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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04. 2022

이상하게 당연한, 새벽 4시 계란말이

이상하게 모든 과정이 당연했다.


이른 술자리에 이은 이른 취침 때문에 당연히 새벽 4시에 깨어 있었고,

새벽 배송으로 시킨 것들이 도착했다는 카톡이 오자마자 정리한 것도 당연했다.

마지막으로 열어본 계란 박스에서 깨진 계란을 보고 든 생각도,

"뭐 당연히 그럴 수 있지."였다.

그리고, 반파된 계란 2개와 금이 간 계란 2개를 대접에 깨트려놓고 떠올린 음식도,

당연히 계란말이였다.



솔직히 계란말이를 성공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하면, 그 쉬운 걸 왜 못해?, 라는 반문이 돌아오곤 하지만,

난 성공적인 계란말이를 만든 기억이 없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계란에 물을 조금 타서 잘 안 익었던 적도 있었고,

계란이 너무 빨리 익어서 그냥 부침개처럼 먹은 적도 있었으며,

말다가 찢어져서 될 대로 돼라 식으로 뒤적여서 스크램블로 먹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실내포차 류의 술집에 가면 꼭 계란말이를 시키곤 했다.

일종의 계란말이 결핍이랄까.



여하튼, 숙취가 남아있는 새벽 4시에 딱히 계란말이가 갈급한 것은 아니었으나,

깨트린 계란 4개를 그냥 냉장고에 넣는 건 뭔가 사리에 맞지 않는 듯해서,

계란말이를 만들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겐, 뭐 검색까지 할 음식인가 싶겠지만,

초심자의 심정으로 검색해서 나온 레시피대로 천천히 만들기로 한다.

 

'소금은 1/3 스푼'이라길래 눈짐작으로 여러 번 털어 넣고,

레시피에 나온 대로 계란이 젓가락 사이로 흐를 정도로 엉긴 부분이 없을 정도로 젓는다.  

새벽 4시라는 건 어떻게 해도 급할 수 없는 시간이니까 젓는 방향을 바꿔가며 꼼꼼히.

그리고는 중불로 가열한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계란물을 붓는다.



예전에는 이 지점에서 실패를 했던 듯하다.

불을 너무 세게 해서 붇자마자 치익 소리를 내며 계란이 너무 빨리 익거나,

약한 불에 천천히 익히다가도 급한 성격에 불을 세게 올려서 망치거나.


이번엔 익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약한 불을 계속 유지하며 기다린다.

굳이 요리하는 맛을 따질 건 아니지만 좀 밋밋하다.


어느 정도 익었을 때, 치즈 두 장을 얹는다.

치즈도 계란처럼 조용히 익는다.



가장자리가 익었을 때 접기 시작한다.

레시피대로, 마지막에 접힐 부분이 너무 빨리 익지 않게 불에 닿는 팬의 위치를 조정한다.


계란으로 뒤덮였던 팬의 공간이 조금 비워지자

지글대는 소리가 조금 들리기 시작한다.

두 번째 접자 익지 않은 계란이 흘러넘친다.

또 성질이 급했나 싶어서 다시 워워 하고 기다린다.  

평화로운 과정이 필요한 음식인가 싶다.



집게와 뒤집개를 양손에 들고 마지막으로 접는다.

식당에서 보던 두툼하고 폭신폭신한 느낌에는 못 미치지만

터지거나 찢어진 곳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한다.



얼마나 익혀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아 반으로 잘라보니, 이미 익은 상태였다.

파나 양파를 잘게 잘라서 넣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깨진 계란을 버리기 싫어서 만든 반강제적(?) 계란말이였기에 이 정도로 충분하다 싶다.


(실상은 귀찮아서였지만)

계획에 없던 건 계획에 없는 티를 내며 대충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자위한다.

새벽 4시에 어떻게 모든 재료를 다 갖추면서 하겠는가, 하고 생각은 너그럽게 확장된다.



기름 냄새가 옅게 퍼진 거실에서 계란말이를 감상한다.

그냥 하루 정도 이대로 둬볼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광경.  


그렇게 한참을 보다가, 이른 아침상을 준비한다.

계란말이 위에 케첩을 적당히 뿌리고 김치를 꺼낸다.

밥과 국을 데우고 수저와 젓가락을 챙긴다.


모든 게 당연한 듯 흘러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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