 19. 2021

하 선생님

하 선생님은 아버지의 친구였다. 


이 문장에는 하나의 부연과 하나의 수정이 필요하다. 

하 선생님은 '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였고,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의 생일과 기일을 꼬박 챙기셨기에 '친구였다'기보다는 '친구이다'가 맞다. 



"하 선생님이 운전을 못하시잖아."


아버지의 3년 기일을 치른 다음 날, 엄마가 하 선생님의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그가 아버지의 무덤을 보고 싶어 한다는 얘기였다. 장례식장에서 엄마와 나의 손을 번갈아 잡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섧게 울었고 어릴 적부터 귀에 익은 목소리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때 그의 손은 따뜻했던가 서늘했던가, 굳어있었던가 떨리고 있었던가. 


엄마는 한 번 모시고 가얄 텐데,라고 넌지시 말했다. 다음 날 오전에 성묘를 가기로 했기에, 하 선생님이 계시는 청주에 들러서 모시고 가자고 나는 제안했다. 엄마는 문자를 보냈고 답장은 바로 왔다. 



약속한 시간,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하 선생님은 많이 구부정해져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의 나이는 일흔일곱이었다. 아버지가 일흔넷에 돌아가셨기에, 나의 시간 개념이 일흔넷에 있을 뿐이었다. 검은색 모자를 쓰고 베이지색 홑 점퍼를 입은 하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선산으로 가는 40여 분 동안 하 선생님은 말이 거의 없었다. 


엄마가 몇 번 일상적인 질문, 예를 들어 손녀분들이 몇 명이었지요?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뒷자리에 앉은 그는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룸미러로 잠깐잠깐 살펴본 그의 반달 모양의 눈에는 침착한 회상 같은 게 떠 있었다. 묘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하 선생님이 한 말은 "저게 새로 짓는 흥덕구청이에요." 한 마디뿐이었다. (성묘 후 다시 청주로 와 하 선생님의 사모님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그가 1년 전 뇌수술을 했고, 그 이후에 보청기를 껴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서 그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디 쪽이야?" 


선산에 도착하자 하 선생님은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엄마와 내가 아버지의 비석을 가리키며 안내하자 그는 빠르게 그쪽으로 갔다. 60년이 넘은 친구의 무덤 앞에 선 그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엄마의 말로는, 3년 동안 와보고 싶었는데 못 왔던 곳이었다. 음절을 지정할 수 없는 낮은 음정의 소리가 하 선생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의 눈은 이제 세상에 없는 아버지의 봉분에 고정돼 있었다. 두 번 절을 한 후 하 선생님은 봉분의 떼가 왜 성긴지 물었고 엄마는 며칠 전 봉분의 높이를 높였다고 답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 모셨지?"라고 묻는 그를, 아버지의 자리 바로 뒤로 안내했다. 하 선생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합장한 묘소에 절을 하고 비석의 뒤에 쓰여 있는 이름들을 찬찬히 읽었다. 아버지의 어릴 적 친구인 그는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고모를 모두 알고 있었고,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대며 엄마에게 근황을 물었다.


 그때 그의 눈에 스쳐간 풍경을 나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내가 모르던, 아버지의 소년과 청년 시절을 그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울 뿐이었다. 



다시 아버지의 묘소 앞으로 온 그와 엄마는 한참 동안 대화를 했다. 


내가 모르던 또 다른 아버지의 친구들 이름이 몇 오갔다. 젊은 시절 부부 동반으로 자주 모였었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누구는 세상을 떠나고 누구는 남아있었다, 는 문장의 뒤를, 누구는 오래 앓았고 누구는 급작스러웠다, 는 문장이 이었다. 



볕이 좋은 오전이었다. 


여름에게 아직 자리를 내주지 않은 봄의 기온은 산속에서 더욱 청량해져 있었다. 무덤가에 핀 들꽃 한 송이 옆에 서서 난 3년 전 세상을 떠난 절친을 찾아온 친구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은 한 시간 전 차에 탈 때보다 편해 보였다. 그는 궁금했을 것이다. 이르게 떠난 친구가 잠든 곳은 어떠한지, 그 자리에서 본 하늘은 어떤 색일지. 두 사람의 대화가 잦아들어 새소리가 크게 들릴 즈음, 하 선생님은 '이제 가자'라고 말하고 성큼성큼 차로 향했다.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하 선생님의 꿈에 아버지가 많이 찾아온다는 얘기를, 엄마는 몇 번 나에게 했었다. 본인한테는 거의 안 오면서 왜 친구 꿈에 자주 나타날까, 하는 푸념 아닌 푸념을 하면서. 



청주로 돌아가는 길, 올 때와 마찬가지로 하 선생님은 창밖의 풍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60여 년을 함께 했고, 언제 헤어질지 상상도 못 했던 친구를 떠나보낸 후 하 선생님이 혼자 한 3년의 세월은 부서진 세월이었을까 아니었을까. 말수가 적은 그의 눈에서 답을 읽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다만 두 가지는 확실했다. 


돌아오는 차 안의 공기가 더없이 차분했다는 사실과 세 사람은 모두 같은 풍경을 담고 돌아간다는 사실. 누군가 떠난 봄날, 매년 찾아올 그 봄날에 그 정도면 되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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