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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Mar 09. 2022

이력이 없는 것들의 매력

어떤 단어를 강조하기 위한 가장 뛰어난 방법은, 그것을 <영원히> 생략해 버리거나

쓸데없는 군더더기 은유, 또는 뻔히 드러나는 우회적인 언어에 호소하는 방법일 겁니다.


-「보르헤스 전집 2 - 픽션들」中,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글쎄... 이게 어디서 왔을까. 중국 걸까? 일본?"


두어 번의 물음에, 가게의 여주인은 이렇게 서두를 시작 했다.

장흥 어디쯤의 빈티지 숍이었고, 나는 그녀가 중고 앱에 올린 접시 등등을 사러 온 참이었다.

숍 내부는 오래되고 커다란 수입 오디오 기기로 가득 차 있었고,

그녀의 남편(매우 낮은 확률로 남편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은 짤막한 인사만 건네고 그중 하나를 수리하고 있었다.


내가 사려던 접시나 유리잔, 대접 같은 것들은

가게의 주력 상품인 빈티지 오디오 기기를 컨테이너째 수입하면서 딸려온 박스에 있던 것들이라고 했다.

그런 이유로 "이건 어느 나라에서 온 거예요?"라는 나의 질문에 "글쎄"부터 답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그녀가 덧붙였다.


"이게 다 짝이 안 맞아. 하나씩 오는 것들도 있고, 이상하게 세 개씩 들어있는 것들도 있고.

그래서 싸게 파는 거야. 봐봐, 이런 건 얼마나 좋아. 깨진 데도 없고."


그녀는 커다란 파이렉스 유리볼을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나한테 말을 했다.

그 유리볼은 그녀 말대로 애매하게 짝이 안 맞은 유리잔 여섯 개(두 개를 빼고 다 제각각의 모양이다)와 함께 만 원에 판다고 올렸던 거였다. 건네받은 유리볼은 무거웠지만 손에 빈틈없이 감겨서 마음에 들었다.  


글자라곤 찾아볼 수 없는 종이박스에 있던 2개의 사기그릇-그녀가 중국 건지 일본 건지 헷갈려하던-도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예뻤다. 결국 난 사려던 것들에 몇 개를 더 얹어서 사기로 했고, 그녀는 한 귀퉁이가 벌어진 캘리포니아 호두 박스에 하나하나 포장해서 담아주었다.



박스째 현관에 있던 것들을, 다음 날 새벽에 끌렀다.

우르르 개수대에 넣고 주방세제로 닦아내면서 만져보니, 가게 주인 말대로 흠 있는 곳은 없었다.

군데군데 묻어있던 먼지와 얼룩이 사라지니 물건들 고유의 디자인이 선명해졌다.


유리잔들은 바닥까지 수세미가 들어갈 정도로 적당한 크기여서 마음에 들었다.

기존에 있던 유리잔들보다 얇은 것들은 기존의 잔들 사이사이에 섞어놓았다.



원래 있던 코렐 접시와 같은 크기의 하얀 코렐 접시도 무리 없이 기존의 접시 틈으로 스며들었고,

그림이 예뻐서 샀던 조그만 접시들도 주방의 어느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쓰던 거였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

이력이 없는 이것들을 보면서 묘한 편안함을 느낀다.


뉴스를 보건 회사에서 업무를 하건, 하다 못해 술자리에서 어떤 얘기를 할 때에도,

어떤 상황의 전후(前後) 혹은 인과를 따지는 데에 익숙하다.

그렇게 하면 나를 둘러싼 것들의 구분선과 윤곽선은 뚜렷해지고,

어느 것을 내가 정한 경계 안에 넣을지 말지 판단하기도 쉬워진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명료해질수록 오히려 세상은 재미없어졌다.

구분이 많아질수록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사소한 누락으로 스스로를 괴롭힐(?) 때도 많다.

선이 많이 그어진 세상의 표면은, 가뭄에 드러난 강바닥처럼 갈라져있는 느낌이다.


이런 일상 속에서, 이력을 모르는 것들은 편하게 대할 수 있다.


어차피 내가 노력해도 이것들의 과거는 알 턱이 없고, 그런 이유로 나는 물건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물건의 소용(所用) 외에는 별다른 기준을 가질 필요가 없는 셈이라,

되는 대로 만지고, 손에 잡히는 대로 쓰면 된다.



그건, 어린 시절에 우리가 세상을 보던 방식과 비슷하다.

알거나 익숙한 것보다, 모르거나 낯선 것들의 비중이 높았던 어린 시절에는

어디를 가건 누구를 만나건 대놓고 감상할 수 있었다.

(감상하기에 급급했다, 가 맞는 표현일 수도...)


별다른 정보가 없었기에 어릴 적의 우리는 판단이나 계산보다 호기심을 앞세웠을 것이다.

새로운 것들은 새롭다는 이유로 빛이 나는데,

우리가 나이가 들고 알게 되는 정보가 많아지면서 그 빛들을 쫓아 보낸 건 아닐까.



새로 사 온 그릇과 유리잔은 주방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이력이 없는 것들의 매력이다.


며칠이 지나면 원래 있던 것들과 새로 들인 것들의 구분은 더 희미해질 것이다.

앞으로 하루하루, 뭔가를 담고 비우면서 이 물건들이 채워갈 이력은 온전히 내 것이다.

그거면 됐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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