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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09. 2022

못난이 취향

#흘린 것들을 주워오는 습관에 대하여

몇 가지 모난 취향이 있다.

남들이 볼 때는 취향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그렇게 있어 보이는 행동이 아니기에 모나 보일 수 있는 그런.


예를 들면, 회사에서 후배들의 인사를 안 받는다거나,

과도하게 친절한 가게보다는 불친절한 곳을 선호한다.

쇼핑할 때는 고집하는 브랜드가 따로 없어서 세일하는 것들을 담는다.


이런 취향들에는 물론 나름의 이유가 다 있다.


인사를 안 받는다기보다는 쉽사리 친한 척하기 어색해서 최소한의 표현으로 답하는 것뿐이고,

무례만 아니라면 직원이 불친절한 편이 내 마음대로 둘러보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떨이만 고집하는 건, 뭘 골라도 비슷한 이 몰개성의 소비사회에서 굳이 작은 차이점을 찾기가 귀찮아서이다.



누군가에게 "나는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어"라고 말하기 애매한,

나의 이런 모난 취향들은

못난이 취향, 이라고 바꿔 말하면 귀여워진다.


나라는 인간의 모든 구석이 예쁠 수도 없으니,

취향 정도는 조금 못나보여도 되니까.

그리고 원래 못난이들이 챙김도 더 받으니까.


여하튼, 나의 못난이 취향 중에 '흘린 것들 주워오기'가 있다. 시시하기 그지없는.



얼마 전 집 정리를 하다가 작은 유리병 하나를 발견(?)했다.

작년 말에 이사하면서 어느 신발 상자에 넣어두었던 것이다.


병을 털어놓고 보니 대학로에서 살 때 길에서 주워온 것들이었다.

다시 봐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잡동사니들이다.


한쪽만 남은 귀고리, 구부러진 옷핀, 떨어진 단추나 지퍼 고리...길을 걷다 누군가 흘린 것들, 그러니까 그걸 흘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에 커다란 불편이 있다거나 금전적인 손해라고 할 수는 없는 것들.

 

 


희한하게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내 눈에 잘 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쳐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것들을,

나는 자연스럽게 줍는다. 마치 내가 몇 분 전에 흘린 것처럼.


점퍼 주머니나 가방에 집어넣었던 것들을,

세탁을 하거나 가방 정리를 할 때 발견하곤 곰곰이 생각할 때도 많다.

이게 뭔데 내 가방에 있었을까, 하고.


그러다가, 어느 골목에서 내가 주워온 기억이 나면 그제야 눈여겨보게 된다.

그렇게 눈에 든 것들은, 아무리 사소해 보이거나, 더 이상 제 소용을 갖지 않은 것들이라도,

왠지 처음부터 이 집에 속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소하디 사소한 나의 컬렉션을 보면서,

매일 다른 걸음으로 지나다니던 나의 골목들과

매일 다른 기분으로 대하던 나의 시간들을 떠올린다.  


아스팔트 바닥이나 밑창에 쓸려

찌그러지거나 긁힌 구석을 가진 이것들은,

말하자면 손가락 사이로 흐르듯 지나가버린 나의 나날들을

하나의 시간으로 치환해주는 증거 같은 것들이다.


그곳에서 상하게 흘려보낸 나의 매일매일은,

어느 한 군데 찌그러지고 긁혔을지라도 꽤 괜찮았다.


그렇게, 즐겁고 조용한 나의 작은 날들이

유리병 속에 얌전하게 봉인돼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의 못난이 취향이 새삼 마음에 든다.


모두가 감탄할 만한, 부러워할 만한 취향이 아니라도,

나의 하루에 어울리는 취향이면 되는 게 아닐까.


인사를 잘 못 받는 날 보고 누군가는 너무 내성적이라고 지적하겠지만,

누군가는 이해를 해줄 수 있는 것이고,

불친절한 가게를 편안해하는 나를 어느 누군가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혜화 컬렉션'은 다시 유리병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일상의 허무함이 도지는 어느 날에 또 꺼내볼 일이다.

그 사이 나는 또 이 동네의 어느 길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무언가를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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