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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05. 2022

야매 저탄고지

#적당히 먹고사는 법

의사한테 한소리 들었다.


술을 하... 조금 줄이시는 게 좋아요.


혈압약을 처방받으러 새로 간 동네 내과였다.

젊은 의사는 처음 온 나에게 기본적인 질문들을 했고 나는 성실히 대답했다.


흡연은 하세요?

아뇨

술은요?

주... 4회?

한 번에 얼마나 마시세요?

소주 2병이요

술을 하... 조금 줄이시는 게 좋아요.

네~


대답은 어렵지 않다. 실천은 어려울지라도.



그래도, 두 달 전부터 식단 조절 중이다.

탄수화물은 극단적으로 적게, 지방은 많이 먹는 저탄고지를 시작했다.

시작은 솔직히 뜬금없었다. 어느 날 아침에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흠... 저탄고지나 해볼까, 하고 아침식사부터 바꿨으니까.


사실, 이런 결정 뒤에는 친구 한 명의 지속적인 꼬임이 있었다.

키토제닉의 전도사를 자처할 정도로 철저히 자기 관리 중인 친구다.

부산에 사는 그는 종종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키토제닉 그러니까 저탄고지의 장점에 대해 설파했다.

외국의 연구결과와 자신의 신체변화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먼 나라 일처럼 대충 듣긴 했었는데,

내 몸은 위기를 느꼈는지 그 얘기를 나 몰래 기억해둔 듯하다.


여하튼, 거울에 대 혼잣말을 한 그날 이후로,

빵과 과자, 라면과 아이스크림은 일절 금지했다.

고기와 샐러드를 매일 식단에 채우고, 버터와 치즈와 친해졌다.

올리브 오일을 2리터 짜리로 들여놨고, 보조로 MCT오일도 갖췄다.

햇반을 대신할 현미곤약밥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밀가루면은 두부면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맛은 뭐... 식감도 뭐...)



하지만, 지방:단백질:탄수화물=7:2:1, 의 비율로 하루의 끼니들을 맞춰 먹는 건

꽤 고난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초반에는 영양성분을 다 적어가면서 비율을 맞췄지만,

몇 주 지나고 나서는 귀찮아졌다. 좀. 아니 많이.

내 성격상, 귀찮음이 더해지면 이 다이어트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았다.  

(탄수화물의 축복으로 돌아가는 건 매우 쉬운 일이기도 하다)

거기에, 술자리를 포기하지 못하다 보니 기준을 맞추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럼, 야매로 하지 뭐.


대회에 출전할 것도 아니고, 몸으로 승부 볼 나이도 아니니,

너무 엄격하게 스스로를 대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편해졌다.


나의 '야매 저탄고지'는 말하자면, 중탄고지? 저탄중지? 정도랄까.

가능한 한 탄수화물은 적게 먹되, 그걸 안 먹기 위해서 너무 신경 쓰는 건 안 하기로 했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면과 밥은 피할 수 없으니 먹되 조금 남기는 걸로.

안주를 고를 때 고기와 채소 위주로 고르되 튀김 같은 것도 있으면 그냥 먹는 걸로.

이미 사두었던 라면과 냉동볶음밥, 과자 같은 것들도 띄엄띄엄 소진해버리는 걸로.

치킨 시킬까 고민을 100번 정도 했으면 1번쯤은 쿨하게 주문하는 걸로.



결과부터 말하면, 나의 체중은 두 달 전보다 5kg이 빠졌다.

그래도 아직 80kg대이지만 몸은 이전보다 가볍다.

모든 운동은 위험하다, 는 지론을 갖고 있기에 술 먹고 집에 걸어오는 것 외에 따로 운동을 하지 않고,

모든 술자리는 환영한다, 는 원칙을 갖고 있기에 일주일 3~4회 술을 마심에도,

이 정도 체중이 빠졌다는 건 나의 야매 저탄고지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탄수화물을 끊고 성격이 더러워질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크게 더러워지지도 않았다.

지난달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를 보니 작년보다 콜레스테롤도 조금 낮아지고 허리둘레도 줄었다.

체지방은 조금 줄고 근육량은 늘었다. (근육은 도대체 왜 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엄격히 식단을 관리하던 초반에 몸무게가 하락하다가

야매로 돌리고 난 후에 하락보다는 유지 쪽에 가깝지만,

이 정도면 됐지 싶다.


또 어느 날 거울을 보고, 타이트하게 한번 관리해볼까? 하고

뜬금없이 의지를 불태울지 모르지만,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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