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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y 04. 2021

서로에게 자신이 되어 준 두 사람

#영화 「더 스파이」

사냥용 지프에서 핏물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죽은 노루라도 실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안에 시체가 있다고 가정하고 시작한다. 그쪽이 안전하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中, 김영하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7958


개인에게 국가는 유용하다.


반대도 성립한다.

국가에게 개인은 유용하다.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냉전 시기에도 두 명제는 성립했다.

개인은 한 진영에 속한 국가 덕분에 안전하다고 느꼈고,

국가는 그 진영에 남기 위해 개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굳이 방점을 두자면 후자일 것이다.


자신이 곧 국가라고 믿었던 특정 세력들은,

개인(국민 혹은 인민)을 위한다는 신념 하에 개인을 이용했다.

그리고 악(惡)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그 시절, 모두가 그것을 용인했다.  


이 영화는 그러한 흐름에 맞선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소련의 고위간부였던 한 남자는,

자신의 지도자가 핵전쟁을 일으킬 거라 확신해 반기를 든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걸고 자유 진영의 스파이가 된다.


영국의 사업가였던 한 남자는,

미국과 영국 정부로부터 소련 스파이와의 연락책으로 활동하도록 요청받는다.

하지만, 그는 국가가 자신을 이용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국 정보부에서 '이제 그만 빠져도 된다'라고 말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활동을 계속한다.


그렇게, 두 사람 모두, 자신을 통제하려는 국가를 벗어나

스스로 믿는 대의를 쫓는다.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스파이 영화답게,

이 영화의 기본적 재미는 긴장감에서 온다.


소련 정부의 최고위층이면서 스파이로 활동하는 올레그 대령과,

민간인으로서 최소한의 정보만을 가진 채 그를 만나야 하는 기업인 그레빌.

두 사람의 스파이 활동 내내, 관객들은 보이지 않는 국가의 눈을 같이 피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최악을 가정하고 시작한다.


모스크바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KGB라고 생각할 것.

우리가 하는 대화는 모두가 듣는다고 가정할 것.

그것을 전제로 한 채, 두 사람은 평온한 표정으로 런던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무역 일'을 한다.



그러한 절박한 부담감 속에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첫 만남에서부터 그들은 서로의 아이에 대해 말하고 두 도시를 오가며 서로의 집에 방문해 식사를 한다.

소련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의 화장실에서 구토를 할 정도로 힘들어하던 그레빌은,

그러한 일련의 친밀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일을 견디게 된다.


소련 정부의 심장부에서 고군분투하는 올레그 대령 역시,

그레빌이 있음으로 인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핵무기 등 소련의 기밀을 빼낼 수 있다.



영화의 중반, 쿠바 미사일 사태 전후 기밀이 유출된 상황 속에서

소련의 정보국은 두 사람을 의심하게 된다.


자신의 숙소를 뒤진 흔적을 본 후 귀국한 그레빌에게, 영국 정보부는 이제 발을 빼라고 한다.

올레그 대령 가족을 어떻게 빼올 거냐고 묻는 그에게 정부 요원은,

할 수 있는 최대한 해보겠다고 무심히 말한다.

하지만 이미 올레그 대령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진 그레빌은 끈질기게 말한다.

그가 지금 위험에 처했고, 그걸 알려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음을.


그렇게, 그레빌은 영국 정부의 만류에도 마지막 모스크바 행을 택한다.

그는 올레그 대령에게 위기의 상황을 전하고 미국 정보부의 도움으로 망명하는 걸 돕기로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을 감시 중이던 소련 정보국은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두 사람을 쫓는다.


그들은 실패한다.



영화의 후반부, 소련의 수용소에 갇힌 그레빌은 스파이임을 인정하라고 종용받는다.


하지만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펜을 들어 서명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올레그 대령에게 파국이 올 것임을 알고 있다.


두 사람은 결국 수용소의 어느 방에서 만난다.

몰라보게 초췌해진 그들은,

자신들이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그로 인해 전 세계적인 핵전쟁을 막았음을 서로에게 말하며

마지막으로 손을 잡는다.



개인은 무력하다.

공권력 안에 있지 않은 개인은 더더욱 무력하다.


그러나, 개인은 또 다른 개인과 연결될 때 무력하지 않다.


이 영화는 시대적 비극 속에서 연결된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다른 나라, 다른 위치의 그들은, 서로에게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상황을 바꿀 수 있음을,

그 변화가 보다 나은 세상을 가져올 것임을 믿었다.


그리고, 계획이 실패한 최악의 상황 속에서

두 남자는, 서로에게 자신이 되어준다.



* 영화는 영리하다.

체포 후 소련 당국의 폭압은 폭압의 형태를 최대한 지운 채 나온다. 흔히 상상하는 극악한 고문이나 폭언은 등장하지 않는다. 또 다른 의미에서 미국과 영국 정부의 폭력도 지운다. 두 나라의 정보부는 주인공들을 최우선 과제로 행동하진 않지만 비정하게 버리지 않는다.


또한, 영화는 두 사람이 스파이 일로 인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들은 안다.

이 사실들이 두 개인의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를 보여줌에 있어서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걸.


 *영화의 원제는 The Courier다.

직업적인 여행이라는 뜻이다.


*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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