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한 내가 자유로웠던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by 김남우

511일, 내가 회사를 다닌 날 수이다.

1년 반도 안 되는 기간이지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생활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7명밖에 안 되는 소규모 팀에 좋은 사수들을 만나 즐거운 회사생활을 했다.


입사 직후에는 대기업에 가기위해 애썼다.

내 스펙에 작은 회사가 가당치 않다 느껴졌고 곧바로 대기업 면접까지 갔지만 보기좋게 미끄러졌다.


그때 한 번 고비가 왔다.

회사란 곳을 원래도 다니기 싫어했던 나에게 적은 봉급과 격에 맞춰진 회사생활은 버거웠다.

하지만, 모두가 하는 일이고 18개월의 군생활까지 잘 마쳤으니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이후로도 한 두 개의 대기업만을 목표로 회사에서 버텼다.

그때쯤 매너리즘에 빠져 반복되는 업무가 지겹고 추가되는 업무가 버겁게 느껴졌다.




"이렇게 살고싶었나?"


쏟아지는 일을 쳐내고 있을 때 문득 '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대학교까지 따지면 10년이 넘는 기간을 유정공학연구원이 되고자 했다.

이 꿈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구나를 깨달을 때쯤엔 MBTI 파워 I인 내가 혼자 조용히 여행다니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여행다닐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어느새 내 꿈은 세계일주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설상가상으로 빠른 퇴사를 위해 시작했던 투자까지 말아먹고 나서는 '꿈'과 '자유'라는 말이 내게 놀랍도록 사치스러운 말이 되어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상황이 여의치 않고 더이상 나아질 것 같지 않을 때, 내 이상과 현실사이의 간극이 극도로 벌어져있을 때 너무나도 커다라 압닥과 답답함을 느낀다.


똑같았다.

과거 내가 절망했을 때와 패턴이 너무나도 똑같았다.

이걸 깨달은 순간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물론, 트리거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속으로 몇 개월을 품은 말이었기 때문에 말하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 나간다 하면 일단은 붙잡는 팀장님과 팀원들은 처음부터 이상을 부르짖던 내 모습을 알기에 더이상 추가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팀장님은 나와 같이 자기 일을 찾는 사람으로서 나를 불러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했다.




간혹 사진첩에 들어가 새로운 곳에서 설렘 가득한 표정의 나를 찾아보곤 한다.

그리고 이땐 이런 생각과 감정이었지하며 그리워 하고 부러워한다.


이때의 나는 부모님의 지원 아래 큰 돈 걱정 없이 자유롭게 세계를 탐험했다.

그때는 그 도움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 지 몰랐던 철부지가 이제는 통장 잔고를 걱정하고 '꿈'이란 단어조차 희미해질 정도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급급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려 한다.

전공을 살리기 위해, 인류의 도움이 되기 위해라는 거창한 말로 회사에 있는 나를 정당화 시키지 않을 것이다.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현실이 내 발목을 잡게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 것이다.


나 또한 브런치의 많은 여행작가님들처럼 내 여행기로 여러분을 웃기고 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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