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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un 02. 2021

익숙함을 경유한 낯섦

영화 「더 브레이브」(2010년)

더러는 뭐든지 징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세상이 점칠 때 쓰는 커피 잔 받침이라도 된다는 듯이 말이다.


-소설 「수잔 이펙트」中, 페터 회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죽 살고 있는 나에게, '광활한 서부'는 너무나 익숙하다.

'모래바람을 흩날리며 말을 타고 달리다가'

'모닥불 옆에서 담배를 말아 피며 오늘만 산다는 투의 농담을 하는 거친 백인 남자'는 더더욱.


하지만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영화는 그만큼 힘이 세고, 미국 서부극을 그만큼 자주 봐왔을 뿐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의 황량한 들판이 옆 동네인 양 착각해도,

일상의 고단함을 허세 가득한 남성성으로 극복하는 특정 인종과 성별의 누군가가

나의 전(前) 세대의 누구인 양 친근해도 어쩔 수 없다.



맷 데이먼과 코엔 형제, 스필버그의 이름을 보고 이 영화를 선택했을 때,

먼저 떠오른 것도 그런 익숙한 장면과 캐릭터 들이었다.


긴장감 있게 편집된 총싸움 장면과 호쾌한 질주 씬, 그리고 파괴와 복수로 이어지는 명확한 스토리 라인,

미국 개척시대라면, 서부의 추격자라면 응당 보여줘야 할 카타르시스.

하지만, 영화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14세 소녀 ‘매티’(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자신의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무법자 ‘톰 채니’(조쉬 브롤린)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젊은 시절 악명 높았던 연방보안관 ‘카그번’ (제프 브리지스)을 고용해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그러나 술주정뱅이 ‘카그번’은 그녀를 계속 실망시키고, 여기에 현상금을 노린 텍사스 특수경비대원 ‘라 뷔프’(맷 데이먼)까지 가세해 무법자 ‘톰 채니’를 잡기 위한 위험한 동행이 시작된다.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그들이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숨 막히는 추격전을 시작한다!」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57635)


간단히 정리하면,

아버지를 살해한 살인범을 쫒는 소녀와 그 소녀를 돕는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세 사람은, 기존 서부극 주인공들과 결이 다르다.

쉽게 말해서, 참 만만하다.


늙은 연방보안관 카그먼은 특유의 남성미를 앞세우지만 쭈글쭈글하다.

그가 날리는 허세 가득한 말들은 시간 때우기 용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그렇게 자신의 화려한 과거가 반박당해도 그는 굴하지 않는다.

자신이 고를 인생의 선택지는 이제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텍사스 레인저 라 뷔프는 수다스럽다.

그는 범죄자를 쫓고 있다는 대의명분과 어울리지 않는 이기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그 시절의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자질이라 해도,

늘 봐오던 서부극의 남자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그는 주인공답지 않게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어쩌다 보니 주(州) 경계를 넘어와 살인범을 쫓을 뿐이고, 어쩌다 보니 카그먼과 매티 일행을 만났을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뻔한 서부극과 달리 보이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여자 주인공인 14살 매티다.


그녀의 모든 조건은 서부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여성이고, 어리고, 육체적으로 뛰어나지 않고, 거친 세상에서의 경험도 없다.

특유의 영민함으로 돈을 마련해,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을 쫒고자 연방 보안관 카그먼을 고용하지만,

딱히 전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하나의 목표, 즉 살인범을 잡는다는 목표 빼고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것을 주도한다.


모두가 포기하라고 하는 추격의 시작도 그녀이고,

'경험 많은 어른들이 알아서 할 거'라는 말을 무시하 직접 길을 나서는 것도 그녀다.

두 남자 주인공 내세우려는, 부풀려진 남성성의 허상을 단칼에 무찌르는 것도 그녀다.


매티는 자신의 논리로 기존의 지배 논리를 압도하고,

여자, 그것도 어린 여자라는 불리한 처지를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매우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른의 세계를 경험한 적이 없는 열네 살 시골 소녀의 순진함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취약함을 전면에 내세워 자신의 절박함을 해결하려 한다.



영화는 익숙함을 경유한 낯섦을 보여준다.


이야기 측면에서, 주인공들은 평소에 하지 않았을 추격전(매티는 집을 떠나 살인범을 추격하고, 두 남자는 열네 살 소녀를 케어하면서도 지시를 받는)을 하게 되지만, 그 낯선 여정의 시작은 자신들의 과거 때문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기존 서부극의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익숙하지만,

주인공들은 전형적이지 않아 낯설다.



우리가 낯섦을 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지켜보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낯익은 무엇으로 변할 만한 매력이 보이면 지켜보고,

낯섦이 지나쳐 두려워지거나 매력이 보이지 않아 따분하면 외면한다.


그런 의미에서 낯섦을 이용하는 방법도 두 가지일 것이다.

지켜보게 하거나, 고개를 돌리도록 방치하거나.


이 영화는 영리하게도, 낯선 주인공들을 계속해서 바라보게 되는 매력을 유지한다.


어떻게든 독해 보이려 하지만 따뜻하기만 한 소녀,

거칠어 보이지만 거칠지 않은 늙은 보안관,

사람들을 경계하지만 미숙함이 들통나는 텍사스 레인저.


그들은 자신의 방어막 안으로 누군가를 들일 정도로 친절하고,

그런 이유로, 취약하고까지 할 만큼 인간적이다.


이 영화가 익숙함을 경유하며 만들어낸 '낯익은 낯섦'은, 당황스럽기보다는 매력적이다.



다시 미국 얘기를 하자면, 더 브레이브는 전형적인 미국 영화다.


인물들은 지극히 개별적이고, 목표지향적이다.

거기에 주인공들과 살인범 패거리들 모두,

황량한 벌판에서조차 판사와 변호사를 들먹일 정도로 규율 순응적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이런 게 미국적이라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긴...)


가장 미국적(혹은 미국 영화적)인 건, 가족에 대한 강조다.


복수극, 추격극, 활극임에도 가족은 전면에 드러나있다.

애초에 딸의 복수라는 설정이 그렇고, 카그먼이 계속해서 얘기하는 전부인과의 스토리 등이 그렇다.

거기에, 영화는 마지막에 그들이 며칠간의 여정으로 인해 일종의 가족 같은 공동체를 이루었음을,

그럼으로써 평생 안고 갈 그리움 혹은 애착이 생겼음을 보여준다.



* 전형적인 서부 영화를 기대해도 어느 정도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기대를 접고 본다면 더 재밌을 것이다.


* 죽고 죽이는 장면의 묘사는 온건하고 깔끔하다.


* 서부 시대라는 배경임에도 여전히 제프 브리지스는 제프 브리지스 같고, 맷 데이먼은 맷 데이먼스럽다.


* 영화 '어바웃 타임'의 남자 주인공 도널 글리슨을 보는 재미도 있다. 전형적인 영국 남자도 챙겨 입히고 오두막에 갖다 놓으니 꽤 서부와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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