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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ul 31. 2021

그동안 편하게 산 거 같아?

#점집에서

"어떻게, 그동안 편하게 산 거 같아?"


암자의 주인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렇게 물었다. 

40분 넘게 상담하고 나서도, 더 궁금한 게 없는지 몇 차례 물어본 후였다. 


그녀가 뿜은 연기가 흩어질 때까지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어떤 침음을 내긴 했다. 어어... 음... 같은. 



강남의 어느 골목에 있는 그곳을 찾아간 이유는 단순했다. 

혼자서 도돌이표처럼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팁이 필요했다. 


일종의 자기혐오 점검기간이었달까. 

내가 가진 희미한 것들에 윤곽선을 부여하고 싶고, 

요즈음 스스로의 생활을 납득할 문장 몇 개를 얻고 싶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자기애 점검기간이라 불러도 되겠다.)


여하튼, 그녀의 마지막 질문은, 이 기간에 참 어울리는 말이다 싶었다. 



'그동안 편하게 산 것 같으냐'는 물음은, 생각해보면 대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편하게 살았다 해도, 

딱히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정반대였다고 해도, 


어떻게 대답하든 그게 정답인 그런 질문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건 나였고, 지금 뒤돌아보고 싶은 사람도 나였으니까, 

내 입에서 나오는 건 오답일 수 없었다. 


한번 더 담배연기가 뿜어질 즈음에 피식 웃었다.   

그녀가 계도를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그녀의 질문엔 확실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에게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차가운 물에 샤워하고 산책을 하라고, 그거면 된다고. 


늘 떠날 듯이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지만, 

그러다가 못 이기는 척 머물고 싶은 바람도 동시에 있었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사는 스스로를 취약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쪽으로든 명쾌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그건, 내가 서 있는 곳이 아니라 반대쪽만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었겠다. 


몸은 이곳에 있는데 우리의 눈은 이곳이 아닌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까, 

지금 쥐고 있는 걸 놓지 않고도 다른 걸 쥘 수 있다는 착각을 안고 산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명쾌한 지침을 늘 갈구하는 게 아닐까. 

그게 스스로 틀에 갇혔다는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나며 정원에 잠시 눈이 머물렀다. 


서울의 한 복판, 그것도 1층에 상점이 있는 건물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작은 정원은 빼곡했다. 

여러 종의 풀과 관목이 심겨 있었고, 테두리를 빙 둘러 모양이 제각각인 화분이 여럿이었다. 


정원은 전체적으로 매끈한 느낌은 아니었다. 

어떤 목적을 위해 뭔가를 절제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식물들이 저마다의 풍성함을 잘 내보일 수 있도록 가꾼 느낌이었다. 


풀들에게서 눈을 다시 거두고 그곳을 나왔다. 

들어올 때 가지고 있던 질문 몇 개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다행히, 정답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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