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나타나는 게 이상형이야

#이상형

by 너무 다른 역할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이제 좀 뻔뻔하게 대답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을 쓴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아리송한 얼굴로 뭔가에 집중하며 안경테를 만지는 모습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동그란 안경이어도 좋고, 얇고 반짝이는 금테여도 좋을 거 같아요.

그 너머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자신은 있어요.



운전을 해 본 사람이었으면 해요.

내가 디디고 있던 것들이 나를 경멸한다고 느끼는 어느 밤에,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아무 도로나 헤맸던 사람이라면 더 좋겠지요.



종종 나를 귀찮아하는 사람이면 해요.

만나다 보면, 그리고 혹시나 결혼을 해서 같은 공간에서 살다 보면,

저도 무심할 때가 있겠지요.

별다른 말을 걸지 않고 혼자 음악을으며 누워있거나 할 때요.

그럴 때, 죄책감 없이 그 시간을 보내면 좋을 거 같아요.

가끔 내보이는 여자의 무심함에 상처받지 않을 자신은 저도 있어요.

그러니 나를 귀찮아하는 사람이 좋겠습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과도한 찬사는 없었으면 해요.

난, 우리가 같이 먹게 될 음식들이 평범했으면 하거든요.

대신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후에, 수다를 떨면서 먹고 싶어요.



물끄러미 뭔가를 바라보는 게 취미인 사람이면 어떨까 해요.

그게 심드렁한 길고양건, 베란다의 화분이건, 미세먼지 가득한 거건 간에요.

그러면 그 옆얼굴을 저도 넋 놓고 볼 수 있으니까요.

옅은 미소나 반가움이나 감상 같은 게 두 사람의 얼굴에 묻어 있는 시간이겠죠.



걸음의 종류가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걷는 걸 좋아하는데, 늘 씩씩하지는 않거든요.

언제나 제 보폭에 맞춰달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가끔은 축 쳐지거나, 히스테릭하거나, 이상하게 들뜬 제 산책길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집하는 사람이면 해요.

물론 유행하는 옷을 입고 내 앞에서 한 바퀴 턴을 해도 사랑스럽겠지만요.

격식을 차려야 말고는, 그 사람이 너무나 편해 보이는 영역이 있었으면 해요.

사람 많은 곳, 멀리서 봐도 한눈에 내 사람이라고 알아볼 만한.






귀찮게 이상형을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이런 대답을 술술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실제로는 어버버버 하고 대충 얼버무리다가

이런 말이나 하겠지


하지만,

결국은 어디서 몰래 나타나는 게 이상형이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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