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없다고 생각해?
배움의 늦음은 없다.
특히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지금
배움에 나이를 논하기엔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적정시기라는 게 있다.
성인이 되어 배운 제2외국어가 이른 나이에 접하는 모국어보다 활용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사람은 특정 시기에 더 잘 흡수하는 정보가 있다.
최근 나는 약 3개월 정도 춤을 배우고 있다.
춤을 이번에 처음 배운 건 아니다. 20살, 대학생이 되자마자 나는 춤 동아리에 들어갔다.
춤, 노래, 악기와 같이 예술 계열 동아리들은 형식적으로라도 면접을 봤지만
내가 가입한 서울 과기대의 '열혈 무군'이라는 동아리는 가입 서류만 내면 즉시 가입이었다.
어떤 동아리에 가입해야 할지 고민하며 동아리 부스 사이를 걸어가다 얼떨결에 붙잡혀
바로 선배의 등에 종이를 대고 가입서류를 작성했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니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예체능을 정말 못해서 학창 시절부터 예체능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다.
그런 열등감과 존경심이 합쳐져 현재 춤이든 노래든 글이든 예체능을 닥치는 대로 배우는 것 같은데
이때도 기타 동아리와 춤 동아리, 두 곳에 가입했다.
결과적으로 기타 동아리는 공연 동아리를 동시에 두 개 하기엔 너무 힘들어 금방 나왔다.
춤 동아리는 무대에 오르긴 했지만 짧은 몇 분을 위해 너무나도 긴 고통의 시간을 견뎠다.
지금 와서 이야기하는 거지만 당시 최악의 몸치인 나를 지도해서 무대까지 올려준 선배에게 감사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
아예 포기한 건 아니었다. 반수를 하고 새롭게 간 대학에서 춤 동아리에 들어갈까도 했지만
면접을 봐야 한다는 점이 내 발목을 잡았다.
내 저질스러운 몸짓을 동년배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그렇게 4년 넘게 춤의 ㅊ자도 꺼내지 않았다.
누군가 내가 춤 동아리에 들어갔단 사실을 알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하는 말이 바로 '춤 보여 주세요.'니까...
평범하게 군대를 가서 전역하고 집에서 쉬다 보니 한 프로그램이 화제가 됐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여성 댄서 크루 8팀이 한데 모여 자웅을 겨루는 프로였다.
춤에 대한 관심이 아예 꺼진 건 아니어서 처음부터 재밌게 봤다.
그러다 문득 '다시 한번 배워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각하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임을 이제 알지 않는가?
즉시 학원을 알아봤다.
한 달보다 두 달이 싸고, 두 달보다 세 달이 할인이 많아서 3개월 치를 한 번에 결제했다.
내 클래스는 당연히 기초반이었다. 애당초 학원도 그렇고 나도 상위 클래스를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학원에 갔을 땐 성인이 나 포함 두 명이었다.
취미로 하는 친구도 거의 없었고 대부분 입시나 오디션 준비였다.
뭔가 잘못 왔단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돈 쓴 거 열심히 배우 잔 생각으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내가 어린 친구들이 부러웠던 이유는 유연성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내 유연성은 둘째가라면 서러웠다.
유연성을 체크하면 기본 반에서 1,2등을 했고 중학교 때 반에 운동부가 2명 있었는데도
한 명을 제치고 반 2등을 차지했다.
그때는 한동안 스트레칭을 안 해서 몸이 굳어도 조금만 당겨주면 바로 쭉쭉 늘어났다.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3개월째, 춤추기 전 스트레칭으로 몸을 늘려주고 있지만 그다지 변화가 없어 보인다.
몸이 늘어나질 않다 보니 부드러운 동작이 되질 않는다.
동작도 어정쩡하고 나는 내가 늙었다 생각하지 않지만 10년은 어린 친구들과
한 반에 배우고 있으니 문득문득 이런 내가 부끄럽게도 여겨진다.
물론 성인이 되어 춤을 배우는 사람도 많고 내가 본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댄서들도 전부 성인이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춤을 춰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그들도 지금과 같은 몸동작을 유지하는데 부단한 노력을 했을 거고
나이가 먹어갈수록 예전 기량을 유지하긴 위해선 더 큰 힘을 쏟아야 할 거다.
결국 세상 모든 건 어느 시기에나 배울 수 있지만 받아들이는 양은 시기에 따라 다르다.
어릴 때 배워야 하는 게 있고 성인 되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 가능한 것들이 있다.
이미 배운 사람들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내 늦음을 탓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배움이 늦었다고 한탄하며 멈춰있는 사람보다
앞뒤 안 재고 바로 시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우고 앞서간다는 거다.
3개월 전 우연히 춤을 배우게 된 뒤 최근 내가 친구들을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니까 늘긴 늘더라.'
20살의 나는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며 좌절했지만
오히려 5년이 지난 25살의 나는 무작정 해보면 뭔가 된다는 희망을 봤다.
결국 시기보다는 자신이 그 일에 얼마나 몰두하고 집중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뭐든지 배워두라고 말하고 싶다.
당장 필요가 없어도 배우자.
시간이 없다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변명인지는 본인이 더 잘 알 거다.
호기심이 있는 분야는 뭐든지 배워두자. 언젠가 쓸모가 있다.
분명한 건 나는 지금도 몸치다.
그러나 이제 '쟤가 설마 춤을 추는 건가?' 싶을 정도의 동작을 하는 몸치다.
조금이라도 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내가 상황을 재고 변명을 만들며 배움을 늦췄다면 이런 변화도 없었을 거다.
주변에서 이제 와서 뭘 배우냐고 한 소리 한다면 한 방 크게 날려 주길 바란다.
'배움의 늦음이 어딨어요?'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당신이 1년 동안 꾸준히 그 일을 한다면 헛소리를 늘어놓던 그 인간은 다시 와서 당신에게 물을 거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항상 제일 구석에 쭈구려서 선생님 동작 곁눈질 한다